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는 적게, 사랑은 풍성하게

지난 주의 칼럼을 읽으시고, 필자가 언급한 칼리 지브란의 글에 대한 질문을 해 오신 분들이 계셨기에 조금 더 소개해 드리기로 한다. 지난주에 소개한 관련 부분을 보면, “(부모님과 학생들의 내년 수강 신청에 대한 의견 차이가 예상되는) 이 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칼릴 지브란의 산문시집 ‘예언자 (The Prophets)’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지브란은 가상의 예언자의 입을 통해 부모의 역할에 대해 설파한다: 부모는 활이고 자녀는 화살과도 같은 것이며, 하나님이 이 활을 당겨 쏘시는 분이다. 부모의 할 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껏 몸을 구푸려 화살이 겨냥된 과녁에 명중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칼럼의 애독자들께서 이미 짐작하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화살을 멀리 정확하게 보낼 수 있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가능한 많이 구부리는 것이다. 아이가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몸과 마음을 기꺼이 구부려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 지를 함께 대화하며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사춘기의 고민으로 삐뚤게 행동하는 우리 아이에게 다시 몸과 마음을 구부려 그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조언을 하며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을 의미한다. 수강 과목을 정할 때, 아이의 장래를 위해 감당할만한 최고의 과목들을 선택하도록 논리적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욕심을 구부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1931년에 초판이 나온 뒤, 이미 백여개의 언어로 출판되었으니 많은 분들이 익숙할 칼릴 지브란의 산문 시집 “예언자”는 예언자 알 무스타파가 살던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자 동네의 사람들이 나와 이 현자에게 마지막 지혜를 나누어 줄 것을 부탁한다. ‘사랑,’ ‘결혼,’ ‘자녀’ 등등으로 부터 ‘종교,’ ‘죽음’에 이르는 26가지의 주제에 답하는 내용의 산문시이다. 지난 주에 언급한 내용은 이 시들 중에서 자녀 교육에 관한 시편의 구절들인데, 좀 길지만 필자의 졸역으로 여기 소개한다:

“한 여인이 품에 어린 아이를 안고서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요라고 부탁하니, 예언자가 대답한다:

그대들의 자녀들은 그대들의 소유가 아니라네. 그 아이들은 인생 자체의 갈망에서 난 아들과 딸들이라네. 그 아이들은 당신들을 통하여 왔으나 부모인 당신들로부터 온 것은 아니네. 또한 그들이 당신들과 함께 거하나 당신들의 소유는 분명 아닌게지; 당신들은 그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생각까지 주려고는 마시게.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그들 나름의 생각이 있으니까. 부모들이여, 당신들은 아이들의 육체를 담을 수는 있으나 정신까지는 아니라네, 그들의 정신은 자네들이 꿈속에서 조차도 갈 수 없는 내일이라는 집에 거하니 말일세. 당신들은 아이들처럼 되려 노력하는 것이야 무방하지만, 그들을 당신들처럼 만들려고는 생각하지 마시게. 왜냐하면, 인생이란 되돌아갈 수도, 과거에 머물수도 없기 때문이지; 당신들은 활이라네, 거기에서 아이들이 살아있는 화살로서 쏘아지는 활 말일쎄. 활을 쏘시는 이는 무한의 궤적속에서 과녁을 보며, 그 분 신의 크신 능력으로 당신들을 팽팽히 구부려 화살들이 빠르고 멀리 나아가도록 하신다네. 활쏘는 이의 손에서 당신들을 기쁘게 구부리시게나. 그 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만큼이나 팽팽히 휘는 활도 사랑하시나니.”

이 글을 읽으며 화살인 아이를 가운데 두고 되도록 멀리 이 녀석을 보내기 위해, 신이 온 마음을 다 해 구부리심을 받아 들이며 부모가 두 손을 서로 맞잡고 등을 잔뜩 굽혀 등이 활처럼 팽팽히 굽어지는 것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여기에서 읽기를 멈추셔도 좋다. 하지만, 아직도 등이 뻣뻣한 가부장적 권위로 가득찬 부모님이시라면, 우리 아이의 마음에 깊게 새겨질 상흔을 남기지 않은 채 사춘기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몇 년 전에 한 신문에 게재된 다음의 제언에 귀 기울이실만 하다. 워싱턴 포스트의 ‘부모들이 자신의 십대 자녀들에게 범하는 일곱 가지 실수’라는 기사에 기반해, 이를 필자의 번역과 해석을 가미해 2주에 걸쳐 소개한다:

1. 십대인 자녀와 대화할 때, 아직도 어린 아이 대하듯 합니까?

자녀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면, 자녀가 자람에 따라 자녀 교육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여기에는 특히 대화시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대화의 톤도 포함된다. 베스트 셀러 임상 심리학자인 존 듀피에 따르면, “자녀를 꼬맹이가 아닌 성인으로 대접하려 노력해라. 아무리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도 자녀의 말을 세심하게 경청하라. 우리 모두는 자신의 견해가 존중받기를 원하며 십대도 마찬가지임을 기억하라.” 겸손하고 온유하게 의견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청소년 전문 정신과 의사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십대의 자녀들에게 상호존중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딸 아이가 눈을 부릅뜨고 말대답을 하며 거친 말들을 할 때, 자신이 십대 자녀를 존중하고 있는 지 생각해 보라. 당신은 자녀에게 친구에게 말할 때 쓰는 다정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2. 십대 자녀와의 대화시에 말을 가로막고 끼어 듭니까?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말을 가로막고 끼어 든다든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어 버린다든지, 또는 다른 어떤 성급한 반응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여유를 갖고 자녀를 그저 친한 친구로 여기시라. 십대 자녀에게 존경과 친절을 보이는 것은 친구에게나 마찬가지 일임을 기억하면 간단하다. 듀피의 제언, “부모는 가능하면 조용히 있는 것이 좋습니다. 더 많이 듣고, 덜 이야기하며 덜 끼어드는 것이 최고 입니다. 자녀들의 세계를 이해하면 할 수록 부모님의 걱정은 사라지게 마련이니까요.” 지난 1월 19일 타임지의 커버 스토리인 “적게 말하면 더 많이 얻습니다 (How talking less will get you more)’가 생각나는 구절이다. 다음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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