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완성

지난 토요일 지인이 딸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받으러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과학과 수학에 재능이 있는 이 고교 10학년 여학생과 그의 부모님과 필자가 나눈
대화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흥미있는 것이었기에 여기 그 일부를 옮겨 본다.

작년 이맘 때 KBS America에서도 생중계된 이세돌 9단과 구글에서 만든 인공 지능
컴퓨터인 알파고의 바둑 경기를 아버지와 함께 보았다는 딸의 이야기. 바둑을 좋아
하는 아버지는 “이 9단의 불계패를 확인한 뒤 잠을 청했지만, 한 동안 머릿속을 떠도는
‘이제 인간은 당해내지 못할 악마를 창조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쉽게 떠나질 않았다”
고 한다. 물론 섣부른 걱정이긴 하지만, 빅 데이터에 기반한 “집단 지능”을 갖고 있는
컴퓨터는 인간과의 싸움에서 벌써 이기기 시작한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동안 잠
못들고 뒤척였다는 아빠와 달리, 이 딸은 “어떻게 하면 이런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단다.

앞으로 과학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무인 자동차, 불치의 병이 없는 유토피아, 나아가
인공 인간의 창조 등등일 것이고 이것은 단순한 꿈만은 아니다. 인간은 어느 순간 ‘내가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신이 된것이 아닐까?’라고 자문하며 이제 드디어 옛 선조들이
실패한 바벨탑을 마침내 완성했구나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는 날에 다다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알파고가 집단 지능은 있으나 감정은 없듯이 나중의 컴퓨터 인간들 역시
인간 특유의 감정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자면, 사랑이 없는
냉냉한 금속의 지능은 그리 완벽하지도 희망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과학자인 아내에게 “기계가 갖는 집단 지성에 대항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라고 물으며, “혹시 인간의 창의력일까?”를 곁들였다. 즉답, “너무
단정적일 수는 있으나 세상에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것은 없다고 보면 되요. 모든 것이
모방에서 시작하고 요즘은 카피 앤 페이스트나 기존의 것을 에디팅 함으로부터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조심스러우나 단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면,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면 좋을 지 물어 오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현재의 추세를 보면 과학, 기술, 공학과 수학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조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한 보고서의 내용을 여기
소개한다. 미국 대학 교육 협의회가 ‘대졸 신입 사원을 선발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
하는 사항들’을 주제로 한 조사 기관에 의뢰해 나온 결과에 의하면, 대학 교육의 주된
목적이 단순히 직업 교육 또는 직업 훈련이어서는 안 되고, 장기적으로 회사에서 성공
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폭 넓은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 압도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4명 중에서 3명 이상의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모든 대학생들이
재학중에 리버럴 아츠와 사이언스 과목들에 노출되어야 하며, 96 퍼센트 이상의 회사
담당자들은 ‘대학생들이 인문학 교육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민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습득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조사 대상인 고용주들의 단 15 퍼센트만이 신입
사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구체적으로 직업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을 습득
하는 것이라는 답을 했다.

물론 이렇게 인사담당자들이 광범위한 교육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직업과 관련한
기술의 습득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인사 담당자들은 광의의
인문학 교육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에서 실질적인 기술을 익히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60 퍼센트의 조사 대상자들은 관련
분야의 지식과 더불어 폭 넓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지원자들에게 큰 관심을
둘 것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94 퍼센트의 고용주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이 직장에 지원
할 때, 지원자들이 대학 재학 중 회사나 어떤 관련 기관에서 인턴십이나 수습 과정을
거친 경험이 있다면, 이런 지원자를 선호할 것이라고 밝힌다. 또한, 동수의 기업인들이
이 새내기 졸업생들이 연구 능력, 문제 해결과 의사 소통 능력을 보여 주는 졸업 프로
젝트를 완성한 경우에 이 졸업생을 선발할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이 경영자들은 직장에
지원하는 새내기 졸업생들이 학교에서 상당한 양의 작문을 포함하는 수업을 여러 과목
수강했기를 원한다고 한다.

대졸 구직자들을 선발할 때 인사 담당자들이 주안점을 두는 것은 전공 분야를 넘나
드는 기술과 지식을 가졌는 지의 여부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다음은 이 선발 담당자들이
직원 선발시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17가지 사항들 중에서 중요한 몇가지이다:

1) 말로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 (89%); 2) 다른 사람들과 팀으로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 (83%); 3) 윤리적인 판단력과 결정력 (81%); 4) 비판적 사고력과 분석적
추론력 (81%); 5) 실제 상황에 지식과 기술의 응용력(80%). 글쎄, 기계와 인간의 차이를
구별하려는 노력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