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선배가 많이 편찮으시다. 지난 주일 선배의 병실을 찾아 문병을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털털한 겉모습 안에 세심한 속마음을 담아 워낙 베푸시는 분이라 많은 지인들이 병실을 찾았다. 문안 , 병실 밖에 삼삼오오 모여 선배와 얽힌 추억담들을 풀어 내는 방문객들의 이야기 자락에는 하나같이 공통된 흔적들이 묻어 있었다. 자신의 일만으로도 바쁜 일상속에서, 이분이 두루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얼마나 시간과 정성을 들여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베풀어 왔는 , 표현은 달랐으나 내용은 도긴 개긴이었다. 다른 한가지 특이한(?) 점은 안팍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보통 남자들은 집밖에서 세심한 경우, 집안에서는 지쳐서인지 그렇지 않은 때가 많고, 집안에서 다정다감한 이들은 바깥에서는 자기만 생각하여 소심한 이기주의자일 경우가 많다. 밖에서 다감한 선배, 가정에서도 다정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은 침대맡에서 아빠의 머리를 자신의 팔로 받치고 머리를 쓰다듬어 정리해 드리는 아들 녀석의 아름다운 모습에 분명히 투영되어 있었다. 집에서 평소에 하던 일이니 저리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 아들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다니던 의과 대학을 휴학했는가 하면, 둘째 녀석 역시 병수발에 많이 지치신 엄마를 돕겠다며 반도 남은 학기를 과감히 정리하고 동부의 대학에서 돌아 왔다.

어떤 문병객들은 이렇듯 예수의 품성을 닮으려 애써 살아온 선배가 아파 누워 있어야 되느냐는 원망아닌 푸념을 쏟아 놓는다. 동네의 못된 인사들은 잘먹고 잘사는데, ?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안다. 세상에서건 아니면 세상에서라도, 이웃을 배려하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적절히 대접받게 것임을

이제 거의 대부분의 대학들이 입학 원서를 제출해 놓고 몇달전부터 밤잠을 설치며 그 결과를 애타게 기다려 온 수험생들에게/불합격의 통보를 끝냈다. 빠르면 11월말에, 늦어도 금년초에 원서를 접수시킨 뒤부터 이어진, 약 삼사개월간 초조와 긴장으로 채워진 긴 기다림의 드라마가 드디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오래전부터 입학을 꿈꾸어 오던 일지망 대학에의 진학이 좌절된 좐에게는 4월이 참으로 잔인한 달임에 틀림이 없다. “Why Me?” 이 경우에는 부모님과 학생 모두 각각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마치 멀쩡히 열려 있던 취업 이민 신청의 문호가 갑자기 막히자 영주권 신청서가 반려되고 마음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들의 불합격 통지서를 보며, 아들 녀석보다 더 크게 한 숨을 땅이 꺼지게 쉬는 모습은 아이의 상처난 심장에 염장을 지르는 행위임을 아셔야 한다.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고 눈물을 글썽이는 자녀의 면전에서 “내가 그랬지,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그렇게도 공부를 안하고 빈둥거리고 게임만 하더니 꼴 좋다.”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다. 기대가 무너진 것에 대한 실망감이 절제력을 잃게한 경우이다. 이러한 지나친 실망과 폭언들이 실망으로 억장이 무너진 자녀의 마음에 생각없이 쏘아버린 독화살임을 이렇게 퍼부을 당시의 부모님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그날 저녁이면 후회할 일을 홧김에 생각없이 저지르는 실수를 해 보신 경험이 없으신지? 이러한 상황에 있을 수록 호흡을 가다듬고,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란다, 인생은 길고 대학은 어떤 대학을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대학에서든지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전심을 다해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어깨를 감싸고 세심하게 위로하며 용기를 주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

자녀의 입장에서도 그리 눈물을 글썽이며, 하나님만 원망할 필요는 없다. 정해진 지난 시간동안 다른 학생에 비해 올바르게 시간 사용을 못하고 개으름을 피운 결과가 이것이라면, 정말 통렬하게 자신을 돌아 보고, 마음을 다 잡아 커뮤니티 칼리지이든지, 가능한 다른 4년제 대학에서이든지 다음 2년을 열심히 노력해 자신이 꿈꾸는 대학에 편입을 하면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 했는데도, 결과가 제 1 지망 대학에서 불합격이라면, 불만족한 결과의 원인을 전문가와 다시 한 번 꼼꼼히 짚어본 뒤, 차선의 대학에서 열심을 내 공부할 일이다. 학생 본인이 어떻게 대학 생활을 충실히 잘 보내느냐에 따라 4년 뒤의 위상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위의 선배의 아내가 문병 예배가 끝난 후, 공손하게 참석자들에게 부탁한 말이 생각난다: “제 남편과 저희 가족을 위해 우시지 마세요. 앞으로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저희는 순응하고 기쁘게 나아가기로 마음을 다잡고 있답니다. 우리 함께 기쁘게 찬송하는 축제의 자리가 되었으면 해요.” 물론 그 녀 자신의 눈망울에 비친 눈물을 본 사람만이 그 세심한 배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