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다 소용 없어요 #1

00씨와 남편은 아들둘을 데리고 미국에 이민와서 산지 32년이 되었다.

큰아들은 4살때, 작은아들은 1살때, 미국으로 이미 시집을 와서 살고 있던 시누이
초청으로 한국에서 선원생활을 하던 남편과 함께 미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남편의 고향은 제주도 였다.

남편은 어릴적부터 물을 보고 자라서인지 물을 아주 많이 좋아한대다 시누이가 마침
물이 많은 이곳, 시애틀에 살고 있어서 00 가족들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시애틀로
올수 있었다.

시애틀로 와서 배를 타려고 했던 남편의 계획은 쉽지않았다.

웬만한 미국 배회사에서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00 남편을 직원으로 받아들이려하지
않았기에 미국에 와서 9개월동안 00씨와 두아들, 남편 이들 4명의 가족들은 하루하루
초초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은 한국에서 배를 타면서 한푼두푼 벌어놓은 돈으로 변두리에 작은집을
갖고 살았었는데 그집을 판돈이 얼마되지 않아서 미국에 와서도 아끼고 아끼고
아꼈는데 처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두달정도 시누이 집에 살면서 시누이가 하는
비지니스(문방구) 어렵다며 힘들다고 하소연을 해오면서 그시누이의 하소연을
외면할수도 없었지만 매형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00씨부부가 한국서 집을 팔아가지고
돈은 시누이가정의 사업을 돕는다는 이유로 당장 돈만을 남겨놓고는 몽땅
시누이손으로 넘어가고 얼마되지않아 시누이하고 00씨하고 사소한 일때문에 마찰이
붙어서 불편한 상태로 한달간을 더시누이 집에서 함께 지내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 아직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두아들을 포함한 이들네명의 가족들은 이곳
시애틀에서도 제일 지역을 수소문하여서 아파트 반지하 방하나를 얻어서
이사를 했다.

반지하 방에는 밤에는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모르는 새앙쥐들이 행렬을 하고 대낮에는
바퀴벌레들이 날아다녔단다.

반지하인 아파트방안에서 지나가는사람들의 다리만 보면서 00씨는 다짐을 했단다.

이다음에 돈벌면 제일 높은 집으로 이사를 갈꺼라고

남편은 배회사에 취직을 하고싶은 미련을 못버리고 영어가 안되어도 두아들과
아내를 책임져야 했기에 시애틀 항만에 나가서 선박회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며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쉬운일이 아니었다.

결국 남편은 아직 어린 두아들과 젊은 엄마를 허름한 반지하 방에 남겨놓고 배를 타기
쉽다는 알라스카로 떠났다.

물론 알래스카로 떠난 남편은 한동안 직업을 구하지 못하여 송금은 커녕 자기혼자
벌어 밥을먹고 방값을 내는것도 쉽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알래스카에 온지 한달하고
이틀만에 원양어선을 탈수가 있었다.

원양어선은 벨링해로 나가서 바닷속 깊이 살고있는 킹크랩을 잡는 배였는데
배안에 있는 선원들은 각나라에서 거의 돈에 팔려온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배안에서 일하는 선원끼리는 언어소통이 전혀 되지않았고 크랩을 잡는 일은 너무나
힘에 벅찼지만 남편은 1 8개월동안 열심히 일을 하면서 아내와 아들에게 송금을
하였다.

아내는 아직 두아이가 어려서 밖의 일을 할수가 없어서 남편이 보내주는 돈을 아끼고
아끼면서 집에서 두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시누이가 빌려간 전재산인 돈은 시누이가 하시던 문방구가 그때 당시에 새로 크게
사업장을 확장하는 오피스디포등에 밀려 거의 파산상태로 가게되었고 00씨부부가
집을 팔아서 시누이부부의 눈초리에 항복을 하며 빌려주었던 재산은 날라가고 말았다.

,

돈때문에 시누이가족과는 그때부터18년간 원수지간이 되어 버렸다.

거의 18여년간을 시누이가족들하고는 서로 보지도 않고 지냈다.

같은 시애틀에 살면서도 서로 아는체를 하지않고 보지도 않으며 살아왔다.

다행히도 시누이 자식들이 아주 잘되어서 그동안 시누이는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고도 잘살고 있다는 소문만을 들었단다.

그러면서 00씨가 하는 말은 아니, 자식들이 잘살고있다면 자식들이라도 삼촌돈을
갚아줘야 되지않냐고 얘기를 한다.

이들 가족과 시누이 가족들이 다시만날수 있었던 것은 노인아파트에 혼자사시던
시어머니의 상을 당하는 날이었다.

거의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시누이도, 올케도, 남편의 얼굴도, 이제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와 얼굴엔 주름살이 새겨져있었으며 시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시누이하고 손을 잡았다.

이날이 이집부부가 한국에서 집을 팔아가지고 ,시누이비지니스에 빌려주었던
피같은 돈을 포기하는 날이었다.

감사하게도00씨의 두아들들은 아주 자라 주었고 자기의 적성에 맞는 직장도
구해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00씨남편은 처음엔 아는 분이 하는 구두방을 인수하여서 비지니스를 하고 그럭저럭
생활을 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가고 아내인 00씨도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남의
세탁소에서 바느질을 하면서 가정을 도우며 두사람이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작은
그로서리가게도 장만할수가 있었다.

이들 부부의 두아들 아들이 결혼하던 , 부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부가 밤낮으로 열심으로 삶을 살아왔기에 그동안 일하느라고 제대로 돌보지 못한
아들들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감사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아들은 결혼을 하고 직장을 따라서 샌디에고로 이사를 가면서 어머니 아버지도
따뜻한 곳에서 같이 살기를 원했지만 부부는 시애틀에 친구도 있고 시애틀에 정이
들었고 둘째아들을 장가라도 보내고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하고있는 , 큰아들네
가정에 첫손자가 생기며 아이를 보아줄 사람이 없다며 부모님이 같이 살면서 아이도
돌봐달라는 아들내외의 부탁을 생각중이었는데 새로 태어난 손자를 방문하고 다시
시애틀로 돌아오는날부터 작은 손자가 눈에 아른거려서 부부는 더이상 고민을
하지않고 결단을 내렸다.

손자가 우유를 떼고 걸음마 할때까지 만이라도 아이를 돌봐주어야 겠다고

아직 걷지도 못하는 손자아이가 아들부부 직장생활때문에 새벽부터 유아원에
가야하는것이 너무나 안스러워서 1년간 가있을 생각으로 부부는 살던 집을
둘째아들에게 맡기고 샌디에고로 떠났었다.

이후, 손자가 정확히 첫돌을 맞게되고 큰며느리가 또다시 아이를 가졌다는
얘기를 듣고도 이들 부부는 미련없이 그아름다운 해변의 도시, 많은 미국사람들이
은퇴하고나서 살고 싶다는 그샌디에고를 떠나왔다.

00씨가 며칠전 전화가 왔다.

자기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남들에게 얘기 하자니 창피하고 망신스러워
못하겠는데 속에 담아두자니 홧병이 생겨서 교회에 가서도 울며불며 통성기도도
해보고 기도 잘하는 친구들과 함께 합심기도도 해보았는데 그때만 괜찮고
가만히 혼자 있다보면 그동안 있었던 일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