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별을 원치 않는다

사랑은 이별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만남 중에서는 꼭 만나야 될 사람을 만남으로써 반가움과 기쁨으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만나지 말아야 좋을 사람을 만나 슬픔과 절망의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삶은 만남의 연속으로 깊어져만 가는 과정이기에, 삶이 끝나면 만남도 끝나게 되어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남과 이별은 떼어 낼 수 없는 운명이다. 이러한 만남 속에는 이별이 늘 함께 동행하고 있어 우리는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별을 생각하고 있다면.
대개는 이별을 슬픔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의 눈물에 이별이 스며 있음을
감지하고 이별도 아름다운 이별이 있다고 한다면 분위기 깨는 소리일까? 이별을 말하기에 앞서 한 편의 시를 감상해 보자.

  •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영변에 약산
  • 진달래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생략-.

김소월(1902~1934)의 진달래꽃으로 시대를 뛰어 넘어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고 있다.
이 시를 통하여 소월의 이별의 의미를 엿보기로 하자, 많은 이들이 이 시를 이별이 진행되는 과정을 애통해하는 애절한 내용으로 알고 있지만, ‘가지마세요, 가서는 안 됩니다, 아니 우리 헤어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라는 은근한 마음을 완곡한 표현으로 알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인 이별의 통념은 어떤가?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라는 저주스러운 생각을 하는, 다시 말하면 이별은 끝이고 배신이다, 이별은 영원한 헤어짐이다 라는 고정관념(固定觀念) 으로 상대에게 냉정하게 대했던 관습 속에 살았던 사회에서, 떠나는 이를 붙잡지 않고 고이 보낼 뿐만 아니라 약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 가시는 길 위에 꽃 길을 만들어 사뿐히 밟고 가시라는 마음, 비록 내가 보기 싫어 가는 임이라 할지라도 아픔을 참고 임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참마음의 철학은 무엇일까?

다시 만나지 못할 이별이라면
보내는 이도 가는 이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제하고 웃는 얼굴로 상대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마음이, 할퀴고 휘둘러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의 이별보다 발병이라도 나기를 염원한 노래보다 훨씬 아름답고 멋있는 행위가 아닌가.
 
아름다운 꽃 길의 광경이 이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별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영원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별은 곧 다시 만나게 될 하나의 수순일 뿐이라고 생각해 보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 어느 광고 사이트에서 본 표어이다, 참으로 음미할 만한 것이 아닌가?
 이별은 다시 못 만나는 슬픔으로만 여기지 말자. 싫어서 떠나는 임이라도 내 고운 마음으로 꽃 길까지 만들어 보낸다면 그 임이 어찌 나를 잊겠는가?
 이별은 다시 만남의 약속이기에 80년 전에 노래한 소월의 진달래꽃처럼, 섭섭함이나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보다 더 많은 사랑을 보여줄 것이다. 결코 슬픔이 아니라 만남으로 이어지는 기쁨의 믿음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아까운, 아무리 가서는 안 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잠시라도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 이라 할지라도 일단 이별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또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되었을 때, 멀리 갔던 사랑하는 이가 돌아옴을 마중하듯 흔연히 보내는 그 마음은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웃는 낯에 누가 침을 뱉으랴.

만남은 기쁨이고 이별은 슬픔이라는 등식을 깨는 실천이야말로 단조로운 우리의 생활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멋이다.
백화점이나 서비스업체에서 이익을 창출해주는 일을 다 하고 나가는 고객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깍듯하게 보냄의 과정을 실천하고 있는 지를 보아둘 필요가 있다.
지금 가게 문을 나서고 있는 저 고객과는 이별이 아니라 훗날 이 가게를 다시 찾아올 내일이 있는 것을 알기에 극진한 이별의 예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면, 80년 전 소월의 이별 철학이 시대를 앞선 노래였다고 감탄을 하게 된다.
지금 이별을 준비하는 이들이나 또 이별해야 할 분들에게 이별의 철학을 일러주고 싶다.

이별은 다시 만남의 시작이요, 기다림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이별이란 없다. 오늘의 헤어짐은 내일 다시 만나기 위한 수순이자 기다림이다. 그러나 유난히 만남은 기뻐하면서 헤어짐에는 왜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는가? 피할 수 없는 이별이라면 당장은 억울할지라도, 괘씸할지라도, 배신의 골이 깊을지라도 소월의 이별 철학을 터득해야 한다. 상식을 뛰어 넘어야 선조들이 남겼던 얼룩진 한의 역사도 잘못된 관행도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일방적 생활과 관습의 사고가 상대를 배려하는 최초의 시간일 수도 있기에, 또 보내고 난 뒤 한으로 남을 후회들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하여, 나 보기가 역겨워 가는 그대에게 꽃 길을 만들어 보내겠다는 이별의 철학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화사한 진달래 꽃 길을 즈려 밟고 떠난 이가 어찌 보낸 이를 그리워하지 않으며, 어찌 영원한 이별로 끝내겠는가?
 
다시 돌아보기조차 싫은 저주의 이별을 해서는 안 된다. 이별은 다시 만남의 시작이요, 기다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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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 칼럼리스트 윤상권(ysinter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