갑진년 청용의 해에 떠오르는 시 읽기

올 해는 갑진년 새해이다. 동양식으로 말하면, 청룡의 해다. 동양의 용은 큰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귀한 영물이지만, 서양의 용은 우리가 물리치고 죽여야 하는 사탄과 같은 요물이다. 한국의 불교 사찰들을 보면, 대웅전의 앞쪽에 용의 머리가 뒷쪽에는 용의 꼬리가 조각되어 있다. 기도하는 법당이 고통의 바다인 속세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열반으로 항해하는 용의 몸인 배(용의 모양을 한 선박/용의 몸체인 배)로 이중 형상화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불교 신문에 의하면, “불교에서 ‘반야(般若)’라고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달은 지혜’를 말하며, ‘바라밀다(波羅蜜多)’라고 하는 것은 ‘피안의 세계로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피안의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탈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반야용선이다. 법당 앞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용두는 극락정토로 향해가는 반야용선의 뱃머리가 되고, 법당은 부처님과 불자들이 타고 있는 선실, 그리고 법당 뒤의 용의 꼬리는 선미(船尾)가 된다.

불교에서의 배와 깨달음의 항해를 떠올리다 보니, 용의 현대적 변형인 기차가 연상되고, 마침내 서양인의 삶을 기독교적인 열차 여행으로 비유한 시가 생각난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면 떠오르는, 침례교 목사님인 로버트 헤이스팅스가 1980년에 쓴 “The Station (종착역)”이라는 산문시이다. 아시는 분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필자의 졸역으로 여기 다시 소개한다 (전문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기에 원문을 원하시는 분들은http://www.thestationessay.com/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잠재의식의 저 깊은 곳에 우린 머나먼 대륙을 횡단하는 긴 열차 여행을 하고 있다는 소박한 느낌을 갖고 있다. 기차의 창가로 지나가는 자동차들, 철로변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가축들, 발전소에서 뿜어나오는 연기들, 끝없이 펼쳐지는 목화밭과 옥수수밭, 평지와 계곡들, 도시의 건물들과 시골의 공회당을 보며 우리는 커피 한 잔을 즐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속에 항상 꿈틀대는 것은 종착역에 대해서이다…모월 모시에 우린 목적지에 신나게 기적을 울리며 도달해, 휘날리는 깃발과 밴드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모든 아름다운 꿈들이 확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곳을 기리며 쉼없이 우린 객실 내의 통로를 서성이며 시계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렇지. 그곳에 도착하면, 모든게 이루어 질거야. 암, 그렇구말고 우린 다짐한다. 열 여덟살이 되면, 이번에 승진만하면, 우리 애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벤츠 450SL만 사면, 은퇴 연금만 타면. 계속 다짐을 한다”

“그날 이후론 우리의 행복한 삶은 영원히 지속되는 거야.”

“그러나 멀지 않아, 우린 안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종착역은 없고, 땅엔 한번 도달하면 모든 게 한 번에 해결되는 그런 곳은 없음을. 여정은 기쁨이다. 그 종착역은 환상이다…그 역은 가까이 가는가 하면 계속 멀어진다. 어제는 기억이며, 내일은 꿈이다. 과거는 역사이며, 내일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어젯밤에 스러진 황혼은 내일의 어슴프레한 여명이다. 단지 오늘만이 사랑하고 살아가기에 충분한 빛을 준다.”

“그러니 어쩌랴, 지난 시간에 살며시 문을 닫고 열쇠를 치워버려라. 사람들을 몰아대는 것은 오늘의 짐이 아니라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며, 올 날에 대한 두려움인것을. 회한과 두려움은 오늘을 사는 우리를 볶아 대는 두 얼굴의 도적인 것을.”

“성경의 시편 118장 24절에 나오는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라는 말씀과 함께 생각할 때, ‘현재의 날들을 기쁘게 즐기라’는 경구는 참으로 맞는 말이지 않은가?”

“그러니 객실 내의 통로를 서성거리거나 지나간 거리를 세지 마라. 그러기 보다는 강에 나가 수영을 더 하고, 산들을 더 오르고, 어린아이들에게 더 많이 뽀뽀하고, 밤에 나가 더 많은 별들을 세어 보라. 좀 더 자주 활짝 웃고, 가능하면 덜 울어 보라. 더 자주 맨발로 걸어 보며, 좀 더 자주 아이스크림을 먹어 보라. 더 자주 회전목마를 타 보라. 해가 넘어 가는 서산의 모습을 더욱 더 즐기라. 삶이란 우리가 지내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걸. 종착역은 곧 올 것인 것을.”

이 시 속의 삶의 태도는 몇 해전 뉴욕 타임즈가 소개한 “행복 추구하기 (A happiness challenge)”의 내용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 기사가 다룬, 하버드 의과 대학의 웰딩어 교수 연구팀이 지난 80년 동안 계속하고 있는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드는가’라는 물음의 확실한 답은 간단하지만 어렵다. 그것은 ‘더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대공황기인 1938년에 시작된 이 연구는 수 세대에 걸쳐 보스턴 지역의 다양한 사회, 경제적 배경을 가진 가정과 후손들을 대상으로 극히 세세한 질문과 의학적 검사들을 거쳐 지난 80여년간 성인들의 발달 과정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들이 이 연구를 통해 발견한 것은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는 ‘관계 (relationships)’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동반자를 갖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제 분야에 있어서 실행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은, ‘나는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만들 시간이 충분히 있을거야’라며 실행을 미루는 것을 멈춰야 하는 것이다. “음, 나는 미래에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야. 내가 원하는 직장을 얻으면, 돈을 충분히 벌면, 은퇴를 하고 나면, 아니면, 내가 지금보다 시간이 많아 지면” 등등의 이유들을 나열하는 것은, 즉 앞으로 ‘내 인생에 관계 개선을 위한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라는 가정은 오류임에 확실하다라는 주장이다. 당장 작지만, 실행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행복에로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위의 시에서 나온 것처럼, 오늘부터 당장 “강에 나가 수영을 더 하고, 산들을 더 오르고, 어린아이들에게 더 많이 뽀뽀하고, 밤에 나가 더 많은 별들을 세어 보라. 좀 더 자주 활짝 웃고, 가능하면 덜 울어 보라. [피부 질환자를 제외하고] 더 자주 맨발로 걸어 보며, [당뇨인은 제외하고] 좀 더 자주 아이스크림을 먹어 보라. [어지럼 증이 있는 분은 제외하고] 더 자주 회전목마를 타 보라. 해가 넘어 가는 서산의 모습을 더욱 더 즐기라..”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결론인 “(우리 인생의) 종착역은 곧 올 것인 것”을 기억하며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오늘부터 당장 더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한다. 특히 무엇보다 먼저 아내/남편과 자녀들과 함께 먼저 포근한 관계를 형성해 보시라. 내가 귀하면, 남도 당연히 귀함을 기억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 아닌가?

| 벨뷰 EWAY학원 원장 민명기 Tel.425-467-6895 ewaybellev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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