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산

지난 주 월요일은 1968 4 4일 암살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업적을 기리는 연방 공휴일이었다. 학교에 안가는 날이니 좋기는 한데, 어떤 분이기에 그 분을 기리는 공휴일을 만들어 놓았는지의 참뜻을 충분히 이해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되는 지 궁금하다. 미국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는마틴 루터 킹마틴 루터의 이름을 혼동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음을 경험한 바도 있고, 요즘은 한국에서 한국 전쟁이 남침이었는지 그 반대인지 헛갈리는 학생들도 많다하니 뭐 미국의 교육 제도만을 그리 나무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잘 알려진 킹목사의 연설 몇 구절이 귓가에 맴돈다: “나에겐 꿈이 있다오. 언젠가는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닌 자질에 의해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서 사는 그 날이 올 것이라는 꿈 말이요피부색이 검은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아이들과 친 형제 자매처럼 손에 손을 맞잡고 뛰노는 그런 날 말이요언젠가는 자유롭게 될 거라는 그런 믿음으로 우린 함께 일하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고통도 함께 나누며, 감옥을 가더라도 함께 가고, 자유를 위해 함께 투쟁할 수 있을 거요전국의 방방 곡곡에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합시다모든 주의 자녀들이흑인이건 백인이건,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신교도이건 가톨릭이건손을 맞잡고 마침내 자유를 얻었네,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드디어 자유를 얻었습니다라는 흑인 영가를 같이 부를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힘을 모읍시다.”

킹 목사가 이 연설을 한 지 40여년이 지난 지금, 흑인의 후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연임에 성공하는가하면, 백인들의 아성으로 여겨졌던 프로 풋불팀의 쿼터 백들 중에 흑인 선수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고, 올 해의 수퍼볼에 진출한 시애틀 시혹스의 흑인 쿼터 백도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이렇듯, 미국에서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 등 소수계의 상황이 눈에 띠게 변해 가고 있다. 이렇듯 정치면, 경제, 그리고 문화면에서 킹 목사가 꿈꾼 그 날이 가까워옴을 체감하는 시절을 맞게되다니 정말 세월이 변하기는 하는구나라며 상념에 잠기다가 현재의 미국이 교육면에서도 킹 목사가 꿈꾼 창조된 모든 이들이 평등한 (all men are created equal)” 그런 세상이 되었는 지에 대해 생각이 미친다.

이국 대학의 입학 사정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와 지적에도 불구하고 끈기있게 살아 남는 제도는 Legacy 제도(조상이 해당 학교 출신이거나 기부를 많이 한 학생들에게 특혜를 주는 제도)이다. 몇 년전 뉴욕 타임즈가 이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었었는데, 이 제도가 과연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합당한 지에 대한 분석 기사였다. 이 기사에 의하면, 사립 대학들에서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버드 대학이350억 달러의 학교 기금을 갖고 있고, 예일의 기금이 225억에 이르는 것은 모두 동문들이 낸 기부금을 모태로 키운 자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기금들이 학교 발전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 대학들의 경우는 이 제도를 조심스럽게 운영하고 있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2002년에 주립 대학인 휴스턴 대학은 이 레가시 특혜가 아니면 탈락했을 학생 324명을 합격시켰는데, 이 중에 백인이 321명이었고 흑인은 단지 3명이었다. 이 대학은 이 사실이 언론에 밝혀지고 문제가 되자 이 제도를 곧 폐지했다.

미국의 공사립 대학에 동문들이 내는 기금이 연간 80억을 상회하는 큰 액수에 이르기 때문에 사실 대학들이 이 제도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이 돈을 기부하는 목적은 경제학자인 조나단 미어의 지적처럼 단지 모교에서의 학창 생활에 대한 장밋빛 추억이나 이타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동문들이 기금을 더 많이 내는 경향이 있고, 자녀가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가까와 오면 액수가 늘어나고, 입학 사정이 끝나면 액수가 훨씬 줄어 든다고 한다. 물론 불합격의 경우에는 기금을 내기로 한 약속을 철회하는 것이 다반사임도 사실이라 한다.

이와는 반대로, 많은 대학들은 입학 사정에서 사회, 경제적 소수자를 우대하는 정책 역시 사용한다. 사실 많은 대학들에서 입학 사정의 원칙으로 사용하는통합적 사정 방식 (Holistic review, 입학 사정에서 성적만을 비교하기 보다는 인종, 경제적 상황, 대학에 처음으로 진학하는 가정의 자녀인지 등등의 많은 상황을 고려하는 사정 방식)은 레가시 제도의 대척점에서 균형을 이루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면에서, 교육 분야에 있어서의 그 날은 아직 요원하지만, 킹 목사가 부르짖은 것처럼 정의의 보고는 마르지 않았다(we refuse to believe that the bank of justice is bankrupt)’는 믿음으로 꿈을 갖고 함께 노력하면 언젠가는 경제력은 부족하지만 재능이 풍부한 학생들도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것임이 분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