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합리적인가

법(法)을 풀어쓰면 ‘물 수(水)’와 ‘흘러갈 거(去)’가 됩니다. 그래선지 ‘법’은 정의롭고 또 이치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경험한 바에 의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가고 있다곤하지만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상존합니다.그래서 사회구성원이 모여서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하자고 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정해 놓은 약속을 체계적으로 정리한게 ‘법’이다, 이런 결론도 가능합니다. 법을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합리성이라는 잣대로 ‘법’을 판단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약속은 때로는 정의롭지 못할 때도 있고 또 불합리한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일손이 필요한 사람이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합당하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말입니다. 합법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지 않고 무조건 채용했다가 큰 코를 다쳤다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지 않습니까. 어떤 나라에서는 ‘좌측통행’을 하라고 하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우측통행’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왼쪽으로 다니는 것이 오른쪽으로 다니는 것 보다 아니면 반대로 오른쪽 통행이 왼쪽 통행보다 더 합리적이거나 아니면 더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지요. 물론 법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회계사의 섣부른 결론이니까 너무 신경은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찌되었든 ‘법’ 속에는 비합리적이고 공평하지도 않은 내용들이 무수합니다. 물론 세법도 마찬가지지요. 미국 세법을 가지고 얘기를 한번 해 볼까요? 잘 아시다시피 미국세법은 포괄주의 원칙, 즉 세법에 비과세라고 규정되어 있지 않는한 모든 소득은 과세대상이라는 원칙을 따릅니다. 이 원칙에 따라 IRS는 납세자의 재산 증가분은 과세소득이라는 추정을 내리기 일쑤입니다. 그렇다면 재산이 감소했을 경우에는 어떨까요? 역시 똑같은 원칙을 적용해서 세금을 깎아줘야 이치에 맞습니다. 하
지만 미국세법은 개인적 손실(personal loss)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아무련 공제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형평성이라는 면에 있어서 문제가 많은 거지요. 소득이 많을 수록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제 제도도 부자들 입장에선 아주 불공평한 세법입니다. 소득 유형에 따라 똑같은 세금을 매기는 대신 낮은 세율을 적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면세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의 소득이 헤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그런 소득들로 이루어져 있는 납세자에게는 신나는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납세자에게는 불공평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세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경제행위를 장려하기 위해서 세법을 동원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주택소유를 장려하기 위해 모기지 이자에 대해 공제헤택을 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행 대출을 받아 집 장만을 한 납세자에게는 아주 좋은 세법입니다. 하지만 전액 현금을 주고 집을 구입한 납세자 또는 임대주택이나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납세자들은 임대료나 거주비용에 대해 그 어떤 헤택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분들 입장에선 아주 불공평한 조항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세법을 만들 때 좀 잘 만들지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꼬집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게 못한 아니 그렇게 만들지 않은 이유는 세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라 살림에 필요한 돈줄을 확보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조세저항이 미약한 부분을 골라 그쪽에다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정치적으로 부담이 많은 부분에는 헤택을 주고… 루이 14세때 프랑스의 재상이었던 장바티스트 콜베르는 “세금걷는 최고의 기술은 거위가 비명을 적게 지르게 하면서 깃털을 가장 많이 뽑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고 하니까요. 결론은 세법을 포함한 모든 법들을 합리성이나 공평성의 잣대로만 들여다 봤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어떤 경제행위를 계획하고 계시다면 반드시 전문가들과 함께 상의해서 관련 세법 조항들을 살펴보고 불이익을 받게 되지는 않는지 꼭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