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딸

둘째 딸아이는 태어나면서 참으로 이쁜 베이비 였다.( ! 아기는 이쁘지????)

아기가 눈과 코의 윤곽이 뚜렸하고 얼굴이 아주 자그만해서 미국병원의 간호원들이

이동양애기( 우리가 살던곳은 동양사람은 거의 없는지역이여서 새롭게 보였을수도…..)너무귀엽다며 예뻐해주었는데 특히 아이가 순해서 보채는법도 없어 잠도 잘자니 간호원들이 더이뻐했던것 같다.

집으로 와서도 아이는 배가 고프면 잠깐 울다가 잠이들고는 혹시 내가 시간을 맞추어서 우유를 먹이지 않으면 줄때까지 보채지도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는 했다.

둘째 앤이 첫째 딸아이와는 2 차이여서인지 첫째애가 둘째아이를 참으로 잘돌봐 주었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우리 나이때의 친구의 가족들이 우리집엘 놀러왔다가 친구딸아이( 큰딸아이와 동갑) 앤이가 이쁘다고 만지려고했는데 언니인 큰딸이 두팔을 크게 벌리고 아이를 못건드리게 해서 손님들은 아기를 만져보지도 못했던기억이 있다.

특별히 둘째 딸아이는 시집식구들의 머리숱을 닮아서 머리카락이굵고 숱이많아서 마치 러시아 인형근위대 모자를 모양 이었다..

아이가 아장 아장 걸어다니면서 마실나가는것을 좋아하자 공부한다는 이유로 시어머님 sos 쳤다.

아이좀 돌봐주세요?

다른 주에 사시던 시어머님은 바쁘게 오셔서 아이들을 돌봐주시는것까지는 좋은데 아이의 머리가 복잡하다며 둘째딸의 그아름답고 탐스러운 머리를 싹뚝 잘라버렸다.

어느날 학교에서 공부를마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곳에서일을 마치고 집에 늦게 와보니 아이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마치 중국인형 꾸냥모냥으로 잘라져 있었다.

아이의 머리모습때문에 너무나 속상했지만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어머님께눈치가 보여서 그냥 속상한 가슴만 혼자서 달래다가 애꿎은 남편에게 퍼부어댔었다.

무식한 시어머니 라구! 어떻게 물어보지도 않고 머리를 싹뚝 잘라버리느냐구?

남편도 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자 너무나 황당했는지 자기의 어머니를 무식한 할머니라고 해대는 내게 아무말도 못하고 머리카락은 자라니까 괜찮아 라면서 아무 얘기도 못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동양 애들이라고는전혀없는 위스컨신의 시골지역의 학교에 다니는 우리 딸들은 미국사람들과 학교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관심이 가는 친구들이었다.

아이들과 외출을 하거나 아이들이 학교에 갈때면 한국에서 큰언니가 보내주는 공주옷을 입혀서 학교엘 보내곤하여서 ( 한국제 이쁜 잠옷을 외출복으로 입혀서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잘모르니까… )학교에서는 이두공주들이 어떤 집안일까? 라며 궁금해했다.

주민인원이 2000명정도인 우리가 살던 써링이라는 동네는 서로가 너무들 알아서 동네사람들이 남의집 숫가락이 몇개인지까지 알정도로 친하게 지냈기에 특별히 그곳지역으로 남편의 직장 때문에간 우리가족은 동네의 관심사이고 특별한 존재였다.

이동네에서 동양사람을 보는것도 신기한데 온가족이 이사를 왔으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전, 그때 처음 이사를가니까 동네 사람들이 6.25 전쟁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을 기억하곤 하였다.

우리 가족들이 마켓을 가게되면 마켓안에온 손님들이나 일하는분들이 우리가족들을 구경하느라고 사람들의 눈길이 빠쁘게 움직였었다.

둘째딸은 언니가 하는것이면 무엇이든지 따라했다.

아니 매사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완벽한 결과를 하려는 첫째들과는 달리 첫째의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따라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엇이든지 첫째아이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내고는 했다.(거의 대부분의 둘째들이 그렇다. )

둘째가 5살이던 해에 아이를너무나 좋아하는우리가정에 세째가 태어났다.

