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추수감사절이 되면 타 지역으로 공부하러 떠났던 자녀들이 돌아 온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경우에는 기쁜 마음으로 귀향할 만큼 한가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이런 기회를 핑계 삼아서라도 집에 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집에 온 아이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각지에 흩어져있다 귀향한 친구들과 만나는 것이 더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잠깐이라도 본 얼굴이 반갑지만 밖에서 더 시간을 보내는 아이에 토라진 어머니 아이를 나무라시다 이제는 머리가 큰 아이와 다투고는 곧 후회를 하신다. 그저 잘 지내다가 건강하게 돌아 온 아이가 고맙다가도, 학교 성적이야기, 여자 친구 이야기, 남의 아이들과의 비교 등으로 서로에 대한 감사가 사감 (사사로운 미운 감정)으로 변질된다. 이번 주 우리 목사님 추수감사절 설교에 등장한 바울의 자족하는 태도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나는 어떤 처지-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부족하거나-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집에 돌아 온 딸 아이와 함께 교양이 넘치고 알뜰한 우리의 미세스 김이, 조금은 이른듯 하지만, 블랙 플라이 데이 세일을 구실 삼아 크리스 마스 샤핑에 나섰다. 부모님등을 비롯해 아주 소수의 분들께 최소의 비용으로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드렸으면 하는 소망으로 정성어린 선물을 사느라 열심히 발품을 팔다보니 시장하고 목이 말랐다. 마음 한구석에는 어휴 커피 한 잔이면, 리스트에서 애석하게 빠진 고모님께 조그만 선물을 하나 해드릴 수 있을텐데 하는 주저함도 있었으나 조그만 과자 한 봉지와 커피를 한 잔 사 마시며 좀 쉬기로 작정을 했다. 딸 아이는 봐둔 자켓을 본다며 백화점으로 들어간 사이 몰안의 스타 벅스 스토어엘 들렀다. 긴 줄에서 얼마를 기다린 후 겨우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과 마들렌 쿠키 몇 조각을 사 다른 손님이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테이블의 맞은 편에 겨우 한자리를 얻어 양해를 구함도 없이 풀석 주저 앉았다.

며칠 전 시애틀 타임즈의 일요판에 포함되어 들어 온 세일 품목 안내 광고문을 읽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과자 봉지에 손을 뻗었다. 아니 이게 웬 일?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과자 봉지에 거의 동시에 뻗쳐 과자 한 조각을 집어 들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한입 덥썩 베어 무는 것이 아닌가. 맘씨 좋은 김여사, 뭐 실수였겠지. 신문을 열심히 읽다가 보니 자기 것인줄 알았겠지. 그저 넘어 가고, 시선을 다시 세일품 카탈로그로 옮긴다. 잠시후, 커피를 한 모금 홀짝 거린뒤, 다시 과자 한조각을 집어든다. 아니 이런 또 다시 앞의 그 남자, 맛있는 내 과자를 한조각 집어들곤 빙긋이 웃음까지 띈 표정으로 자신의 티 잔에 살짝 담근 후 한입을 베어무는 것이 아닌가. 그래 얼마나 무안하면, 얼마나 배가 고프면, 남의 것을 말도 없이 먹을까하며, 감사절 다음날인데 이 정도야 넘어가줘야지 다짐한다.

이제 아팠던 발도 좀 나아졌고, 아직 더 사야될 품목들도 있어 마지막 남은 쿠키를 입에 물고 커피 한 모금으로 살살 녹여 먹어야지 생각하며 손을 쿠키 봉지에 뻗는 순간, 아 참 동작 빠른 이 남자 자기가 먼저 냉큼 마지막 남은 과자 조각을 집어들어선 반쪽으로 똑 잘라 김여사에게 넘겨 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 몰상식한, 아니 반쯤밖에 양심이 없는 XX. 교양있는 김여사의 입에서 거의 튀어나올 뻔한 욕을 간신히 삼키곤, 뭔가 고상하게 한 방 먹여줄 영어 구절을 머리속에서 찾을 즈음, 이 남자 보고 있던 신문을 차곡 접어 겨드랑이에 끼곤 사람좋은 목례와 함께 자리를 떠난다. 참, 나. 요즘은 여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방법도 여러가지구나 자위하며, 주섬주섬 카탈로그를 챙겨 가방에 넣으려는 순간 가방 속에 삐죽이 얼굴을 내민 마들렌 과자 봉지가 머리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화가나 뚜껑이 열렸던 머리에 얼음 냉수를 확 끼얹어 김이나게하는 그런 기분. 아니 뭐야, 남의 과자를 먹으며, 그리도 불평을 한거였어?

작년 추수감사절 칼럼에서 인용한 이야기를 다시 인용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받은 그 사랑을 잊고, 모든 것이 원래부터 자기것인양, 조금이라도 손해볼까 노심초사하며 불만에 가득찬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추수감사절은 올 한해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화 한 통이라도 드릴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할 그런 시기이다.

우리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조금만 뒤로 물러나 김여사가 가방을 뒤지듯, 우리 속부터 다시 한 번 살펴 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지. 공부에 소홀한 자식을 두둔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이렇게 잘 생긴 우리 아이 올 해도 건강하게 지켜 주셨으니, 이제 정신을 가다듬어 좀 더 열심히 살아가길 바라는 기도와 함께 어깨한번 보듬어 안아 주는 것도 좋지 않을실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