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이익을 우선하라 – Fiduciary Duty

텍스 시즌이 한창 막바지였던 지난 4월 초, 연방 노동부 주도로 새 규정 하나가 만들어졌습니다. IRA나 401(k)같은 은퇴계좌들에 대해 자문하고 투자권유를 할 때는 반드시 “고객의 이익을 우선”해야 된다는 Fiduciary rule이 바로 그 규정입니다.

Fiduciary Duty란 말을 한국어로 번역하는건 쉽지 않습니다. 구태여 번역을 한다면 ‘신인의무’라고나 할 수 있을까요? 일을 맡긴 사람의 이익을 위해 성실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쨌든 낯선 단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런 개념은 사적관계 보다는 공적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서양 사회에서 더 강조되어 온 덕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교포 언론들은 대부분 이런 규정이 생겼다더라 하는 식으로 간단히 보도하고 넘어갔지만 주류 언론들은 달랐습니다.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좋은 규정이라고 칭찬하면서 해설 기사를 싣고 전문가 인터뷰를 하는 등 제법 야단법석을 떨더군요.

주류 언론들이 호들갑을 떤 이유는 이 규정으로 소비자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은퇴기금을 준비하기 위해 투자하는 고객에게 자문하는 투자 상담사들은 반드시 고객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고객 이해에 반하지 않게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동시에 고객의 자산을 사려깊게 운용해야만 한다고 명시를 했으니까요.

연방정부 발표에 따르면 은퇴기금 자문과 관련해서 소비자들이 엑스트라로 지불하는 수수료가 매년 170억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투자상품을 추천할 때 비용이 낮은 상품보다는 커미션 수수료가 높은 상품을 소개하기 때문에 이런 막대한 금액을 추가로 지불한다는 것이지요.

투자 상담사에게 높은 커미션을 주는 상품으로는 특히 연금보험(Annuity)이 유명합니다. IRA를 추천하면서 연금보험을 판매하는 관행은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가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Fiduciary 규정으로 보험업계에 비상이 걸린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장 ‘변액연금보험 (Variable Annuities)’이나 ‘에퀴티인덱스 연금보험 (EIA)’ 판매에 제동이 걸렸고 ‘고정인덱스 연금보험(FIA)’이라 하더라도 커미션이 지급된다면 역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Fiduciary 규정은 IRA 나 401(k)에 이런 연금보험 상품들을 추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은퇴계좌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라면 투자목적에 적합하고 투자자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한다면 연금보험 상품들을 소개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멀쩡하게 제대로 투자되어 있는 401(K) 기금이나 IRA 기금을 ‘커미션을 노리고’ 연금보험으로 이전시키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된 것이지요.

고객들을 위한 거래가 아니라 거래 수수료를 목적으로 거래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프레드 슈웨드’라는 사람이 <고객들의 요트는 어디 있나>라는 책에서 지적한 부조리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뉴욕을 찾은 한 방문자가 항구에 정박된 멋진 보트들이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의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은행 고객들의 요트는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고객들은 요트를 가질 능력이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연방노동부가 투자자문 회사들에게 강제하기 시작한 이 Fiduciary 규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기업 위주가 아니라 소비자 위주로 정책을 세우면서 일하는 미국 정부가 부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