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가는 길 하나

요즘 고등 학교에서 공부 꽤나 한다는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면, 그들의 장래 희망이 많은 부분 일치한다는 재미난 현상을 발견한다. 좀 과장되이 말하자면, 고교에서 뛰어나 보이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수학과 과학에 능력이 있는 아이들일 경우가 대부분이니, 이중에 네명중 세명의 경우 컴퓨터 사이언스나 엔지니어링을 공부해 돈도 많이 벌고 인류의 기술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희망이라고들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매년 한국계 학생중에서 워싱턴 대학에 진학하는 신입생의 반 이상은 자신이 유덥에서 프리 메드 프로그램에 들어 가 열심히 공부한 후에 유덥 의과 대학에 진학하고 명의가 되어 인류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한 수의 한국계 똑똑이들이 의대에 들어가기를 희망해 필자에게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은, “어떤 준비를 하면 괜찮은 의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요? 경력이 화려해야 겠지요?”인데, 이 글을 쓰기 직전에 같은 질문을 한 어머님께 다음의 이야기를 해 드렸다. “다양한 길이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난해 이맘 때 쯤, 시애틀 타임즈에 게재된 한 학생의 이력은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은데요. 한 번 읽어 보시지요.” 시애틀 타임즈의 “고등학교 자퇴생에서 유덥 의대생으로: 한 사람의 별난 인생 여정”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인데, 제목 그 대로, 아주 특별한 인생 여정을 보이는 한 사람의 흔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우리 자녀들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로 쓰시라는 의미에서 여기 그 대략을 소개한다.

티모시 우드위스는 동부 워싱턴의 작은 마을인 린드에서 12 형제 중의 여섯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체국 직원이셨고 어머니는 주부셨는데, 두 분 다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티모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자신의 일로 느껴지지를 않았고, 급기야 9학년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곤 인근의 맥도날드에 취직했는데 당시의 꿈은 열심히 일을 해서 언젠가 그 식당의 매니저가 되는 것이었다. 이 기간동안 틈틈히 한국의 검정 고시와 같은 GED 시험을 준비해 합격하기도 했다.

18살이 되었을 때, 우드위스는 워싱턴주의 방위군에 입대했고, 마침 일어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재난을 당한 뉴 올리언스에 파견되어 재난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하게 된다.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열망은 맥도날드에서 빅맥과 프렌치 프라이즈를 날라주고, 시간이 지나면 이 지점의 매니저가 되는 것 이상으로 변했고, 모세스 레이크로 이사를 한다. 그 곳의 커뮤니티 칼리지인 빅벤드에 등록을 하고 학업을 시작했다. 첫 수업은 기초 대수를 다시 듣는 것이었는데, 그곳에서 인생 역전의 스승인 바바라 휘트니를 만난다. 이 수학 선생님은 한 문제 한 문제를 참을성있게 도와주며 그를 격려했고 자신감을 고양시켰다. 이 선생님 왈, “대수 문제를 이해하든 못하든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 학생들은 등록금을 냈을뿐 아니라 공부하기 위해 여기 와 있잖아요, 가장 못 난 것은 묻지 않는 것이란 이야기도 있잖아요?” “내가 기억하건데, 티모시는 가정 형편은 좋지 않았지만 하고자하는 의지가 대단했어요.” 이 선생님 이외에도 그의 영작문을 도와 준 영어 선생님, 우드위스에게 그의 첫번째 A를 주신 역사 선생님 등등, 그의 인생 역전을 위해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 한다.

“뒤 돌아보니, 내가 이만큼 올 수 있었던 배후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어요”: 십대 때,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항상 무언가를 읽던 습관, 군대에서 배운 극기 정신, 신앙심 등등이 아주 중요했는데, 그 중에서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의 공부가 아주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커뮤니티 칼리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4년제 대학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다음의 9년동안 우드워스는 대여섯 가지의 전공을 넘나들며 결정을 못했고, 소방수로부터 회계사, 아니 다시 수의사가 되려는 등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의 학업은 두번의 보직 이동으로 중단이 되기도 했지만, 그는 다시금 커뮤니티 칼리지에 돌아 오곤 했다. 이러 와중에 결혼도 했고, 가정을 꾸리고 풀 타임으로 직장을 얻어 일을 했지만, 계속 학업을 지속했다. “난관이 왜 없었겠어요. 맥도날드에서 쫒겨났을 때, 첫번째 유기화학 과목에서 D를 받았을 때, 정말 그만 두고 싶었지요.” 이런 일들로 말미암아 학업을 포기할 순간이 많았지만, 그는 계속 학업을 놓지 않았다.

커뮤니티 칼리지를 3.5의 학점으로 졸업하고 풀만에 있는 워싱턴 주립 대학에 편입한 뒤 무지막지 공부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생화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미생물과 동물학을 공부해 작년에 우등으로 이 대학을 졸업을 하고 유덥 의대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원래는 수의사가 되려는 꿈도 있었지만, 지난 해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의사 벤 카슨이 쓴 “Gifted Hands”와 암의 역사를 다룬 논픽션인 “The Emperor of All Maladies”를 읽은 뒤 의사가 되려고 결심했고, 29세가 된 지금, 그는 마침내 유덥 의대의 일학년이 되었고, 후에 종양 전문의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우리 자녀들의 편한 일상에 경종을 울리는 인생 여정이 아닌가? 자녀들에게 이 신문 기사를 온라인에서 찾아 읽으라 권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