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통한 나이값의 의미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 그 둘은 결코 만나지 않는다 (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the twain shall never meet until Judgment Day). 인도 태생의 영국 시인인 루드야드 키플링의 시에 나온 유명한 구절로, 동서양의 문화는 다르고 세상 끝날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온 어구로, 인간의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긴다”에서 저자가 따왔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노라니 작년 이맘 때에 필자가 어설프게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한 칼럼이 생각나 여기 첨삭해 소개한다.

니콜라 고브리라는 프랑스 고등 연구 실습원 연구팀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가장 창의적으로 행동하는 나이가 25세라고 한다. 미국의 한 학술지에 발표된 이 연구 결과는 사람의 창의성은 4세부터 서서히 증가해 25세에 정점에 달하고 40세까지 완만하게 감소했음을 보여 준단다. 그 이후에는 60세까지 별 변화가 없고 60세 이후에는 급격히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 예로 뉴턴이 만유 인력 법칙의 틀을 세운 것이 25세 때였고, 그 이론을 뒤엎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것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설립한 때가 그 나이였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그 나이에 마이크로 소프트와 애플의 총수였다고 한다. 물론 역사를 되돌아 보면, 더 많은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이 그 나이가 훨씬 지난 후에 창의성을 고도로 발휘한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조금 다 나아가 워싱턴 대학의 세리 윌리스 교수와 워너 시아 교수가 1956년부터 50년 넘게 수천 명을 추적 조사한 “시애틀 종단 연구”라는 연구 결과도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글/이미지 처리 속도는 10대에, 창의성/계산/기억 능력은 20대에, 반응속도/기억 용량/얼굴 회상 능력/암산은 30대에, 귀납적 추리 능력과 공간지각 능력은 40대, 다른 사람의 눈에서 심리 상태를 읽는 능력은 50대에, 어휘 능력과 언어 기억 능력은 60대에 정점에 다다랐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들을 보며, 재미 있는 연상이 떠 올랐다. 동양의 공자가 2천5백년 전에 자신의 나이와 능력에 관해 논어의 위정편에서 설파한 내용이 생각났다. 옮겨 보면,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자왈오십유오이지우학)하고
三十而立(삼십이립)하고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하고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하고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하고
七十而從心所欲(칠십이종심소욕)하되 不踰矩(불유구)라. <爲政(위정편)>
번역을 보면,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에 확고히 섰고, 40에 미혹되지 않고, 50에 천명을 알았고, 60에 귀가 순해졌고, 70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공자의 말씀을 위의 연구 결과와 나이대별로 비교해 조금 억지를 부려 본다면 상당히 들어맞는 공통점이 없지 않다. 공자는 (또는 그 시대 사람들은) 십대에 학문에 뜻을 두었는데, 현대의 그 나이대 사람들은 학생으로서 가져야할 덕목인 글과 이미지 (책은 글씨와 그림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처리 속도, 즉 공부하는 능력이 최고조에 이르는 때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공자의 글에서 이십대에 대한 언급은 없고 삼십대에 이르러서는 혼자 섰다고 했는데, 현대인들의 경우 20/30대에 창의성, 기억력, 반응 속도, 얼굴 회상 능력 등에서 정점에 이르니 이 시기에 배우고 익혀 자립하는 일의 정점에 이르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겠다.
사십대에 공자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성숙해진 모습을 가졌다 하셨는데, 현대인은 그 나이대에 귀납적 추리 능력과 공간 지각력이 최정점에 오른다. 즉, 세상사에 있어 인과 관계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과 자신의 현 위치에 대한 자각이 있으니 불혹의 경지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십대에 공자님은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천명했는데, 현대인은 다른 사람의 눈에서 심리 상태를 읽는 일에 도사가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다른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아는 것은 공자가 하늘의 뜻을 안 것과 진배없지 않을까?
공자께서는 육십에 귀가 순해졌다고 했음에 반해 현대인은 어휘 능력과 언어 기억 능력이 최고조에 이른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말을 하거나 들을 때, 어떤 상황에 가장 적절한 언어가 무엇인지 기억해 때마다 원숙하게 시의적절한 어휘를 사용한다면 귀가 순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무리를 해서 비교하기는 했으나 억지만은 아닌 점들이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다른 예들에서도 볼 수 있지만, 현대인의 능력은 옛 사람들과 비교해 거기서 거기인 듯 하고 동양과 서양의 문화들도 깊게 들어가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인간에게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공통점이나 진리가 있다는 깨달음을 갖는다. 키플링의 위에 언급한 싯귀도 마지막 부분에서는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들에게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는 없어진다고 노래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