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마음 곁에서 함께 사는 법

상대가 자폐 스펙트럼이나 경계선 지능일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치면, 많은 이들이 안도와 슬픔을 함께 느낍니다. 안도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확인에서 오고, 슬픔은 ‘내가 바라던 그런 대화는 끝내 오지 않겠구나’ 하는 깨달음에서 옵니다.

이 슬픔은 피하지 말아야 할 애도입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배우자, 말 한마디로 통하는 부모라는 오래된 기대를 내려놓는 일은 분명 하나의 상실입니다. 그러나 상상 속의 사람을 떠나보낼 때, 비로소 실제의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자리가 생깁니다.

일상에서는 먼저 말을 바꿔볼 수 있습니다. 행간을 읽어주기를 기대하기보다 원하는 것을 구체적이고 짧게 말합니다. ‘좀 신경 써줘’ 대신 ‘토요일 두 시에 같이 장 보러 가자’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계획이 바뀔 때는 미리 이유와 함께 알립니다. 경계선 지능의 가족에게는 한 번에 한 가지씩, 이해했는지 비난 없이 되묻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됩니다.

다음은 해석을 바꾸는 일입니다. 무표정은 무관심이 아닐 수 있고, 반복되는 질문은 무시가 아니라 불안일 수 있습니다. 상대의 행동을 나에 대한 부정성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나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 갑니다.

그러나 이해로 모든 것을 감내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뇌를 가졌다는 것이 폭언이나 방임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돌보는 쪽이 지쳐 무너지지 않도록, 나의 외로움을 채워줄 다른 관계와 쉼의 자리를 의식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지키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진단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짐작은 이해의 문을 여는 열쇠일 뿐, 확인은 성인 정신 평가가 가능한 정신과나 심리 전문가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 과정 또한 상대를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정확히 알고 사랑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쩌면 평생 ‘통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그 사람도, 자기 방식대로 우리에게 닿으려 애써왔는지 모릅니다. 그 서툰 손짓을 알아보는 순간, 오래된 답답함은 조금 다른 이름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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