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한국인이 본 우리 아이들의 장점

     지난 주일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의 주일 예배에 귀한 손님이 방문해 설교를 하셨다. 50년쯤 전에 한국의 강원도 산골짝에 둥지를 예수원이라는 공동체 수도원을 설립하신 대천덕 신부님 (아쳐 터레이 성공회 신부) 아들인 대명복 ( 토레이) 신부였다. 필자에게는 예수원이 특별히 감회가 깊은 곳인데, 아내와 결혼을 하고 신혼 여행의 말미에 눈덮인 추운 겨울의 산골 예배처를 찾아 벽안의 신부님 처소에서 며칠을 지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이해하고 계시는 신부님 ,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황지의 삼수령 목장으로 부터 내려 동해, 서해, 남해의 바다로 흘러 가면서 주변을 촉촉히 적시는 것처럼, 한국에서 평양을 향해 흐르는 사랑과 기도의 강물 (4번째 강물) 남북한의 통일을 대비해야 한단다. 더욱 가슴에 깊이 닿은 것은 우리 미국에 사는 한인 동포 자녀들이 미국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모두 알기에 남북 통일이 후에 남북한의 간격을 메워 있는 최적의 준비가 일꾼이라는 이야기였다. 말씀인즉슨, 예를 들어 북한의 주민들이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미국의 직설적인 화법과 통하며, 남한에서 일반적인 돌려 말하기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흥미있는 예로, 남한에서는 어떤 일이 성사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에도, “그건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경향이 있고,  “그럼 얼마나 시간이나 돈을 투자하면 됩니까라고 물어도 가능성이 없다는 직설적인 부정을 애써 피하려는 태도가 있다는 관찰이었다. 반면, 북한이나 미국에서는 같은 경우에, 즉각그건 됩니다라고 면전에서 즉답을 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이런 한국 부모에게서 가정 교육을 받고 가정 밖의 학교나 사회에서 미국식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우리 자녀들이야말로 통일 한국의 남북한 시민들 사이의 깊은 문화 차이의 골을 메우고 보듬을 완충제 역할을 있을 것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말씀이었다.

     벽안의 성공회 신부가 한국어와 영어를 거의 자유롭게 구사하며, 이런 말씀들을 전개하시는 동안, 과연 우리 재미 한인들은 우리 자녀들에게서 어떤 장점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부모님 조국의 미래에 대한 어떤 비젼을 주고 격려를 해주었는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 왔다. 1970년대에 3만 9천명에 불과했던 코리언 아메리칸의 인구는 이제 백만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수는 늘었으나, 우리의 교육 방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마의 변에서 인용했던 고리짝 그의 어머님의 말씀에 요약되어 있지나 않은지: “ , 이놈아, 모난 놈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눈치보면서 살아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러한 사고 방식은 우리네 미국에 사는 부모님들에게도 배어 있을 수도 있다. 하고 싶은 것을 과감히 할 수 있는 모험심이나 당장 힘은 들고 돈은 안되어도 창조적인 열정을 길러 주기 보다는 그저 돈 잘버는 의사나 사업가, 엔지니어가 되어 모나지 않게 잘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은연중에 심어 주고 있지나 않은지?

     얼마전 유명을 달리한 로빈 윌리암스가 나오는,  “죽은 시인의 사회 (1990년 영화)”에서 인용되었던 미국 시인 월트 위트만의 싯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 “시가 그저 그럴듯하기에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인류 사회의 일원이기에 읽고 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의학, 경영, 엔지니어링은 인류가 생명을 지키는데 필요한 귀한 일들이다. 하지만, 시, 아름다움, 로맨스, 사랑은 그것을 위해 우리가 사는 목적들이다. 휘트만이 노래한 것처럼,…(인생이라는) 연극은 계속되고, 당신은 거기에 한 싯귀를 보탤 수 있다. 당신의 싯귀는 무엇인가?” 우리 아이들이 주인공인 인생극 속에 ‘한 싯귀’를 더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한 코리언 어메리칸 젊은이가 통렬하게 내뱉은 말들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한인 교포 자녀인 웨슬리 양이라는 청년의종이 호랑이: 시험이 끝난 , 아시아계 미국인 똑똑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라는 뉴욕 매가진에 실린 몇 년전의 글을 말한다. 제목 자체가 풍기는 인상처럼, 학교 공부에 매달고 하루 하루를공부, 공부해가며 우수한 성적을 받는 우리 아시안 아메리칸 자녀들이 시험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대학 생활을 벗어나  현실 사회속으로 들어가면 사회성이 없어 팀워크에 약하고자기 의견을 용기있게 발표할 모르는 의기소침증 때문에  맥을 못추니 그러 그러한 일들에만 만족해 사는 현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젊은이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을 하는 것은 아니라해도 우리 부모님들이 들어 약이 될만한 논리가 있음을 부정할 없었다. 그가 느끼는 아시아 부모님들의 사고 방식을 자신의 말로 요약하면 (Fxxx 어구의 앞에 붙였기에 뭐라 번역을 해야할가 고민하다 나름의 의역을 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빌어 먹을! 부모에 대한 무조건 복종 (유교 사상의 부자유친을 말하는 듯함), 놈의 공부 공부를 달고 사는, 생각없이 아이비 대학만 노래하는, 쓸데없이 권위에는 쪽을 못쓰고 복종하는, 엿같은 겸손과 과도한 열심이 넘치는, 모나지 않은 관계에 대한 광신을 고집하는, 미래를 위해서는 뭐든 포기하는…” 정도에 과함이 있기는 하나 글쎄, 우리네 이야기를 미국식의 직설적인 표현으로 해준 것이나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