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씨 과장님(2)

내가 한국을 방문할 마다 동생이 지극정성으로 우리 엄마를 섬기는것을 보고 멀리서나마 마음이 안심이 되었었다. 그리고 엄마의 모든것을 얼마나 아껴주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남인것 같고 오히려 동생이 친아들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아끼는것은 좋은데 매사의 말에 토가 따랐다. 아침에 출근하는 동생을 배웅하려면 몇가지의 잔소리는기본이었다. 냉장고 문을 꼭닫으시오! 쓸데 없는 전력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전선의 플러그를 빼놓으셔야 하는것은 알고 있으신거죠? 문을 잠글때는 위의 키와 아래키 함께 잠그시는것을 잊지 마셔야합니다!… 엄마와 오랜시간을 함께 살았던 동생은 엄마를 너무나 잘알고 있었고 엄마가 몸이 온전하실때는 외로운 동생과 엄마가 한편이 되어서 적적함을 나누며 두사람이 산책도 함께 다니고 마켓도 함께 다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연극을 보러도 함께 다니곤 하여서 주위분들은 모자 지간이라고 착각을 정도였다. 우리 엄마 집에서 함께 사는동생은 엄마를 자기의 어머니인양 어머니라 부르며 그렇게 한식구로 살아온지라 이번 어머니의 상을 당하고는 누구보다도 슬퍼하며 망연자실 서있는시간이 많아지는것을 보고 어머니의 유품정리를위해 남아있던 내가 보려니 마음 한구석이 아리아리하게 아프며 저려왔다.

! 걱정이네

저친구를 어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웃사촌이라는말이 있듯이 우리의 친형제도아니면서 엄마하고 오랜시간을 함께 한동생은 엄마를 잃고 너무나 상심을하면서 우울해져가고 있었다. 나는 동생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매일 아침 동생하고 말을 하면서 동생이 하자는대로 했다. 그리고 동생이 좋아하는음식들을 매일 만들어주어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서 매일 저녁 다른 메뉴로 음식을 만들어 맛있는 밥상으로 엄마를 잃고 힘들어하는 동생과 마주하며 식사를하기로 했다. 동생은 유명한 전자회자의 과장이었다. 한번 결혼을 했다가 부인이 딴곳에 마음을 뻇겨서 혼자가 되어서는 혼자사는것을 우리 가족들이 엄마가 한국으로 나오셔서 혼자사시는게 마음이 않놓여 함께 살도록 주선을 하였었다. 일주일에 3일은 일하는 아줌마가 오셔서 살림을 도와주기때문에 엄마나 동생이나 할일으 없고 서로 말벗이 되어서 살고 있었던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이과장님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동생이 무슨얘기든지 하면 네에이, 이과장님, 부르셨나이까? 라고 장난스럽게 대답을하면 동생은 심각한 얼굴로 누님! 지금 우리 상황이 장난을 칠때는 아닌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면서도 웃음기를 머물고 있었다. 동생은 아주 성실한 직장인 이었다.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 옷차림에 정확한사람! 옷을 입으면 더워 죽겠는데도 목끝까지 단추를 잠그고, 바지엔 이더위에 뜨거운 다리미로 쭉쭉 다려서 바지날이 날쎈 검처럼 잡혀있고, 동생의 구두에는 날파리가 앉았다가도 미끌러질 상황으로 반질반질한 상태, 아침에 일어나면 정확하게 시간이 정해져있는 순서대로 치솔질하고 밥먹고 집안단속하고 전기줄 다확인하고 가스불까지 점검을하고 출근을하는 매사가분명하다못해 너무나도 정확한 사람이었다. 동생이 볼때는 우리어머니의 막내딸인 너무나 자유분방한 사람 이었고 콘트롤이 되지않은 사람이었다. 동생이 문단속할때에 나에게 당부를 했다. , 누님 오늘 나가실 있으신가요? , 그래 이따가 나가서 볼일을 보아야지! 그럼, 나가시면 위에 키와 아래키를 잠그셔야 합니다. , 알았어요! 잠글께요. 엄마가 사시는 집은 청화대 바로 옆동네이다. 청화대가 가까와서 도둑들이 설치고 다니질 못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동생과의 약속은 저만치 밀어둔채 내가 잠그고 싶은 위에 키만 잠그고 밖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들어오곤하였다. 우선 서너개나 되는잠금장치가 너무나 불편했다. 한국아파트는 요즈음 번호로 연다는데 엄마의 집은 오래된 빌라구조라서 아직도 열쇠를 서너개씩 잠그어야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위의 키만 잠그고 어쩌다 볼일이 있어 집으로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매사가 정확한 동생으로 부터 장시간 설교를 들어야헀다.

