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ay 교육 – COVID19 시련의 기간을 통해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

     요즘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이곳 시애틀에도 COVID19으로 몸과 마음이 혼란스럽다. 아시는 것처럼, 이것은 CO(rona)VI(rus)D(isease)(20)19의 약자이다. 즉,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질환이라는 말이다. 이런 저런 수다한 대책과 요령들이 발표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예방책 중의 하나가 손을 잘 씻는 것이라는 것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이것에 대해 잘 정리해 준 전문가의 도움말이 시애틀 타임즈에 게재되어 여기 소개하니 우리 자녀들과 부모님들께서도 따르시면 좋겠다. 마요 클리닉의 백신 연구 그룹의 책임자인 그레고리 폴란드 박사에 의하면,

     “화장실에서 손가락들 위로 물을 흘리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그리고 나서, 불결한  수도 손잡이나 화장실 문을 만지면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거지요. 공중 화장실의 수도 손잡이는 변기물보다 더 많은 박테리아들이 우글리는 경우가 많아요. 공공 장소에서 손을 씻을 때, 자신에게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불러 주세요 (이 노래를 천천히 부르면 대략 20초 이상이 걸리는 시간이니: 필자 주). 그러면서 가능하면 따뜻한 물과 비누를 이용해 손가락 사이와 엄지, 그리고 손끝을 잘 씻으세요. 다 닦은 후에는 휴지로 손을 닦으세요. 그리고 사용한 페이퍼 타월을 이용해 물을 잠그고, 화장실의 문도 같은 방식으로 연 뒤에 휴지를 버리세요.”

     이렇듯 건강, 경제, 신뢰의 면에서 위험이 도처에 도사린 세상을 살아 가는 한인 부모로서,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우리 자녀들을 참되고 안전하게 교육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즉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목표를 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바른 길일까?’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은 분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문제의 답을 도출해 나가는 작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조던 피터슨 교수의 “12가지 삶의 법칙 (12 Rules for Life: An Antidote to Chaos)”을 작년에 연재한 바 있는데,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그 중의 한 챕터를 여기 다시 소개한다. 열 한번째 챕터인 “아이들이 [위험해 보이는] 스케이트 보드를 탈 때, [너무 과도하게] 신경쓰지 마세요 (Do not bother children when they are skateboarding)”가 그것인데, 간단히 필자의 졸역으로 전해 드린다.

     뉴욕 타임즈가 “현재 서방 세계에서 가장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지성”이라고 극찬한 피터슨 교수의 열한 번째 챕터는 앞선 챕터들의 내용에서보다 좀 더 도발적이다. 이전의 장들에서도 성서의 내용을 과감하게 차용함으로서 비기독교인들의 심기를 자극했다면, 이 장에서는 현대의 사상가들이 전 근대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주제인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이다’ 또는 ‘유토피아적 평등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라는 문제에 도전을 제기하며,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남성은 여성을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마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짐작하셨다시피, 이 챕터의 제목에 등장한 스케이트 보드는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놀이터’이다. 인간은(그리고 아이들은)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며 발전한다. 너무 안전하면 다시 위험해 지고 싶어 한다.  위험한 상황들을 극복하고 익숙해지면, 즉 성공하는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이 생기고 혼돈에 맞설만한 힘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과잉 보호에 익숙해지면 장래에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 맥없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힘을 기르는 것이 생물학적인 차이점으로 인해 남자에게 맡겨진 분야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이 책의 저자에게 가해지는 혹평이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피터슨 교수의 주장을 아주 단순화해 소개하면,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사회적으로 구축된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남녀간의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기인한다. 즉, 여성은 체질상 공격적이지 않으며, 남성은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속성이 있기에 남자가 강해져 여자가 원하는 상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설명하며, 한 보디 빌더의 광고에 등장한 예화를 소개한다: 한 남자 아이가 매력적인 여자 친구와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지나가던 덩치 큰 불량배가 모래를 뿌리며 야지를 놓는다. 이 녀석 대들다가 큰 곤욕을 치르고 여자 친구에게 ‘나도 덩치를 키울꺼야’라고 말하니 친구왈, ‘괜히 고생하지마, 이 약골아’라며 핀잔을 준다. 다음해 각고의 노력으로 몸을 키우고 힘을 기른 뒤, 해변에서 다시 만난 불량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 때려 눕히니, 여자 친구 ‘당신은 정말 남자야’하며 매달린다. 자신을 째찍질해 강인해 진 남성을 여성은 원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동조하든 아니든, 우리 자신들과 아이들을 위한 관점에서 배울 점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자신을 단련하고 끊임없이 위험을 무릅쓰며 힘을 길러야 하고, 우리 아이들이 이런 노력을 할 때, (위험하니 걱정이 되어도 참으며) 방해하지 말고 지켜봐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노력의 동기가 자신을, 남을, 그것이 여자 친구이든, 나보다 못한 사람이든, 도움이 필요한 남이든, 주위의 이웃을 위한 것이어야 함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금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보며, 많은 분들이 이 질병 자체의 위험성 보다는 그것에 겁을 먹고 위축되며 남을 과도히 경계하며 걱정을 하는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을 한다. 우리의 심신이 작년에도 그 전에도 해마다 맞닥뜨렸던 플루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이 질병에 너무 지배 당하지 말자. 힘을 내 예방 수칙을 준수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남들까지도 배려하는 의연함으로 나아 감으로서, 마음의 근육과 몸의 건강을 지키면 이 시련도 무사히 지나 가며, 그 단련된 몸과 마음으로 우리 자녀들의 앞 날은 더 밝아질 것으로 기대하며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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