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무등을 탄 난쟁이
추수 감사절 휴가가 끝난 월요일에 서로 친한 친구 사이인 어머님 세 분이 자녀들의 공부 문제를 상담하시러 사무실에 함께 들르셨다. 공통적인 화제는 이 가정들의 작은 녀석들은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인데, 큰 녀석들은 기대에 조금 모자라 걱정스럽다는 이야기였다. 왜 그럴까를 같이 생각하다 보니, 잠정적인 결론은 작은 아이들은 거인의 어깨에 무등탄 난장이처럼 자연스레 거인 (큰 아이)과 함께 여러가지를 힘들이지 않고 경험하기에 일견 앞서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큰 아이들이 커서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은 작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현 상황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기에 큰 아이들이 좀 떨어져 보일 수 있다는 것도 고려 상황이다. 대화 끝에 역시 머리가 커진 아이들 공부를 시키려면 동기 부여가 시발점이라는 이야기에 방점이 찍혔다.
부모님들과의 대화를 마친 뒤, 어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자니, 지난 주 휴일에 부모를 보러 왔던 아들 녀석과 지낸 시간이 생각난다. 감사절에 시애틀을 방문했던 아들 녀석이 동부의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바래다 주려 시택 공항엘 갔었다. 조금이라도 아이와 같이 있으려는 아내는 보통 때 같으면 조금이라도 지출을 아끼려 공항 파킹에 돈을 낭비(?)하지 않으려 했겠지만, 한 삼십분 파킹 요금을 지불하더라도 기어이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모른채 하고 아이들을 해당 항공사인 알레스카 표지판 아래의 갓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려 주었다. 이젠 미국 온지 꽤 되어서인지 자연스레 미국식으로 아들 녀석과 포옹을 하곤 어깨를 한 번 툭 쳐주며 작별 인사를 하노라니, 어느새 애비보다도 한 뼘쯤 더 커버린 아이의 체형과 제법 단단한 근육이 낮설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대견한 기분이 들었다. 휴대 전화로 사진 몇 커트를 사람을 바꿔 찍은 후 출입구로 들어가는 아이를 몇 번씩이나 안아준 아내는 뭐가 그리도 걱정이 되는 지 이제 되었다고 손을 휘휘 젓는 아들 녀석을 아랑곳하지 않고 뒤 따라 들어 가며 옷 매무새를 고쳐준다.
아직은 연휴가 하루 더 남은 토요일이어서 인지, 차들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안내 방송은 계속 “시택 공항에는 출영객들이 자동차를 파킹하는 것이 금지 되어 있다”고 협박을 해 댄다. 기가 죽어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올까하다가, 아내가 나올 때 까지 잠시 정차한 상태로 차 속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차 속에 않아 혹시 파킹 단속을 하는 경찰관 아저씨가 오는 지를 백미러로 힐끔거리고 있노라니, 계속해서 도착하는 차에서 내린 출영객들이 자녀들을, 친구를 , 부모님을, 연인을 보내며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들이 들어 온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작은 키의 딸 아이를 배웅 나온 한 어머니가 딸과 몇 번이나 포옹에 포옹을 거듭한 뒤 겨우 아이를 보낸다. 아이도 들어가다가 말곤 몇번이나 뒤를 돌아 보며 손을 흔들어 사랑을 전한다. 왠지 검은 머리와 동양계의 얼굴을 한 딸 이 아이가 마음씨 좋아 보이는 미국 아줌마의 입양된 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이 아이는 참 운이 좋은 녀석이구나하는 뜬금없는 상상을 하는 중에, 그 차가 떠난 자리에 다른 차가 도착해 멈춘다. 이번엔 아들 녀석을 바래다 주러 나온 뚱뚱하고 아랫배가 불룩 나오신 아빠가 불편함을 부릅쓰고 차에서 내린다. 곱상하고 아빠와는 달리 날렵하게 생긴 이 아들 녀석 뭔가 오는 길에 다투기라도 했는 지, 간단히 아빠에게 포옹을 해 주곤 총총 걸음으로 공항 청사로 들어 간다. 멀어지는 아이를 보며, 이 아빠 목을 빼고 아이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까치발을 하신다. 참 자식이 뭔지!!!
백 미러에 눈을 고정하고 있느라 기척을 못 느꼈는데, 아내가 어느새 돌아와 유리창을 똑똑 두들긴다. 문을 열어 주고는 시동을 걸며 “아이구, 그렇게 애들하고 같이 있고 싶어,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니 좋으셨나?” 묻는다. 아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제 당분간 또 우리만 있으니 얼마나 좋아, 편하고 자유롭고…” 위로성 멘트를 날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는 섭섭함이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로 “아니 이 녀석들이 글쎄 내가 같이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눈치지 뭐예요. 자꾸 들어가라고 얼마나 성화인지.” 이제는 다 커버려 우리의 도움이 그리 크게 필요하지 않는 아이들이 좀 서운한 모양이다. “아니, 당신 빨리 들어가 쉬라고 아이들이 그러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실험실 일이 바빠 피곤하니 그러는 거지”
금방 기분이 풀어진 아내와 집으로 돌아 오는 차 속에서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기억남는 일들을 하나씩 꺼내 닦으며, 상상으로 기름을 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생각나, 당신?, 그 왜 큰 애가 초등 학교 삼학년 때인가 추수 감사절 다음주에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이 모두들 칠면조 맛있게 먹었니하니까, 딸 아이가 우리는 던지니스 크랩을 먹었다고 자랑했었던 이야기 말이야. 그랬더니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서 무안해 했었다는 사건”… 나도 에피소드 한가지를 꺼내 든다. “큰 아이가 작은 애 어릴 때, 자주 업어 주고, 살갑게 챙겨 주곤 하던 것 생각나? 작은 애 친구들이 좀 괴롭힌 걸 듣더니, 그 남자애들을 제 누나가 무섭게 혼 냈었잖아” 거인의 무등을 탄 난쟁이처럼 누나 덕을 많이 보며 쉽게 자랐지. 그런데 이제는 누나 짐을 자기가 다 들어 주고 위하는 걸 보면, 참 대견하지?” 그렇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점점 커가며 자신들의 삶에 대한 동기를 하나 하나 차곡 차곡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