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의 밤

고요한 밤입니다. 적막이 끝없이 흐르는 깊어가는 밤입니다. 시간이 영원에 맞서다가 차마 견디지 못하고 넘어져 버린 고요하고 쓸쓸한 밤입니다. 시간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밤을 통해 영원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시간은 멈추어지고,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일이 오로지 순수하게만 생각되는 밤입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이 영원의 문 앞에 서서 다시 옷깃을 여며 봅니다. 잠시 끼었다가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이. 잠시 빛나고 사라지는 아침 이슬과도 같이. 순간에 매여 허덕이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내게는 너무도 힘들고 허무하였습니다. 땀을 흘리고 애를 태운 일들도 모두 순간만을 위한 것들, 세월이 더불어 무너지고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일들뿐입니다.

육체는 말라 버리는 풀과 같고
인생이 모든 영화는 시간이 흐르면 시들어 떨어지는 낙엽과 같은 것. 어디에도 영원함이란 없는가 봅니다. 그러나, 내 생명은 영원함을 바랍니다. 영원함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푼의 돈, 한 벌의 옷을 남기기 보다. 내 삶의 기록에 가치 있는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눈앞에 있는 한 그릇의 밥 때문에 영원히 남을 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십 년도 못 가는 세도와 명성을 얻어 보려고 영원토록 이어질 내 삶의 기록 위에 먹칠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밤의 적막이 두 팔을 벌린 어머니처럼 내 온몸을 감싸 안고 있습니다. 여기 옷깃을 여미고 다시 하루의 삶을 기약하며, 고운 꿈 속에서 잠들어 보렵니다.
우리가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저무는 계절이 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쁨엔 참된 슬픔이 있고, 참된 사람엔 참된 미움이 있다”라는 실러의 말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삶에는 슬픔이 없을 수 없습니다. 슬픔을 기쁨의 어머니라고 표현한다면 너무 지나칠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슬픔과 기쁨을 서로 나누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눈물이 말라버린 인간은 인간의 정을 잃어버린 화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가슴 깊은 슬픔과 한 방울의 눈물로 인해 사람은 사람의 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천사나 짐승이 아닌 바에는 가슴에 슬픔이 있어야 하고, 눈시울에 눈물이 배어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슬픔과 설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슬픔은 안고 산다는 것은 인생을 알고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온갖 생의 굴곡과 기복을 겪으면서 이마에 주름이 잡혀 가는 모습은 정말 처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고도 한 방울의 눈물도 없다면 거기엔 종교도 없고 또 삶의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남아있는 것보다 사라지는 것이 많은 계절입니다. 빈자리 마다 아쉬움이 쌓여만 가는 계절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하루가 우리에게 많은 아쉬움과 슬픔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불행이라고 단정짓지는 말아야 합니다. 인생을 더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삶을 조각하고 수놓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슬픔의 참 맛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이 거친 사회를 바라보고도 한 방울의 눈물도 없다면 그 인간을 무엇에 쓸 것입니까. 또한 인생의 깊숙한 곳에 잠재한 생의 고뇌를 슬퍼하지 않는 사람을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깊어진다는 것을 배우는 계절입니다
슬픔으로 인해 인생을 알고, 흐르는 눈물에서 종교를 찾는 것을 보면. 모든 아름다움과 착함과 진실됨은 아마 슬픔의 산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기쁨과 슬픔. 웃음과 울음을 잘 조화시켜 놓은 데 있는가 봅니다. 그러므로 슬픔을 결코 불행으로만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제 “참된 기쁨엔 참된 슬픔이 있고”, “참된 사랑엔 참된 미움”이 있다는 실러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이 가을의 밤을 보내려 합니다.

돌아보는 시간보다 걸어가는 발자취마다 아쉬운 인사가 매달리는 계절입니다. 누구보다도 고독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자기의 뜻을 알아 주는 사람이 없고, 넘쳐 흐르는 마음을 이야기할 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의 뼈저린 서글픔을 나눌 사람도, 삶의 피어 오르는 즐거움을 같이 할 사람도 없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삶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고독한 것도 불행이지만, 마음을 나누던 친구를 잃어버린 고독보다는 덜할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계절은 고독과 불행을

언젠가 서둘러 내 곁을 떠나기 마련입니다. 나뭇잎 몇 개 떨어진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지 끝 조금 물들었다고 나무가 변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반드시 헤어짐으로 끝나며, 그리움은 언제나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 사라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모르는 것도 고독이며 불행이지만, 사랑을 알게 되면 더 깊고 아픈 고독의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흐르는 시간 속에 묻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허무하고도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대와 나 함께라면. 모두가, 희망의 삶이 있는 한 저 별은 사라지지 안을 것입니다. 행복한 날이 있었나요 자꾸만 웃음 터지던, 아직은 이별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