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인 줄 알았던 것, 어쩌면 다르게 작동하는 마음
몇 번을 말해도 같은 자리를 맴도는 대화가 있습니다. 분명 쉬운 이야기였는데 상대는 엉뚱한 곳에 매달리고, 약속이 조금만 바뀌어도 하루가 무너진 듯 화를 냅니다. 이런 배우자나 가족 곁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결론에 이릅니다. ‘이 사람은 나를 무시한다’, ‘일부러 저러는 것이다.’ 그 해석은 서서히 상처가 되고, 상처는 원망으로 굳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오래 듣다 보면, 문제의 뿌리가 성격이나 의지가 아닌 곳에 있는 경우를 적지 않게 만납니다. 진단받지 않은 채 어른이 된 자폐 스펙트럼, 혹은 경계선 지능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의 사람들은 말의 표면은 정확히 듣지만, 그 아래 흐르는 감정의 결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괜찮아’라는 말 뒤의 서운함을 알아채지 못하고, 예측 가능한 질서가 깨지면 깊은 불안에 휩싸입니다. 그들의 완고함은 고집이라기보다,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에 가깝습니다.
경계선 지능은 지능지수로 대략 71에서 84 사이,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영역입니다. 일상은 그럭저럭 꾸려가지만 추상적인 설명, 여러 단계의 계획, 상대의 입장을 미루어 짐작하는 일에서 자주 길을 잃습니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수치심을 들키지 않으려 오히려 고집을 부리거나 화제를 돌리기도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지금의 중장년 세대가 자랄 때는 이름조차 없었습니다. ‘눈치 없는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로 불리며 자랐고, 수십 년 동안 남들처럼 보이려 애써온 탓에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을 감추는 데 능숙해 더 늦게, 혹은 끝내 발견되지 못합니다.
이 가능성을 생각해보자는 것은 상대에게 낙인을 찍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나쁜 의도’라고 읽어온 것이 사실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마음’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 오래 굳은 원망의 매듭을 처음으로 느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홀리스는 우리가 가까운 이에게 자신의 오래된 기대를 투사한다고 말합니다. 그 투사를 거두어들일 때, 비로소 눈앞의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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