우리 시어머님은 바쁜세상에 애를 셋씩이나 났냐고 푸념을 해서( 손주도 별로 였든가 보다!)

아기를낳고 집에 돌아온 내게 ! 이땅이 땅이냐? 애는 그렇게?

시어머님은 아기들의 찡얼거리는소리을 못견디게 싫어하셨다.(그래도 우리둘째를 살신성인하는 마음으로 돌보아주신거다. )

남자 동생이 생기던날 둘째아이는 갓난 아기 동생을 보면서 그때에 유행하던 캐비지 킷츠인형을 가슴에 안고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엄마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다가 동생만 안고있는 엄마에게 항의를하듯이거의 매일 오줌을 싸면서 외로움을 호소하고는했지만 세아이 키우면서 하던 공부 마저한다고 잠을 줄여가면서 책상자리를지키고 있던 엄마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였고 아이는 언니와 동생틈사이에서 이리치며 저리 치이며 조용히 자랐다.

둘째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언니가 하는 운동을 그대로 함께 하고는 했다.

그리고는 자기팀의 주장이 되어서 팀을 이끌어가기 시작을 하더니 고등학교에 들어서서는 학교팀의 배구부 주장, 치어리더 주장, 그리고는 홈컴잉 프린세스로 ……

바쁘게 활동을 하면서도 전교 학생회장이되겠다며 선거작전을 짜기위해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와서는 나에게 자기친구들에게 피자, 스파게티 갈비를 만들게해 아이들의 대환영을 받게도 하였다.

둘째가 고등학교 이학년때이다. 첫째딸이 대학을 다닐때라 셀폰을 장만해주었는데 둘째딸도 자기도 장만해달라고 요구를 해왔다.

우린 우리집룰이 대학생일 쎌폰을 마련해준다고 기다리라고 했는데 둘째는 몇달후 자기가 베이비씨터를해서 모은 돈으로 셀폰을 구입을 했다면서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구입한것이니까 엄마아빠도 아무 얘기도 할수 없다면서 우리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둘째딸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우리사무실에 와서는 홈리스프로그램을 돕기 시작을 했다.

대학은 컴뮤니케이션을 전공을 해서 어나운서가 되고싶다며 커뮤니케이션과목이 스트롱한, 수많은 훌륭한 앵커를 배출한 워싱톤 주립대학으로 떠나면서 집을 떠나는것이 속상해서 차를타고 가는내내 울더니 학교에 도착해서는너무나 행복해하며 학교생활에 충실했다.

둘째가 세살때 였든가?

아이는 텔리비젼에 나오는 여자 아나운서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틈만 나면 숫가락을 입에다 대고 되지않는 발음으로

Hello, my name is Ann.

What is your name?

What do you think about cold?

자기가 혼자서 말을 만들어서는 옆에있는 누구나에게 숫가락 마이크를 들이대면서 인터뷰를 청하고는 하면서 자기는커서 텔리비젼에 나오는 예쁜 언니처럼 어나운서가 되겠다며 얘기를 하곤 했다.

아이가 밤낮으로 숫가락마이크를 손에서 놓치않으려고 장난감 마이크를 사주었더니 딸은 장남감 마이크를 아예 손에서 내려놓치 않으며 잠을 잘때도 끼고 자고는 하면서 뭐든지 혼자서 인터뷰를 하고는 했다.

언젠가 우리집에서 키우던 금붕어가 죽어서 금붕어를 버리려고 하는데 앤이는 금붕어를 종이상자에넣고서는 장례식 절차를 마이크로 생중계하기도해서 지켜보던 우리가족들은 쟤가 아무래도 마이크 잡는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앤이가 국민학교 5학년때는 마침 우리사무실에 보드멤버인 5뉴스의 로리 마쯔까와에게 앤이를 만나서 멘토로써 애길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더니 로리마쯔까와는 앤이에게 어나운서가 되기위해서 해야할일 대해서 필요한 얘기를 해주었다. (로리는 스탠포드를 나왔다.)

앤이가 대학교 3학년때였든가에 딸아이는 내사무실에 와서 인턴으로 여름을 봉사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