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이야기 #4

여기에 온지 며칠이 월요일,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몇년전 언니가 대장암수술을 받고 병원생활을 할때 언니를 잠시라도 간호를 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나갔었다.

병원에서 한달반을 있었고, 언니의 집에서는 도우미가 있어서 치매인 형부를 돌보고 있는중이라 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틈틈히 형부를 모시고 형부의손목과 내팔에 아이들을 매는 줄을 연결해서 다니며 연극도 보러다니고 영화도 가고 시장도 가곤 하면서 2주간을 보내는데 한국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서 종로 5가에 있는 한식조리원을 방문하여서 잠깐동안 한식요리의 기본이라는 클라스를 들은적이 있는데 그때 마침 현재 대한민국의 한식 홍보회장님이시고 단국대학교 조리학 교수님이신 윤숙자 박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교수님은 이날 카운셀러로 일하는 내가 요리에 관심이 많은것을 아시고 여러가지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한국전통의 앞치마, 다과등을 선물로 주시면서 사랑을 주셨었다.

윤교수님과 부교수님들이 지난해 시애틀 조리사 교육에 오셔서 2주간을 시애틀에서 조리교육을 시키실때 다시뵙고 윤교수님이 미국으로 출장을 오실때마다 불러주셔서 지난8월에는 함께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삶의 경험등을 얘기해주시기도 하셨기에

윤교수님의 전화가 반가웠다.

윤교수님은 물으셨다.

자네, 지금 어디 있나?

, 저지금 엘에이 출장와있는데요!

그래!

그럼 잘되었네!

지금 웨스턴의 우리 조리학교엘 가보게나!

, 지금 일이 있어서 1시이후에나 가능한데요!

그래? 그럼 더욱 잘되었네,

클래스가 1시에 시작하니 조금일찍 마치고 거기에 가서 조리강사교육 받게나!

? 제가 조리강사교육은 왜요?

, 자네는 요리하는것을 사랑하는사람이야 !

그리고 너무 쉽게 잘해!

그곳에가서 일단 배우게!

그리고 나중에 함께 활용할수 있는 기회를 갖게나.

, 지금

아니야 기회는 안오네, 무조건 가서 배우게나.

이날이후로 1시에 일마치면 1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매일 저녁 조리강사교육을 받았다.

몸은 조금 피곤했었지만 워낙에 요리할때 행복해하는 나이기에 너무나 재미 있어서 엘에이 있는 동안 힘든줄을 모르고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요리배우고, 실현해보이고, 배운것을 앞에나가서 강의를 해보고하면서 행복한시간을 보냈었다.

어쩌면 요리사가 되었어야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때 덕수궁에서 하는 사생대회때에 내가 우연찮게 나가서 수채화상을 탔는데
그것도 나를 좋아했던, 지금은 중견화가로 활동하던 화실 친구가 조금 도와준 그림이었는데 우리
어머니께서는 내가 그림을 엄청 잘그리는 아시고 그때에 신수회회원이시던 나부영 교수님의
제자로 나를 집어넣느라고 엄마 인생에 전혀없던 치맛바람을 일으키시며 그때에 몇십만원씩을
다달이 화실에 지불하며 나를 미대로 보낼 꿈을 꾸시고 미래의 천경자화백이 될꺼라며 나를
믿으셨지만 솔직히 나는 그림 그리는데는 관심이 없었기에 신촌에서 용산 화실까지 가는
거리는 골고다 십자가의 길이였고 일단가서는 그림 그리러온 언니 오빠들의 라면 끓여주는데
심혈을 다했었다.

평소에 오빠만 네명을 나의 라면 끓이는 솜씨는 그야말로 기가 막혀서 나는 사전에도 없는
라면의 변화를 꿈꾸며 가끔씩은 라면에 들어갈 재료를 내돈으로 구입하여서 화실안의 귀요미
( 매번 라면을 끓여 대접하는 내가 이쁠리 없지!) 되어서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나의
시간을 보낸것이었다.

나부영교수님은 매일 와서 그림은 않그리고 라면 냄비만 들고 다니며 언니, 오빠들에게
김치라면, 파라면 , 감자라면, 만두라면 등등으로 나날이 라면 끓이는 실력만 키우는 나를 보고도
지적을 안하시다가 화실에 나온지 7개월즈음 별안간 들이닥친 엄마의 등장에 나의 화실생활은
쫑이 났고 우리엄마와 나부영교수님하고의 단판전은 결국 우리엄마의 판정승으로 끝났었다.

엄마는 나교수님께 7개월동안 우리딸이 그린 그림을 내놓으라는 주문을 했고 나교수님과
나는 눈을 맞추어서 대충 언니오빠들이 그린 그림들을 내어놓았으나 우리 엄마는 분명한 분이시라
나보고 그대로 그려보라셨다.

내가 우물쭈물 그림을 못그리자 엄마는 그날로 화실엔 발도 못붙이게 하셨고 딸을 미래의 천경자화가로서의 꿈을 꾸시던 우리엄마의 꿈을 짓밟은 나는 다시는 라면구경도 못하게 되었으며 엄마는 나교수님을 닥달을하셔서 그동안 냈던 화실수강료의 반을 받아내시는 결과로 나의 라면요리시절은 막을 내리고 말았었다.

나에게 요리는 예술이다.

여러가지 재료를 모아서 씻고 다듬고 하여서 요리가 완성될때의 기쁨은 행복하다.

그리고 그런음식들을 나눌수있어서 행복해지는 마음이다.

내가 엘에이에서 배운 모든 요리강사교육들이 나의 앞으로의 인생에
나를 행복하게 할것이다.

나는 매일 새로운 요리를 배우고 익히느라 쉘터일도 즐거웠고 배운솜씨를 쉘터수용자들에게 조금 변형을하여 요리를 함께하고 가르쳐주니 여기에 있는 쉘터입주자들도 너무나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였다.

엄마는 내게 항상 이런말씀을 하셨었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는것만 아니고 만져지는것이다 라고……

그때엔 그말씀이 무슨말씀인지 잘몰랐는데 이만큼의 나이가 되다보니 엄마의 말씀이 내가슴에 깊게 느껴진다.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음식을 하면 그음식이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것을 ….

엄마는, 시간이 되실때마다 음식을 하셔서 필요한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곤 하셨는데 엄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