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로 해 드릴까?

부실 경영으로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대우조선의 스토리, 다들 알고 계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불똥이 외부 회계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에까지 튀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합니다. 감사원은 물론 검찰까지 찾아 낼 수 있었던 부정행위를 명색이 감사업무로 먹고 산다는 회계법인이 못 찾았다니 비난을 받고있는 것이지요.

“일에다 일을 더하면 얼마”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가장 최고의 답변은 “얼마로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라는 우스개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엿가락 처럼 늘려 주기도 하고 줄여 주기도 하는 회계사들의 행태를 비꼰 농담이지요. 대우조선의 경우 감사 보수료가 다른 나라들에서보다 훨씬 더 싸기 때문에 그랬다는 변명도 있지만 5억4천만원 감사 보 수료는 껌값보다는 엄청 많은 액수이지요. 아무리 돈이 제일인 세상이라고 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 윤리에 위배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됩니다.

공인회계사라고 불리우고 싶다면 “공정함”과 “정확함”을 지켜야 합니다. 이 두가지를 지킬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공인회계사가 되어서도 안되고 공인 회계사라는 칭호를 사용해서도 안됩니다. 어떤 전문직 업종이건 간에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직종은 없습니다. 하지만 공인회계사의 고객은 보수료를 지불하는 당사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전문인들하고는 다릅니다. 의사의 고객은 환자이고 변호사의 고객은 의뢰인 이지만 공인회계사의 고객은 회계보고서에 의존하는 사람들 모두가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경제 행위에도 에너지 불변의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됩
니다. 그래서 거래 당사자의 한 쪽이 이득을 보면 상대방은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결과가 나옵니다. 이것을 ‘제로썸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거래 행위로 새로운 경제적 이익은 창출되지 않고 다만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경제적 이윤이 이동함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익이 창조된다면 새로 생긴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익을 나눠 가져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한 쪽에만 유리하지 않도록 조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공인회계사들입니다. 즉 외부 감사인으로 기업의 회계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감시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진국 자본시장에서는 회계사들을 ‘워치도그(감시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기업의 속 사정을 살펴 보고 투자자와 금융기관들에게 판단 잣대를 제공 한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물론 이런 일을 하는데는 막중한 책임이 따릅니다. 제대로 감시를 못해서 그래서 잘못된 회계보고서를 내놨다가는 큰 코를 다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계 보고서를 믿고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고 사람들이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부담을 지기 때문에 감사 보수료로 많은 액수를 챙겨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계사가 자신의 책무를 잊어버리고 돈만 챙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왜 공인회계사에게 “공인”이라는 단어를 쓰라고 허락해 주었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계사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고객의 요구에 맞춰 주는 일까지 한다면 회계사들은 더 이상 ‘자본주의의 워치도그’라고 불리울 자격이 없겠지요. 돈과 이름을 맞바꾼 자들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