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고뇌하는 시대, 번민하는 시대다

행복한 청춘은 노고해야 할 때에 노고하고 공부해야 할 때에 공부하는 것이다. 그것이 평생의 행복을 이룩하는 주춧돌이 되기 때문이다. 젊을 때에 안일을 참하고 고생을 회피하면 가장 불행한 청춘이 된다. 자신은 자유롭다고 느낄지 몰라도 결국에는 가장 자유롭지 못한 인생이 되고 만다.
청춘의 근본 재산은 신뢰와 성실이다. 그것은 一朝一夕(일조일석)에 쌓을 수 없다. 지금 자신이 있는 발 밑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다 보면 신뢰와 신용이라는 인생의 보배가 저절로 따라온다.
청춘은 고뇌하는 시대. 번민하는 시대다. 그 격류에 휩쓸리다 침몰해 버리느냐. 아니면 그 속에서 발버둥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청춘의 투쟁이다. 여기에 미래의 승패를 결정짓는 찬스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을 보는 나와 나를 보는 나. 이 기묘한 어울림만큼 자기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그림이 에곤 실레의 그림에서 엿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한 남자가 그려져 있고, 또 그의 등 위에도 똑 같은 모습의 남성이 포개져 있다. 자신이라는 존재와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자기라는 존재, 즉 자기의 이중성이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격과 성품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엄하게 꾸짖어주는 지도자가를 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쇠는 뜨거울 때에 두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大成(대성)을 위한 단련이 있다. 반대로 청춘 시절에 단련 할 기회를 만나지 못한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은 없다.

信義(신의)를 중요시 한다.
청춘의 신념과 신의를 끝까지 관철한 사람은 그 자체가 승리한 인생이다. 맹세는 인간만이 할 수 잇는 이름 바” 인간답다” 는 증거이다. 사나이는 왕자의 인품을 지니고 여자는 공주의 인격을 지녀야 한다. 따라서 변함없는 우정은 어떠한 보배보다 존귀 하다. 술책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진실한 우정을 맺고 그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인생이 곧 빛나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정은 善惡(선악) 모두 함께 통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나쁜 벗을 얻기는 쉽고 좋은 벗을 얻기는 어렵다. 참된 벗은 때로 나를 결함이나 과오를 날카롭게 지적해주는 사람이다. 인간관계 가운데에서도 직장 내 인간 관계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다. 특히 같은 부서나 팀에 근무하는 사람들 간에 관계가 삐걱대면 당사자 들로 서는 죽을 맛이다.

중관 관리자 VS 신입사원, 새로운 갈등
직장 내 인간 관계 가운데에서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상사, 특히 중간 관리자와 입사 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직원들과의 관계이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만나다 보면 양쪽으로부터 똑 같은 소리를 듣곤 한다. 양쪽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상대가 자신들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성실과 노력에 철저한 사람
성실과 노력에 철저한 사람만큼 강한 사람은 없다. 철저히 착실하게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에게 인생 최종의 塋冠(영관)은 빛난다. 인생에는 자신이 시험 당하는 “진정한 때”가 있다. 그러므로 평상시 어떠한 마음가짐 으로 살고. 어떻게 노력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날이 견실한 挺進(정진)을 거듭해야만 유사시에 찬스를 내 것 으로 만들 수 있다. 생각지 못한 역경에 처했을 때, 인내라는 용기를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존경은 존경을 낳는다, 경멸은 경멸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봐 뀌면 상대도 바뀐다. 이웃과 친구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데는 무엇보다 격려가 필요하다. 격려는 용기의 어머니다.

젊은 직원들은 사회적 스킬을 익힐 기회가 업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필요한 시회적 스킬이 대단히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 듣는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 개 개인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가정이나 학교 등이 과거와 상당히 달라졌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지난날에는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스킬은 기본적으로 가정이나 학교에서 마스터하는 것이 보통이 었다. 형제가 많다 보면 갈등과 싸움이 없을 수 없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의 감정 을 표현하거나 자신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학교에서도 싸움을 통하여 자기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름은 다르다. 형제라고 해야 많아 봐야 둘이고 하나인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아이들이 적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다 해준다. 더 못해줘서 안달을 할 정도이다. 미국의 학교라고 다를 게 없다. 미국 내 학교에서 싸움 한번 안하고 성장 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사회적 스킬이 제대로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결국 자기 위주의 생각만 하는 젊은 사람들이 양산 되고 있다.

희망은 항상 출발이자 영원한 시작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희망만 남아있다면. 거기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목표를 갖는 것은 희망을 갖는 일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한 걸음 한 걸음에도 힘이 담긴다. 위대한 인간이기에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위대한 목적을 향하기 때문에 인간은 위대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