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이그재미너(2)-이별

미국에 와서 생활한지가 벌써 20여년이 가까워져 가는데 남편은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해본지가 거의 없다. 물론 40대중반에 미국에 와서 영어도 안되고 특별한기술도 없지만 남편은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믿고는 아무것도 안하고 세월만 보냈다. 돈이라는게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는것이라 아내는 안달이 나서 여기 저기 직장을 알아본후 함께다니던 00의 자매님이 소개해준 생선공장에서 냉동생선 박스에 담은것을 확인하는 일을하는 직장에 다닌지 벌써 10여년째이다. 아내인 00씨는 사교성이 좋아서 직장생활을 재미있게 했다.처음에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이제는 웬만한 영어는 다알아들어서 직장생활도 재미가 있어했다. 다만 한여름에도 냉동 창고에서 일하다보니 몸이 얼어붙는것 같아 한여름에도 긴팔에 두툼한바지를 입고 다녔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남편이 0씨가 저금해놓은 돈을 몽땅 빼어서 도박으로 날린것을 안 그날, 아내는 짐을 싸가지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직장근처에 잘아는 동료집의 방한칸을 얻어서 생활을 하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 했었다. 물론 이혼을 결심하기까지는 쉬운일이 아니었다. 아내인 00씨의 가정은 훌륭한 종교적인 가정으로 아버지는 훌륭한 000이셨다. 아내는 남편의 무위도식과 술주정을 참으며 언젠가는 변할것이라는 신념을가지고 살았는데 자기가 한푼두푼 모아둔 돈(아들 결혼자금으로 쓰려고)을 다꺼내어 도박으로 날리고 온날, 모든것을 정리 하려고 결심을 하고 집을 나온것이었다. 물론, 군대에 간 아들에게는 말도 없이 ….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서 엄마와 아들은 마주앉아 둘이 서로를 다독거렸다. 엄마! 잘한거야! 나도 아버지 술먹고 주정부릴때마다 힘들고 괴로웠거든…아들은 군대를 마치고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고, 엄마가 아버지가 휘두르는 망치에 쓰려져 병원으로 후송된 날, 아버지는 엄마가 죽은줄 알고 권총자살을 하여서 세상을 떠난것이 었다.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가라는 매디컬 검시관의 전화와 편지를 무시한후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는 알림소식이 지역신문에 난지 90( 법적으로 정한 날짜)일만에 아버지는 연고자 없는사람으로 취급되어서 화장을 하여졌던 것이다. 00씨와 함께 아들인 000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20대 중반이고 국민학교때 미국엘 왔다는데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 아들아이를 마주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냥 제대로 잠을 잘수가없어요. 잠을 자면 그남자가 나타나서 괴롭혀요…

어떻게 괴롭히죠?아니 그냥 나타나서 아무말없이 붙어있으니까요!
아버지가 그리우세요? 아니요!
천만에요, 절대로 그립지 않아요.
그래요…
그럼, 왜 힘들죠?
몰라요.
요즈음은 거의 매일 우울증이 와서 힘이들어요. 혹시 정신과 의사 만나보실래요?
아시는 정신과 의사 있으세요?
우울증의 약을 먹고 기다려볼래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때 만나요 난 의사가 아니고 lifecoach예요.

그로부터 몇주후에 아들이 전화가 왔다. 선생님하고 얘기를 하고나면 조금 편안해져요. 그냥 애기좀 하고 싶어요. 그래요, 그럼 내사무실로 오세요. 26살 청년은 이야기끈을 풀어갔다.

아버지는 술중독자였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말이 없는데 술만먹으면 아예 딴사람이 되어서 식구들을 괴롭혔다. 자기위로 형이 하나 더있었는데 형이 수영을 하다가 죽고난 후에는 더 심해져서 술도 자주먹고 직장도 팽개치고 하였단다. 그래도 한국에 살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파트를 사주셔서 아버지가 푼푼히 벌어오는 돈으로 생할을 하다가 미국에 사는 이모의 초청으로 이민을 오셔서는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다녀본적이 없고 집근처에 가까운 카지노로 가서 돈을 따온다고 하며 세월을 보냈단다. 아들은 이야기를하면서 너무나 힘이들어했다.그래도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서는 안되는데….자기가 너무 잘못한것 같기도 한데 그러나 내가 뭘 잘못했어요? 아버지라고 한번 용돈을 준적이 있어요?

돈을 벌어서 엄마하고 나하고 한번 신경안쓰게 한적이 있어요? 술만 먹으면 집안을 다 휘저어놓고 엄마와 나는 주정부리는 아버지를 피해서 한겨울에도 몰래 집차고에서 잔적도 꽤 많아요. 그집도 이젠 없어요. 이민올때 가지고 온 돈으로 집을 구입했었는데 그집도 재융자 받아서 오히려 돈을 물어주어야 할 판이었거든요. 아버지는 우리에게 한것이 없어요!아버지도 아니예요. 정말 나쁜0이예요.얘기를 하던 000가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한참을 울어서 눈이 퉁퉁불은 000에게 난 제안을 했다. 우리 같이 아버지 장례식을 치룰래요? 눈이 퉁퉁불어서 눈이 보이지않는 000는 얼굴을 치켜들고 묻는다?
네? 무슨 말씀인지…

흠! 아버지 그렇게 보낸것 너무 힘들죠?
또다시 000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실컷 울게 놓아 두았다. 한참이 지난후에 난 000에게 설명을 하기시작했다. 아버지가 싫었든 좋았든 너무 가슴 아프게 세상을 이별한 것 이잖아요, 물론 혼자 저지른 일은 000가 아무것도 할수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 시체를 외면한것이 지금까지 괴로울꺼예요. 그래서인데 아버지 장례를 치루어 드릴래요? 물론 거창한것은 아니고 ….
난 아는 장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시간 빌리는데 얼마죠?

그로부터 몇주후 000씨와 엄마,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의 작고 조촐한 이별식을 하였다. 000의 친구를 사회자로 세우고 그 힘들게 했던 아버지의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져보면서 연민도 느끼고 관속에 아버지없는 시신을 보면서 다시 000씨는 한없이 울음을 터뜨리며 평범한 이별을하게 되었다.

아빠! 미안해!
하늘가는 밝은길이 내앞에 있어도 슬픈일을 많이 보고…이별을 할때는 그사람이 어떤사람이었든간에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다. 그아픔을 느껴봐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힘을 갖을수 있는거다. 너무 미워서, 너무 싫어서, 외면하고 보지않으려고 했던 어쩔수없는 인연인 아버지! 청년인 000의 가슴속에 죽을때의 아버지는 그대로 남아서 000의 삶을 흔들어 놓는것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아버지를 편히 보내드린후 000 하고 연락이 두절 됐었다.가끔씩 000의 엄마를 통해서 얘기를들으니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곳이 싫다고 다른주로 이사를갔던 그청년 000한테서 전화가 왔다. 예전하고는 달리 밝은 목소리로 선생님, 저 결혼해요! 제 결혼식에 오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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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 채 워싱톤 한인 가정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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