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2020’ 독후감

얼마전 고객 한분이 사무실에 들렸다가 책을 한권 놓고 가셨습니다. “아메리카 2000” 이란 책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의 장래가 비관적이라서 캐나다같은 외국에 은행계좌를 열고 또 금이나 은을 사두는게 좋다는데 미스터 박 생각은 어떠냐, 그걸 알고 싶어서 들렸다는 것입니다.

이 고객님은 사업을 하시다가 5-6년전 쯤 은퇴를 하셨습니다. 사업 능력도 좋고 자산관리에도 밝아서 은퇴자금도 충분히 모아 놓은 분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까 해외 여행도 자주 다니고 미국 노인들과 교류도 빈번하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 책을 소개 받았다고 합니다.

책 내용의 골자를 정리해 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1. 미국 정부는 부패했고 부채가 급증하는데도 돈을 마구 찍어내고 있어서 장래는 암울하다
  2. 미국 금융시스템은 믿을 수 없으니까 은행에 돈을 맡겨두는 대신 금이나 은 그리고 현금을 갖고 있는게 좋다
  3.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 해외 금융계좌를 만들고 외국 부동산에 투자해라
  4. 채권은 소유하지 말고 생명보험을 너무 믿지 마라
  5. 천연자원 쪽 회사들이 실재가치보다 낮게 거래되고 있으니 기회가 오면 그런 회사에 투자해라
  6. 프라이빗 에퀴티’ 그리고 ‘레버리지’ 투자에 주목해랴

결국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은 믿을 수 없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자기 주장을 펴고 있다, 그렇게 얘기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금융기관이나 자산을 신뢰하지 말고 해외로 재산을 분산시키는게 좋겠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마라”라는 투자 금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귀금속이나 천연자원에 주목하면서 좋은 투자기회를 외국에서도 포착했다면 놓치지 마라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이 조그만치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책 쓴 이의 주장이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 정도의 내용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주목을 받겠다면 듣는 사람의 귀가 솔깃해질 만한 뭔 그런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프라이빗 에퀴티’와 ‘레버리지’ 투자를 그런 목적으로 내놓은 듯 보입니다.

프라이빗 에퀴티’란 쉽게 말하면 공개시장이 아니라 기업 소유주와 개별적으로 딜을 해서 투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밀실 거래’라 할 수 있습니다. 거래의 내용은 그러니까 당연히 불투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일반인 입장에서 기업 소유주와 개별적으로 딜을 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실제로 실행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결국 중개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시스템을 믿지 못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레버리지’ 는 우리 말로는 지렛대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투자 용어로 쓰일 때는 남의 돈을 이용해서 투자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부채가 급증한다는게 큰 문제라고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부채를 이용해서 투자를 하라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아서 조금 어리둥절 합니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까 투자관련 뉴스레터를 발간하는게 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책은 우송비 5달러만 내면 보내 주지만 주문을 하면 이 뉴스레터의 구독 신청이 자동적으로 된다고 하네요. 물론 구독료가 있지요. 일년에 49달러라고 합니다. 아마 이게 함정인 것 같습니다.

마케팅 기법 중 하나에 공포 마케팅이란게 있습니다. 잠재 고객층이 공포심을 느끼도록 한 다음 자기들 상품을 파는 기법이지요. 제 생각엔 이 책의 저자도 바로 이 기법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노인층을 상대로 말입니다. 미국판 ‘정감록’에 지나지 않는 그렇고 그런 책을 미끼로 공포 마케팅을 하는 것 같다, 그게 이 책을 읽고 난 제 독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