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보내는 편지: Life goes on

매년 구정 무렵이면 한국을 방문한다. 홀로 계신 어머님을 찾아 뵙고 인사도 드리고
퀄리티 타임을 같이 보내며 점점 약해 지시는 건강도 조금이나마 살펴 드리기 위함이다.
올 해도 구정을 앞두고 한국행을 계획하며 설레었는 데 난데없이 어머님이
입원하게 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막내 동생이 근무 하는 대학 병원에 입원해 계신데
상태가 좋지는 않다는 둘째의 전화였다.

장남으로서 항상 모시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하던터라 아내가 직장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먼저 떠나고 필자는 며칠 뒤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병원에 와 오랜만에 아들 구실을 아주 조금이나마 했다.
구정을 맞아 마침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가족을 만나러 고향에 가신 틈을 메움과 더불어,
항상 어머님이 편찮으시면 전심으로 돌보느라 고생하는 동생들과 누님 가족이
구정을 보낼 수 있도록 이틀 저녁을 어머님이 머무시는 병실에서 쪽잠을 자며
어머님을 간병했다. 일 년 만에 뵌 어머님이 편찮으셔서인지 참 많 이 늙어 보이신다.
깊게 고인 주름에 더해 틀니를 빼 볼과 입술 주변이 비정상적으로 패인 때의 얼굴 모습은
볼썽사납게 균형이 무너져 있었지만, 내 눈에는 젊으셨을 적의 고우신 얼굴 모습과
오버랩된 어머님의 모습이 어떤 중견 배우의 세련됨 보다 더 고상해 보였다.

하루쯤 지나니 어머님 이외의 병원 풍경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며
삶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병원 복도를 지나 잘 꾸며진 휴게실에는 바깥 풍경이
보이도록 큰 유리창 너머로 제법 큰 공원이 숲속에 펼쳐져 있고 그곳에서는 건강한
남녀노소가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거나, 청춘 남녀가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큰 통유리로 둘러싸인 안쪽에는 편찮으신 분들이 창너머의 밝은 모습에서
기를 받으시기라도 원하듯 뚫어지라 바깥편을 바라보시며 깊은 사색에 잠기신 듯하다.
병원 복도에는 각색의 서로 다른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바쁘게 입원실을 오가며
환자들을 돌보고, 대다수가 노년인 환자분들은 창문 안쪽의 격리된 입원 공간에서
균일한 유니폼 을 입고 자신만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 계시거나 휠체어를 타시고는
층 저층을 넘나들며 이런 검사와 저런 수술을 받으신다.

휴게실이나 복도에는 각양각색의 보호자와 가족들이 벼라별 모양 과 다양한 소리들을
펼쳐내 보인다. 갑자기 고성이 들려 뒤를 돌아 보니, 한 할아버지께서 병문안을 온 따님을
혼줄 내시는 중이시다. 입원하신지 며칠이 지났는데, 왜 이제야 방문을 했는지 꾸짖으신다.
“아니, 나도 너 에게 그리 잘 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이럴 수 있어?” 다른 한 편에선 중년의 아주머니가 어디론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귀에 들어 온다. 작지 않은 소리로 지인과 통화를 하는 목소리가 특히 이 부문에서
짐짓 어깨가 과장되이 높아 지며 톤이 가파 른 상승 곡선을 탄다.

“아니, 이 병원 이사장을 잘 아시니, 그 분에게 직접 전화해서 우리 개똥이 아빠 좀
잘 돌봐 달라 부탁 좀 해 주세요.” 편찮으신 분들이 가족을 더욱 그리워함의 미정제된
표현이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님들에게 직접 부탁하면 될 터인데 뭔가 자신의 지위를 남에게
드러 내고자 하는 과시욕이라 생각하니 좀 씁쓸했다.

병실과 복도에서 만나는 간병인들은 대부분 연변 동포 여성들로 특유의 사투리로
병원 분위기의 한부분을 채우고 있다. 요즘은 많은 병원에서 청소하시는 분이나
간병인분들을 대우해 아주머니라 하지 않고 여사님이라 부른다는데,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된 일임을 생각할 때,
일견 적당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투가 조금은 톤이 높고 얼핏 들으면
거친 단어들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네 옛날 시골분들의 소박함과 정겨움이 배어난다.
동생과 간병인분 들의 말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미 있는 현상을 전해 들었다.
강남의 소위 잘사는 분들이 모인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연변말투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은데 왜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렸다.

답인즉슨 강남의 잘나가는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풀타임으로 입주해서 아이와
가사를 돌보는 분들을 구하는 경우가 많단다. 그런데 한 국의 여성들은 이런 일을
하기를 꺼리고, 대부분 연변 출신의 여성분들이 이런 일들을 하게 되니 아이들이
자연히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내며 대화하는 상대의 언어를 배우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네 삶과 자녀 교육도 그렇다. 우리 자녀들이 받은 성적이
나 학교 생활이 부모 마음에 흡족히 차지 않고 모든 것에 모자라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자녀들이 가장 많이 보고 닮으며 자란 우리네 부모들의 모습과 비슷함을 깨달으면
야속함보다는 미안함이 올바른 감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 미안해 하지는 말고 지금부터 우리가 태도를 바꿔 보자. 우리네 삶 속에서,
마음 바꾸기 너무 늦은 때란 없다. 로버트 프로 스트가 그 자신의 삶을 통해 인생에
관해 배운 모든 것을 세 단어로 요 약한 것처럼 (It—Life—goes on), 세상은 계속 돌아 가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