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here for you! (1)

I am here for you! (1)

000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흐느낀다. 프로그램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둘의 모습을 이상스레 한참을 지켜보다가 한사람씩 한사람씩 자리를 떠나간다.
000는 아직도 내 어깨에 기댄채 눈물을 흘리며 흐느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가슴도 미어지는듯한 아픔이 밀려온다.나도내 가족중에 000의 남편처럼 치매로 고생하는 분이 있어서 000
의 심정을 쉽게 이해할수 있었다.
내 가슴에 커다란 그 무엇인가가 콱 막혀서 숨을 쉬기가 힘이 들 만큼 고통이 밀려온다.

가만히 한숨이 쉬어져나온다. 그래! 얼마나 힘이들까?
내 어깨에 기대여 흐느끼던 000가 몸을 떼며 눈물 흘리던 얼굴을 휴지한장으로 매만지며 말한다.
Thank you for listening my story! 내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마워! “사실 나도 내가 정말 내가슴속에 쌓인게 이렇게 많을줄
은 생각도 하지못했어!”
000는 홍콩출신이다. 영어를 아주 편하게 하니 내가 이곳에 와서 일을 하는데 다른분들하고 대화를 연결해줄수 있기도하다.
000는 이곳에 와서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참여하지 못하고 ( 노래하는 시간이나 , 빙고게임, 마종, 등등의 엑티비티) 남편의 거동을 일일히 보살피며 돕고 있다.

000남편은 지금 치매이다. 치매도 나쁜치매가 있고 그래도 다행인 치매가 있단다.
( 치매걸린분들의 그전의 살아왔던 삶이 어떤삶이었는가에 따라 치매가 걸리면 그분들의 행동이 나타나는것이다.)
그런데 000의 남편은 본래의 성품이 착하셨는지 그다지 나쁜말썽을 일으키시지는 않는다.
굳이 이곳에 오셔서의 말썽이라면 6명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음식 6명분이 준비되어 있으면 누가 조금만 방심을 하면 그6인분의 음식들을 다먹어 치워버린것을 빼고는…치매 환자이니까…

본인이 식사를 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음식을 보면 지속적으로먹는것이다.
그리고 배부르다는 사실을 감지 못하니까 상에 차려져 있는것을 보고는 그냥 먹게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었다.

3년전 한국의 언니가 대장암수술을 받고서 병원에 입원을 하였었다.
언니에게는 딸하나뿐인데 그딸아이가 직장생활을 하니 언니는 간병인이 돌봐주어야할 형편이었다.
언니가 아프기전엔 언니가 형부와 함께 있어서 어려움이 없었으나 언니의 발병으로 치매인 형부를 돌보는 일이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물론 간병인을 두었었는데 형부의 돌발행동으로( 별안간 집을 나가서 형부를 잃어 버리기를 두차례) 간병인은 치매환자는 돌볼수가 없다고 그만두셨고 우리 형제들은 외국생활을 하는 형편이라 어떻게 발만 동동굴리다가 내가 자원을 하여 휴가를 내서 언니와 형부를 돌보려고 한국으로 나갔었다.

언니가 병원에 있는동안 예전에 대학교수로써 강단에서 건축학 계론을 가르치던 멋진형부의 인텔릭한 면은 어디로 갔는지 대여섯살 정도의 수준이 된 형부는 잠시 한눈을 팔면 일을 저지르고는 했다.
형부를 혼자 놓아둘수가 없어서 나는 내가 외출을 하려면 내 손목과 형부 손목에 줄을 매고는 함께 다녔었다.
마치, 미국유치원 아이들이 나들이 나가면서 아이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서로 연결하는고리처럼 말이다.

형부와 나는 손목에 서로 줄을 매고영화관에도 가고, 형부가 좋아하시는 수제 빵집에도 가고 시장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오뎅도 사먹고, 떡복기도 사먹고, 근사한 찻집에가서 차한잔도 마시고, 때로는 박물관을 다니면서 역사 공부도 함께 하고는 하였는데 형부와 내손에 매어진 줄체인을 보는 사람들이 쑥덕거리며 고개를 돌려 우리를 한참이나 바라보아도 형부와 나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다녔다.

북촌길을 걸으며 우리 한국의 멋인 한옥들을 보면서 형부의 박식한 한옥들의 장점들을 ( 예전의 기억들은 거의 다 분명하게 하신다.) 들으면서 다녔고 근대사 박물관을 다니면서 격동의 시기에 다녔던 형부의 대학생활도 들을수 있었었다.
좀더 지켜본 사람들은 형부의 행동을 보면서 형부에게 이상이 있는줄을 아시겠지만 난 사람들의 눈길이 겹겹이 쌓여도 별 관계치 않았다.

일일히 설명을 해야할 필요도 없고 난 갈길이 바쁜사람이니, 형부는 내가 있는동안 매일 함께 모시고 다녀드리니까 저녁에 집에 들어오시면 피곤하셔서그냥 침대에서 넉다운되어서 주무시곤 하셔서 잠깐 한국에 다니러간 내게 저녁시간을 활용할수 있게 해주었다.

난 잠이든 형부를 일 도와주시는도우미 아주머니께 맡기고 수술후 병원에 누워있는 언니를 찾아가 언니옆에서
수다를 떨다가 밤이 깊어서야 집에 오고는 했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잠이든 형부를 지켜보는일이 너무 쉽다고 아주 좋아하셨고 난 잠든사람 지켜주는데 돈을 많이내야하는것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형부가 잠을 깨서 밖으로 나가버리시면 그야말로 낭패라 후하게 도우미분들에게 지불할수밖에 없었다.

형부가 우리가 사는 시애틀에 온적이 있었다.난 형부에게 엄마가 좋아하시던 스페인요리 파야야를 해드렸는데 형부도 너무나 파야야를 좋아하셔서 이날도 언니집 가까운 수산시장에 가서는 신선한 해물재료를 사다가 맛있는 파야야 요리를 해드렸는데 형부가 어찌나 맛있게 드시든지!

자주 해드리고 싶지만 난 시애틀에 살고 언니는 서울에 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