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바뀔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면

본 칼럼의 애독자들께서 이 글이 실린 신문을 집어 드시는 주말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이거나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같은 바이브로 가득찬 주일일 것이다. 마치 마블 만화 시리즈에 기반한 활극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며 “흠, 어떤 악한이라도 내 눈에 띄기만 해라 내가 아주 요절을 내 줄테니”하며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마음가짐으로 어깨를 쫙 펴고 신문을 떡~ 집어 드시고 계실 것이다. 물론 성탄의 의미를 내 삶에 적용하시며 경건한 마음으로 명상하시듯 장을 보러 오신 분도 계실 것이다. 집 떠나 타 주의 학교와 직장에서 성탄절을 맞아 집으로 돌아 온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하신 뒤 보란 듯이 자녀들을 거느리고 장을 보러 오신 한인 마트에서 이 신문을 꺼내 들으신 분도 계실 것이다. 고등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같이 장보러 간 차 속에서 나올 생각도 안하고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던 녀석들이 이제는 엄마 아빠를 호위라도 하는 듯 한인 마트로 따라 들어 오며 카트를 끌고 앞장을 서니 어찌 위풍당당해 지지 않겠는가? 참 격세지감이 아닌가?

이동하는 차의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이미 거의 같은 곡들을 한 달이 넘게 틀고 있지만, 그 가사의 한 대목 한 소절이 파장을 만들어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물론 이러한 느낌이 모두에게 언제나 공통된 것은 아니다. 남자라고 앞 좌석 조수석에 앉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던 아들 녀석에게 뒤에 제 엄마와 함께 앉아 있던 딸 아이가 들썩이는 어깨를 툭 치며, “너 고등 학교 때, 이 노래만 나오면 신경질을 냈었잖아, 기억나니? 이제 좋아졌어?” “나는 저 ‘라 팜팜팜’만 나오면 너무 지겹게 들어서 괜히 싫어”라며 짜증을 낸 기억을 소환한 것이다. 좋은 음식도 너무 자주 먹으면 싫증을 넘어서 울렁증이 생길 수도 있음은 만사에 공통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연수가 쌓일수록 모가 난 부문이 깍여 둥글 둥글해지며 오래된 노래를 자꾸 들어도 싫증보다는 깊이를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고 들을 때의 성숙해 진 감정도 변수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효과적인 웅변의 삼요소 중의 하나가 ‘듣는 이의 감정 상태(pathos)’라고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휴일에 집을 잠시 방문하고 있는 자녀들의 태도 변화를 보여 주는 에피소드가 있어 소개한다: 아이들이 대학 초년생일 때의 일. 부모님들은 오랜만에 돌아온 아이를 위해 미리부터 이런 저런 준비를 많이 한다. 오늘은 한식, 다음은 짜장면, 그 다음은 크리스마스이니 교회의 여선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여야지 … 등등. 그런데, 부모님의 야무진 꿈을 뒤로한 채, 이 녀석 오자마자 다섯 시간 비행기의 여독이 덜 풀려서인지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저녁에나 일어나더니, 전화기를 붙들고는 제 방에 들어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 친구들에게 텍스트를 주고 받느라 정신이 없다. 첫날은 아이구 이 녀석 처음으로 대학 공부하느라 고생했으니 그냥 둬야지 하는 생각에 공주/왕자님처럼 모시고 틈틈이 과일이나 깍아 대령하는 것으로 보낸다. 허나, 그 다음날도 별로 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니고 그저 잠시 식구들과 대학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OK” “Fine”이 대략 전부이다. 그리곤 밤에는 시애틀에서 유덥을 다니거나 타지에서 돌아 온 친구들과 만나러 나가서는 새벽이 다 되어서 돌아오는가 하면, 그 다음날은 늦게 잤으니 또 늦게 일어나고, 이 녀석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성탄절 예배 시간도 겨우 맞출 정도이다.

이들이 좀 나이가 들어 대학 졸업반이나 직장에서 고생을 좀 해 본 베테랑들의 경우는 좀 다른 것이 공통이다. 집 떠난 후에 여러 번 방학이나 휴가 때 집에 온 경험도 있고 철도 들었기 때문인지 첫번째의 자녀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 녀석은 여비를 아끼느라 갈아타는 비행기를 선택했기에 밤늦게 도착해 죄송하다며, 비행기 경유지에서 어머니에게 텍스트를 해서는 도착하면 배가 고플 것이니 순두부를 투고로 해서 준비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부탁을 했단다. 이 녀석 피곤할텐데도 비행장에서 집으로 오는 한 30분 가량을 이런 저런 학교/직장 친구 이야기로 쉬지 않고 다정함을 표현하더라고 자랑을 하신다. 그리곤 그 다음날은 늦게까지 자더니 일어나서는 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어깨를 다짜고짜 주무르며 피곤하지 않으시냐고 걱정을 하는데, 눈물이 핑돌더란 이야기셨다. 다음날은 한식으로 그 다음날은 짬뽕으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비싸지 않은 선물이라도 꼭 준비해 부모님에게 깜짝 선물을 한다는 전언이다.

이렇듯, 방학이나 휴일에 집에 돌아오는 자녀들과 반가운 마음으로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어 놓고 가족 시간을 보낸다거나, 못 본 사이에 부쩍 어른스러워진 아이의 어깨를 보듬어 보곤 어른 냄새에 대견해 하는 경험을 기대하지만, 대학의 저학년생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대 이하의 결과에 실망하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너무 실망 마시라. 아이가 좀 더 학년이 올라 가고, 세상사에 익숙해 지면, 위의 두번째 유형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 그리고 부모님 자신도 표현에 조절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의 다른 두 요소는 말하는 사람의 ‘논리(logos)’와 ‘사람됨(ethos)’을 기억하면 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방학 때 돌아 오는 대학생 자녀들을 위해서는 첫째, 방학 전에는 보통 큰 시험들이나 숙제등이 있고 이들을 끝마치느라 피곤한 아이들에게 실컷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으며, 둘째, 방학 때 집에 온 자녀들은 풀어진 마음에 안전 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 귀가 시간을 정해 돌아 오게 하며, 셋째, 자녀들이 고향에 오면, 고교 친구나 익숙한 친구들과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니 너무 가족 시간을 함께 갖는 것에 시간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한다.

이번에 부모님 댁을 방문한 아이들과 그 동안 못 다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실 때, 자녀들의 흠을 꼬치꼬치 잡아 내어 타이르시기 보다는 되도록이면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는 것이 좋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늦게 들어 오는 아이들과 논쟁하기 보다는 무사히 들어온 녀석들에게 꿀차라도 한 잔 타 주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마음을 녹여 주시라. 살벌한 전쟁터와 같은 바깥 사회에서 횡행하는 이분법의 대화나 태도와는 달리, 하나되어 서로 사랑하며 기도하는 가족이 되면, 성탄절의 주인이신 사랑의 예수님도 기뻐하실 것이 아닌가

| 벨뷰 EWAY학원 원장 민명기 Tel.425-467-6895 ewaybellev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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