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속에서 치유는 시작됩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조용한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먼저 텔레비전을 켜고, 식사를 하면서도 유튜브를 보고, 잠들기 직전까지 무언가를 듣습니다. 특별히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소리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고요함을 불편해할까요? 외부의 소리가 사라지면 그동안 들리지 않던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외로움, 슬픔과 허전함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소리와 정보로 의식의 주변에 일종의 방어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 안에 있으면 잠시 자신의 마음을 만나지 않아도 됩니다.

반대로 끊임없이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침묵이 생기면 곧바로 다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계속 말을 이어갑니다. 때로 이러한 말들은 타인과 연결되기 위한 대화라기보다 자기 안의 공허를 느끼지 않기 위한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말을 멈추었을 때 무엇을 느끼게 될지 자신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하고 있던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불안과 슬픔은 몸의 긴장으로 남고, 가슴의 답답함이나 얕은 호흡, 불면과 만성적인 피로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마음과 몸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유는 이러한 내면을 억지로 파헤치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조금씩 고요함을 견디는 연습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루 5분이라도 텔레비전과 휴대전화를 끄고 가만히 앉아봅니다. 생각을 없애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느낌, 배가 오르내리는 움직임,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감각을 조용히 느껴봅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잡념이 많아지고 이유 없이 초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곧바로 다른 자극으로 덮지 않고 조금씩 머물러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불안 뒤에 숨어 있던 슬픔을 만나기도 하고, 오래 잊고 있었던 자신의 욕구와 마음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고요함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외부의 소리가 잠잠해졌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자신의 생명과 내면의 힘이 있습니다. 호흡을 느끼고 몸을 느끼며 지금 여기에 머무는 순간, 흩어져 있던 마음은 조금씩 자기 자리로 돌아옵니다.

치유란 어쩌면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더하는 일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던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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