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닌 보여 주는 교육

지난주 출석하는 교회의 가을 사경회에서 강사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대목. 교육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는 간단한 교육의 진리. 사실, 이리 하고 저리 해라. 이런 하지말고 저것만 열심으로 해라 명령하는 것이 먹혀 든다면 누가 자식 농사를 걱정하겠는가? 반항하는 아이들을 보고아니 이런 망나니 녀석이 어디에서 나왔나한탄하다가도 아이의 모습 속에서 어린날의 자신을 보게된다는 말씀은 공감이 쉽게 가는 이야기였다. 끝나고 집에 허겁지겁 저녁 먹고는 피곤하다고 한국 드라마 보다가 소파에서 혼자 잠이 들기 보다는 우리네 한인 동포들이 미국에 목적중의 하나인자녀 교육 위해서라도 아이들 방에 들러 잠깐이라도 아는 척해 주며 사랑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교의 부문을 들으며지난 겨울 한국을 출장 방문하는 비행기 속에서 본 영화가 생각났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엘리아 카잔 감독이 1955년에 영화화한 “에덴의 동쪽”이다. 고등학교 때인가부터 좋아했던, 우수에 찬 제임스 딘이 사사건건 아버지에 반항하는 아들로 출연한 영화이다. 큰 아들을 무한신뢰하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는 원망을 반항으로 표현하는 둘째 아들의 고단한 삶이 필자가 전에 교수로 일하던 캘리포니아 주의 몬트레이와 살리나스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어 흥미를 더 했던 기억이 난다.

     존 스타인벡의 원작을 그대로 충실히 따른 것은 아니고 소설 후반부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영화의 내용을 잠시 살펴 보자. 미국이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인 1917년과 18년을 배경으로 제법 성공적인 미 서부 농부 집안 가족들의 애환이 펼쳐 진다. 기독교 신앙 원리에 철저한 아버지와 그 뜻을 충실히 따르며 예쁜 약혼자까지 둔 큰 아들, 아버지의 기독교적 순수함에 대한 강요에 숨이 막혀 집을 나가 근처의 도시에서 술집을 경영하며 집안과 연을 끊고 사는 어머니. 그리고 모든 것을 큰 아들에게 선점당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지만 번번이 일이 꼬여 아버지의 미움만 사게 된다. 이 모든 갈등과 애증의 끝에 둘째 아들은 형의 약혼녀의 사랑을 얻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회복하게 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으랴만, 현실 속에서 자녀를 키우다보면 더 정이 가고 부모의 사랑이 더 깊게 가는 자녀가 있기 마련이다. 스타인벡의 소설과 이 영화가 바닥에 깔고 있는 성경 속의 사건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다.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인 카인과 아벨 중, 큰 아들인 카인은 아벨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 동생인 아벨을 살해한다. 그 이후 아브라함의 가계에 등장하는 성경속의 가족 이야기는 우리네 일상에서 만나는 다툼과 갈등의 전형을 보여준다. 야곱과 에서의 장자권 다툼, 요셉과 형들 사이에서 시기로 인해 벌어진 갈등. 부모의 편향된 사랑이 얼마나 자녀들에게 큰 악영향을 끼치는 지를 보여 주는 여러 사례들을 미리 보여 주는 듯 하지 않은가?

     같은 여행에서 돌아 오는 비행기 속에서 본 다른 한 편의 영화 역시 실천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젊은 시절의 시드니 포이티에가 주연을 맡은 “To Sir, with Love (선생님께, 사랑을 담아)”였다. 영국 런던의 빈민가에 초임 교사로 부임한 젊은 교사가 어른들을 믿지 못하는 아이들과 벌이는 갈등과 사랑을 담은 영화였다. 1967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런던의 동쪽끝 빈민가에 위치한 노스 퀘이 고등학교 졸업반 교실에 부임한 교사가 어떻게 학생들의 마음을 얻고 그 아이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지를 보여준다. 개봉 당시,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제곡인 “To Sir, with Love”가 그 해 빌보드 차트의 넘버 원 팝송으로 뽑힐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었다.

     주인공인 태커리 선생은 공대를 졸업하고 원래 엔지니어링 회사에 취직하기를 원했지만, 취직이 되지 않자, 학생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학교를 갑자기 그만둔 전임자의 후임으로 이 학교에 임시 교사로 취직한다. 첫 시간부터 거친 학생들로부터 고난을 겪지만, 차차 학생들을 다스려야할 꼬마들로서가 아닌 성인으로 대하며 생활속에서 필요한 지식을 대화체로 풀어나가 아이들의 신임을 얻기 시작한다. 그 후 우여 곡절이 있었으나 학생 하나 하나를 존중하는 그의 태도가 전체 학생들의 신뢰를 얻고, 좋은 엔지니어링 회사에 취직 통보를 받은 후, 학생들의 졸업식을 치루게 된다. 졸업식에 열린 댄스 파티에서 학생중의 하나가 이 영화의 주제곡을 부른다. 노래의 일부를 의역해 소개하면, “…어떻게 소녀에서 숙녀로 변화케 해주신 분께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쉽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할께요. 하늘을 원하시면, 저 높은 하늘에 ‘선생님께, 사랑을 담아’라고 편지를 쓰겠어요…(다른 것도 드릴 수 있지만) 제가 제 마음을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선생님, 사랑을 담아서.” 정성이 담긴 선물과 노래에 감동한 태커리 선생은 자기의 사무실로 돌아가 회사에서 보내 온 입사 허가서를 찟으며 학교에 남기로 결심한다.

     우리가 사는 곳이 런던의 동쪽 끝 빈민가이든, 에덴의 동쪽 추방지이든, 어떤 환경 속에서라도 우리 자녀들을 편애하거나 자기 고집대로 몰아 세우기 보다는 각자의 모양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 그들에게 참된 교육의 기회를 주려 이국땅까지 왔다는 우리 이민자 부모의 역할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