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속에 핀 꽃

사실 남을 위로한다는 말은 그리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말 살아가는 일상의 삶 가운데에서 많이 부닥치고 해결해야 하는 장면이다, 어쩌면 삶의 드라마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위로자가 때로는 자기 자신 에 만 갇혀 상대를 바로 바라보지 못 할 때, 서투른 경험으로 타인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위로 한답시고 더 큰 상처를 주는 경우 가 생기게 된다. 어찌, 눈물로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남의 눈물 을 닦아 줄 수 있겠는가?

▣ 비록, 상담자나 치료사가 아닐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 상담자나 치료사가 아닐지라도 상대방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곤경에 처한 상대방을 도울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수용하며 진지하게 여긴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일어난 일을 곰곰이 반추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자. 상대방에게 조언이나 해결 책이 아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점을 곱씹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도 타인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이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줄 수는 있다.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충고하거나 상대방이 지금 무엇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의 과제는 상대방을 진두지휘하거나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돕고 지지하는 것이다.

▣ 위로는,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 주거나 그를 치료해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있어 그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그가 새 하늘을 아름답게 바라보기를 간절하게 희망하며 알려주는 것 만으로도 최상의 위로가 될 수 있다. 위로는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 주 거나 그를 치료해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로는 상대방에게 시간과 애정 그리고 주의 집중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열어주고, 여기서 상대방이 스스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상처 받은 사람에게도 스스로 답변을 찾고, 스스로에게 판결을 내리고, 스스로의 고통을 경험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말이다. 치유의 힘을 가진 대화는 상대방의 고통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고통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는 이를 종종 다음과 같은 상황에 비유한다. 고통에 처한 사람은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나락까지 추락해 있다. 주위 사람들이 늪에 빠진 그를 내려다 보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그가 타고 올라올 수 있는 밧줄을 내려 주는 배려와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는 있다.

▣ 성숙한 위로에 대한 메시지.

그대여!
살다가 힘이 들고 마음이 허허로울 때
작고 좁은 내 어깨지만 그대 위해 내 놓을게요
잠시 그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으세요.
나도 누군가의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음에
행복해 하겠습니다.

인생의 여로에 가끔 걷는 길이 험난하고
걸어 온 길이 너무 멀어만 보일 때

그대여!
그대의 등위에 짊어진 짐을
다 덜어 줄 수는 없지만
같이 그 길을 동행하며
말 벗이라도 되어 줄 수 있게
그대 뒤를 총총거리며
걷는 그림자가 되겠습니다.

무엇 하나 온전히 그대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 하나 나눈다면

그대여!
그것 만으로도 참 좋은 벗이지 않습니까
그냥 지나치며 서로 비켜가는 인연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왠지
서로가 낯이 익기도 하고
낯이 설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람같이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더 남았겠습니까.

해는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더 많이 기울고 있는데
무엇을 욕심 내며
무엇을 탓하겠습니까.

그냥 주어진 인연,
만들어진 삶의 테두리에서
가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는
따뜻한 마음 하나 간직하면
족한 삶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바람처럼 허허로운 것이 우리네 삶이고
그렇게 물처럼 유유히 흐르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며
서로 등지고 살 일이 무에 있습니까.
바람처럼 살다 가야지요
구름처럼 떠돌다 가야지요.

“상대방에게 부탁하고 도움 받는 것이 스스로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김기준(님)의 지난 날의 아픈 고백을 필자는 위로자의 심정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위로자 이신 하느님을 체험하고 형제들에게 알리고 체험케 하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이사 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