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ay 교육 – 새 술은 새 부대에

지난 8월 말의 토요일은 SAT 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지난 3월부터 예정된 시험들이 계속 취소되고 아주 소수의 시험장만이 개방되어 시험을 치뤄온 지라, 많은 수험생들은 시험장에 입장을 하게 되는 바로 그 시간까지도 마음을 졸였다. 시험의 대가들이 공통적으로 조언하는 것처럼, 시험 전 몇 달은 규칙적으로 공부를 하지만, 시험 전 날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이른 아침이지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 주는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최고의 준비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 시험 전날의 법칙은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한다. 우선 자신의 집 근처에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다. 도시의 시험장들은 거의 취소되었고, 비교적 한적한 시골 도시나 한적한 주에 위치한 시험장들만이 문을 연 상황이다. 한국에 방학 동안 나가 있던 한 학생은 몇 달 전에 예약한 야키마의 시험이 취소되자 부랴부랴 몬태나에 다시 신청을 해 시험을 본 경우도 있다. 몇 번 비행기를 갈아 타고 도착한 생소한 도시의 낯선 모텔에서 밤을 보낸다. 시험을 위해 당연히 아침 일찍 일어나 몇 시간을 운전해 시험장에 가거나, 그 전 날 미리 시험장이 있는 근처의 모텔에 짐을 풀고 불편한 저녁을 보내는 경우가 새로운 정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시험 전날의 정상 메뉴얼인 푹자고 충분한 영양 섭취라는 조건은 참으로 달성하기 힘든 과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라도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것은 행복한 것이고, 많은 경우에는 당일 전까지 시험을 볼 수 있을 지를 걱정한다. 당일에 취소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취소된 장소에 대한 고지도 미리 확실하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정말 우리 시니어 학생들에게는 이 팬데믹의 기간이 이중, 삼중의 고역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이 고역과 가보지 않은 생소한 길 위의 여정 중에도, 우리 자녀들은 시험 준비와, 대입 에세이 준비는 물론이고, 이 기간에 수고하는 이센셜 워커들을 위해 식사를 배달해 주는 봉사 활동을 하는 등, 자신이 해야할 일들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를 위해서도 관심을 갖는 모범을 보이기도 한다. 이 무자비한 팬데믹을 이겨 나가기 위해 새로운 틀을 만들어 실천하는 학생들의 노력이 정말 가상하다. 성경 속의 한 구절을 실체화 해서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태 복음 9:17)”

     이 팬데믹의 출현은 세상사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친한 이들끼리도 반갑게 서로 안아 주며 반기는 것이 위험한 사랑의 표현이 되고, 서부 시대의 악당들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사용했던 마스크가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잡는다. 직장은 재택 근무를 장려하고, 아이들은 온라인으로 개학을 맞는다. 이렇듯 우리를 둘러싼 부대 (틀)이 갑자기 바뀌는데, 그 내용물인 우리들의 사고는 쉽게 변화된 상황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옛 습관을 따른다. 오래된 옛 포도주가 더 맛이 있다는 옛 진리에 매달려, 아직도 코로나 19 이전에 따랐던 익숙한 옛 규칙들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아니겠는가? 긴 세월 동안 수 없는 시행착오와 갖가지 다른 상황에 대한 적응 과정을 거쳐 견고하게 세워진 관습과 규칙이 왜 그립지 않겠는가?

     대입 시험의 경우만 해도, 많은 대학들이 작금의 사태로 취소되는 시험들과 그로 인해 시험을 못 보게 되는 학생들이 속출함에 대응해, ACT/ACT 시험 점수의 제출을 최소한 올 해의 입학 사정에서 만큼은 필수로 요구하지 않고, 제출하지 않아도 손해가 없게 하겠다는 대열에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웨스트 포인트를 비롯한 사관 학교들은 아직도 이 시험 점수의 제출을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이 시험이 학교별 개별 시험이 아닌, 전국 표준 시험이고, 이 점수는 서로 다른 고교의 학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는 가늠자의 역할을 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이러한 정책을 꼭 나무랄 수 만도 없기는 하다. 그러나, 시험을 못 보게 되는 상황의 학생들이 차별을 당하게 되는 현실 또한 고려해야 함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시기에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넣는 용기와 수고가 필요하다. 이것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는 흑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 시위를 하는 흑인들의 사고 방식과 그를 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적용된다. 많은 견해들이 있지만, 여기 약 60년 전에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보여준 새로운 접근 방식을 길지만 인용한다:

     “내 자신에게 다짐합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감당하기에 너무도 큰 짐이라고요. 우린

우리를 가장 못살게 구는 박해자들에 맞서 분연히 일어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해야

합니다: 우린 당신들이 우릴 고통스럽게 하는 바로 그 만큼 그 고통을 참아낼 것입니다. 우린

당신들의 물리적 힘에 정신력으로 맞설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행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당신들을 계속 사랑할 것입니다. 우린 맨 정신으로 당신들의 불의한 법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에 타협하지 않는 것이 선과 협력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지요. 우릴 감옥에 처 넣으세요, 우린 그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우리들 집에 폭탄을 터트리고, 아이들에게 겁을 주더라도, 우린 계속 당신들을 사랑할

겁니다. 야밤에 복면을 쓴 침입자들을 우리 동네에 활보케 하고, 우릴 때려 거의 반죽음 상태로

만들더라도, 우린 아직도 당신들을 사랑할 겁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우린 우리의 고통을

참아내는 힘으로 당신들을 지쳐 나가 떨어 지게 할 겁니다. 어느 날 우린 자유를 쟁취하겠지만,

그건 꼭 우리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린 당신들의 마음과 양심을 울릴 것이기에, 이 과정

속에서 우린 당신들을 얻을 것 입니다. 이 승리는 양수겹장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킹 목사님이 알라바마 주 몽고메리 시의 덱스터 침례 교회당에서 1957년 크리스 마스 예배

때 행한 설교 중의 한 토막이다. 폭력 대신 사랑이라는 새 술과 새 부대를 외치는 킹 목사님의 설교가 더욱 쟁쟁하게 다가 오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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