누님!

누님이 미국에서 사시면서 무서운일 당해보지 않은것 같은데 이러시면 안됩니다.

동생이 야단을 치면 그냥 미안해 알았어 하고 말아야하는데 아니야, 이동네 안전해서 괜찮아 라고 하면 동생은 내가 듣지 않을 정도로 혼자서 중얼거렸다.

에이씨, 문도 잠그고 다니고

그런데도 한국에 있는동안 동생이 원하는대로 하지않고 아래위 문을 잠그지 않고도 잘다녔다.

엄마가 미국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사시는동안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던 음식중에 한가지는 홈메이드 해물파스타였다.

각종 야채를 썰어넣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해물을 따로 준비한 달구어진 팬에 올리브유를 넣고 마늘 다진것을 듬뿍 넣고 이탈리안 소스를 넣고 각종야채를 볶은후에 먹기전 도마도를 먼저 끓여놓은 소스에 버무리다가 준비해둔 새우 스켈롭 홍합등을 넣고서 먹기전 파마죤 치즈로 가니시를 해서 상에 올려 놓아드리면 소식인 엄마가 파스타 한접시를 거뜬히 비우시고도 잡수시곤 했었다.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가신후에도 내가 해드리던 해물파스타를 잊지 못하셔서 내가 엄마집에 밥을 해드리러 오시는도우미 아주머니에게 해물파스타 만든는 법을 알려주고, 파스타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마른 재료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나갈때 사가지고 나가든지 아니면 부쳐드리곤해서 엄마집에는 항상 해물 파스타 재료가 준비 되어져 있었다.

난동생에게 엄마가 좋아하시던 해물파스타로 저녁식사를 만들어 주고싶 물어보았더니

동생은 정중한 태도로 누님도 지금 어머님 돌아가셔서 마음이 편하지 않으실텐데 파스타 만들어 주시면 너무 황송하지요.

날씨도 더운데 땀을 흘려가면서 버섯을 썰고 양파를 잘게썰고 호박도 먹기좋게 잘라놓고 빨간 피망 파란피망 그리고 올리브도 잘게 썰어서 달구어진 팬에 마늘 듬뿍 넣어서 이탈리안허브로 간을 한후 정말로 맛있는 파스타 소스에다 엄마가 돌아가시기전 사다놓으셨던 해물들을 넣고 엄마가 약간 매콤한맛을 즐기셨던터라 파스타에 약간의 이탈리안 핫페이퍼를 넣어서 동생이 저녁에 집에 들어오자 해물파스타를 상에 차려주니 동생은 말없이 파스타를 먹더니 혼자서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로 에이씨 무슨 파스타가 이렇게 매워? 에이 ,에이씨

내가 머무는동안 한국의 여름날씨는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열대야였다.

너무나 더워서 잠깐만 밖에 나가도 옷이 흠뻑 젖어서 짜낼정도가 되었다.

동네 수퍼에서 수박 한통을 사서 화채를 만들어 놓고는 수박살을 깍아내어서 약간의 소금에 저린다음 고추가루, 마늘, ,그리고 식초, 설탕, 참기름을 넣어 수박채 무침을 해서 동생이 식사하는 식탁에 놓아주니 말없이 밥을 먹던 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