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척의 개와 고삼병의 연관 관계?

     요즘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뉴스에서 보노라면 많은 생각들이 일어 난다. 한편에서는 친척과도 같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영토를 무단 침범해 어린 아이와 민간인들 마저도 무참히 살육하는 러시아 군의 무자비함을 본다. 다른 한 편에서는 거의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나 많은 숫자의 피난민들을 따뜻하게 돌보는 폴란드를 비롯한 인접국 보통 사람들의 온정을 보게 된다.  

     러시아 군인들의 폭격으로 죽은 어린 아이들의 숫자만큼 광장에 상징적으로 세워둔 109개의 빈 유모차를 바라 보며 이 몰상식한 전쟁의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전쟁을 일으킨 전범 푸틴이야 이차 대전의 주범인 히틀러만큼이나 이해할 수가 없는 존재이지만,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러시아 병사들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에서 나온 ‘도척지견(盜跖之犬)’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중국의 난세였던 춘추전국 시대에 9천여명이나 되는 졸개를 거느릴 정도로 세력을 가졌던 악명 높은 도둑인 도척의 개가 떠올라 험상굿게 짓는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도척에게 개가 있었는데, 그 주인이 악명 높고 해악을 끼치는 인간이지만 이 개는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고 주인을 위해서라면 그 상대가 공자이든 선량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든 짓고 문다는 비유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주인의 훌륭함이나 인간 뽐새를 떠나, 이 주인이 먹이를 주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요즘의 이곳에 사는 개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의 개에 대한 인식은 그러했었다. 생각할 줄 모르고 지식과 지혜가 없는 동물이나 인간이 행하는 그릇된 행동을 비유해 말하는 것이리라. 

      이제 교육 칼럼으로 돌아와, 이 고사성어가 ‘조금이나마’ 연관이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니, 요즘 고등 학교 12학년 학생들이 감염될만한 ‘시니어라이티스’라는 질병이 떠올랐다. 요즘은 고교 시니어들, 특히 대학의 합격 통지를 받은 아이들에게는 정말 참기 힘든 시간이다. 미국 고등학교 시니어들의 일부는 이맘 때쯤이면 대학에 원서를 일찍 제출해 이미 12월 중순경에 합격 편지를 받았거나 (Early Admissions), 또는 롤링 어드미션 (Rolling Admissions, 원서를 내는 순서에 따라 사정하여 결과를 수시로 통보하는) 제도를 사용하는 대학에 원서를 제출해 이미 합격 여부를 이때 쯤에는 통보 받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주내의 대학에 지원을 한 학생들 중에는 풀만의 워싱턴 주립 대학이나 서부 워싱턴 대학에서 이미 합격 통지를 받은 학생들이 제법 많다. 이 경우 합격이 된 학생들은 더 이상 고등 학생으로서 이룰 목표가 없어지고 할 일이 없는 것으로 느껴져 온라인 학업에 재미를 잃고 느슨해 지는데 마음 놓고 할 일은 별로 없는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많다.  이와는 달리, 정시 모집 (Regular Admissions)에 원서를 낸 학생들은 합격 여부에 대한 불안감으로 학교 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고 좌불안석하는 마음 상태에서 학업에 소홀한 경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향 또는 증상을 시니어라이티스 (Senioritis)라고 부르는데, 시니어들이 겪는 질병이라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다시말해, 시니어 (고삼)에다가 류마티스의 어미인 –티스를 붙여 한국식으로 말하면 ‘고삼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든 질병에는 증세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것처럼, 이 시니어 라이티스라는 질병에도 심한 경우에는 죽음에 비견할만한 심각한 결과가 뒤따른다. 많은 대학들의 경우, 이러한 증세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저조한 학업 성적에 대한 징계로 이미 합격시킨 학생들의 합격을 취소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 대학들은 해당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최종 학교 성적표를 7월 1일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하는데, 이 성적표에 D나 F와 같은 성적이 있으면 합격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전력을 다 해 보낸 몇 년의 세월과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합격 철회 결정은 보통 대학이 새 학기를 시작하기 일, 이 주전인 8월이나 9월경에 학생에게 통보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른 학교에 진학을 시도할 기회가 남지않은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나쁜 성적뿐 아니라, 원서 제출시에 원서에 기록한 시니어 2학기 계획과 다른 쉬운 과목을 수강한 경우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대학의 입학 원서에는 시니어 첫 학기에 듣는 과목뿐 아니라 두번째 학기에 들을 과목까지도 쓰는 난이 있다. 이것은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주니어까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시니어 때는 쉬운 과목들만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을 향한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지원자가 고등학교를 마치는 순간까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야 성공할 수 있는 도전적인 과목들과 씨름하는 학생들을 우대한다는 사인을 대학측이 지원자들에게 분명히 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많은 대학들은 시니어 첫 학기 성적이 나오는 1월말에서 2월초에 Mid-year Report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도척의 개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없는 동물이었기에 그릇된 행동을 했으나, 우리 자녀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이니 끝까지 최선을 다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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