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2

그때에는 이분이 50대시절이라 체격도 있으시고 길거리에 서 노숙을 하였어도 지금보다는 몸이 훨씬 나은 상태였어도 마음이 짠하고 아팠는데 요즈음 이분이 찾아오거나 다운타운 길거리에서 만나보게되면 마음이 더아프고 안타깝다.

며칠전에는 이분이 사시던 그룸홈을 나서시다가 비틀거리시며 쓰러지셔서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연락을 받고 이분이 입원해있는 하버뷰병원으로 달려가 이분을 뵙는데, 병실 한구석에 아무런 의식이 없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이분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착찹하여서 아무래도 이분 가족분들에게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분의 서류를 열어보니 이분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고 이혼한 부인의 연락처도 있었다.

나는 이혼한 부인에게는 너무 실례가 될것 같아서 이분의 아들과 딸에게 연락을 했다. 연락을 하고 며칠을 지나도 아들과 딸들에게는연락이 없고… 물론 연락을 끊고 싶은 이분의 가족들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는 동안 이분은 몸이 좀 나아져서 병원에서 퇴원을 하여 다시 당신이 사시는 그룹홈으로 돌아오셨다.

이분이 병원에서 퇴원을 하는날 나는 이분에게 드리려고 한국음식점에서 맵지않는 순두부를 시켜서 이분이 살고 있는 그룹홈으로 가지고 가 이분을 대접하며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마치 내형제가 아파서 내가 아픈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지며 가슴 저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슬픔이 밀려왔다.

우리 각 카운셀러들은 거의 50여개의 케이스들을 담당하고 있다. 홈리스였다가 그룹홈으로 들어간 사람들, 정신적인 문제로 아직도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이들, 그룹홈에 거주하는 사람들, 아직도 약에 취해 사는사람들… 이들을 돕는일이 우리의 몫이다.

이들에게 잠자리를 찾아두고, 베네핏을 찾아주며, 상담을 해가며, 이들과 삶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정신없이 욕을 얻어먹고 기분이 나쁠때도 있지만 이들은 정신적인 문제들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이들을 돕고있다.

그런데 내가 한국사람이다 보니 한국 홈리스분들이 모두다 내게로 오고 나서는 내마음이 더 아프다. 왜 자녀들 키우는 엄마들이 열손가락 깨물어 아픈상태가 다 똑같다지만 나는 내케이스들 중에서도 특히 한국분들 케이스를 보면 더 마음이 가고 더 신경이 써지고 더 잘해주고 싶고 하는 마음이다.
물론, 그러면 안되는게 우리사무실의 법이다.

그래서 내가 할수있는 일은 제한이 되어있다. 그래서 가끔씩 친구에게, 아니면 아는 분들에게 부탁을 한다. 그로서리 기프트카드 도네이션좀 해주세요! 그러면 그것들을 가지고 이분들에게 특별음식이라도 사서 먹이고 싶어서이다. 내돈으로 했다가는 나는 고객을 차별한 이유로 문제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며칠전에는 46살먹은 000가 찾아왔다.
8살에 미국으로 부모님을 따라와서 살게되었는데 부모님은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느라 밤이나 낮이나 바쁘게 일하러 다니시느라 집안에 계실날은 전혀 없었고, 8살 동생보다 8살 더먹은 형은 맥도날드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느라고 바쁘게 사느라 어린동생이 학교엘 가는지 안가는 지도 확인을 못하고, 동생은 학교에 가보았자 미국친구들에게 차이니스라고 놀림을 받고, 부모님이 싸주시는 도시락도 한국음식이라 학교에서 도시락도 제대로 펴서 밥을 먹어보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가져오고, 밤늦게까지 부모님과 형님을 기다리면서 심심하면 밖으로 나가서 헤메이다가 나쁜친구들과 사귀게되어 어린나이에 마리화나를 하게되면서 틴에이저가 되서는 거의 중독이 되어서 코케인 헤로인 등등을 접하게되면서 그렇게20대 30대에는 거의 폐인이 되어서 결국에는 형님차를 훔쳐다가 팔아먹고는 자기가 살던곳을 떠나서 이곳시애틀로 오게된, 영화배우처럼 멋진, 잘생긴, 46살 먹은 000가 찾아왔다.

자기가 자기부모님이 살던 곳을 도망쳐서 이곳으로 온 이유는 형님차를 훔쳐다가 팔아먹어서 가족들하고도 연락을 끊게된 사연과 자기가 연락을 끊은후 일년후 자기 부모님들 전화로 연락을 해보니 모든 전화가 끊어졌다며 자기부모님들이 다니던 교회이름을 적어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자기가 한국말을 못하니 나더러 그교회로 연락을 하여서 부모님하고 연락을 하게 해달라고? 한다. 내가 그곳을 떠난지가 얼마나 되느냐고 하니까 7년전 이란다.

나는 000가 적어준 교회를 남가주에서 찾아내어 전화를 돌리니 마침 그교회 전도사님이 받으시더니 000의 아버님이 지난해 돌아가시기 전 막내아들을 그토록 찾으셨다면서 내연락처를 받아놓으신후 3시간후 000의 형님이 연락이 왔다.

그분의 말씀인즉, 자기도 동생이 너무나 보고싶고 그립지만 동생이 그곳으로 오면 현재 치매상태인 어머니의 병환이 더욱 나빠질수가 있으니 오지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글쎄… 내가 000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하나?

000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엄마도 아빠도 형도 다보고 싶은데 가도 되겠느냐고 물어왔는데 .. 다음날 000를 불러 사무실에서 얘기를 하는데 내입이 안떨어진다.

그래도 소식을 알려줘야 하겠기에 우선 아버지가 돌아가신것을 알려주니 000는 그자리에서 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한다. I killed him 내가 아버지를 죽인거라면서 ! I killed him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있는 000에게 실컷 울게 놓아두고 한참을기다리니 000가 잘되지않는 한국말로 물어온다 .
레지나 선생님, 나이제 어떡해야죠?
참 괴롭다.
이친구에게 어떻게 형님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해야 할것인가?

지금 이친구는 지난해 겨울, 약에 중독된채 싸움판에 끼어들었다가 주먹으로 맞은턱이 무너져내려서 병원에 입원을 하여서 치료를 받고서도 무너진턱이 제대로 붙지를 않아서 얼굴이 비뚤어진 모습이다.
잠시 어찌해야하나… 고민을 하는데 000가 말한다.
레지나 선생님, 저한테 차비좀 마련해주시면 제가 어머님이라도 보고 오고 싶어요…
나는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지 몰라 머리가 복잡하지만 사실대로 말해주려니 내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그렇지만 연락을 원치않는 가족들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7년 동안 못 본 동생을 오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할까?
어찌해야할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