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식 맞아?

말도 안돼 어떻게 그ㅡ럴수가 정말 기가 막혀!

아니 그거 정말 왕싸가지 아냐?

그럴수는 없지, 그런것들은 보내야 돼?( 어디로????)

하여간 너무나 속상하지만 내가 속상하다고해서 화풀이를 문제를 가지고온 고객앞에서 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에 앉은 000 아무말없이 듣고만 있는 내가 조금은 미심쩍은지 나를 살펴보며 마침내는 레지나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묻는다.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으며 할 얘기 있으세요? 라고 물으니 앞에서 열을 내면서 얘기를 하던 000 많은 이야기들을 내앞에다 풀어내 보였다.

아니 있어요?

글쎄 그시누이가 있잖아요. 말로는 엄마를 모신다고 하지만 어디 솔직히 얘기해 보자구요? 그게 어디 자기가 모시는겁니까? 미국정부가 모시는거죠,

자기들이 하는게 뭐가 있어요?

미국에서 다달이 돈주죠, 밥값 주죠, 아프면 병원데리고 가죠, 기운없어 일 못하면 사람붙여서 밥해주죠? 심심할까봐 노인회에 가시라고 공짜로 보내주죠,

선생님 생각해보세요? 우리 시누이가 하는 일이 뭐죠?

어쩌다가 옆에사니까 가끔씩 엄마집에 들러서 하이! 하는것 밖에는 별로 하는일이 없는데 마지막 까지 빼앗아 먹으려는 행동이 너무 괘씸해서 속상해 죽겠어요.

선생님 같으면 어떻게 하실래요?

속상한 마음 보따리를 다 펼쳐놓고 한참이나 열을 내며 얘기를 하던 000씨는 가만히 듣고만 있는 내가 좀 불안한지 간간히 나를 찔러본다.

! 말 조심해야 한다.

혹시라도 쉽게 꺼내었다가 가정 문제에 끼이게 되면 내 앞길에 먹구름이 끼인다.

얼마전 거의 7개월동안을 우리사무실에 오셔서 상담을 하시던 가족이 있었다. 아들 둘과 딸하나를 싱글엄마 가정이었다.

거의 30대 중반으로 혼기를 넘긴 딸이 어떤 분의 소개로 우리 사무실 문을 두드린지 3개월쯤 될때 쯤에야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이들의 어머니까지 가족 테라피에 합류했었다. 딸은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때에 술만 먹으면 행패를 부리며 온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남동생과 4살위인 오빠, 그리고 손에 쥔것 아무것도 없지만 남동생이 초청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엄마와 함께 손에 아무것도 없이 미국으로 왔었다. 딸은 용기도 있고 성실하며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었다.

딸은 미국에 오자마자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여 일년간의 이중언어반을 성실히 이행한후 미국 군대에 갔다.

그리고 3년간을 복부하면서 군대안에서 부터 대학공부를 해서 컴퓨터엔지니어자격을 딴후에도 더공부해서 이곳에 있는 마이크로 소프트에서도 실력있는 직원으로 일을 하며 연봉도 아주 많아서 정말로 감사히 생활을 하는데, 문제는 오빠와 동생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행패와 학대를 겪은 동생은 미국에 14살때 왔는데 학교생활이 적응이 안되어 학교를 수십번 옮기고도 고등학교를 졸업을 못했다. 거기다가 오빠는 오자마자 외롭다고 독백을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한국으로 나가 아직 어린나이인데도 두고왔던 여자 친구와 덜컥 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데려왔다. 오빠 역시 미래에대한 게획이 없이 가정을 꾸리게 된것이었다.

돈을 잘 벌던 딸은 집을 장만하여서 오빠와 동생, 그리고 딸린 식구들까지 책임을 져야하는 생활을 십년째 하다보니 한달에 만불이 넘는 인컴에도 불구하고 딸의 통장에는 천불이라는 돈도 없었다.

이곳 미국에 오셔서 밤청소며 남의집 식당이며 닥치는대로 일을 하던 엄마는 이젠 마디마디가 아프셔서 아무것도 하실수없는 상황이었다.

어린 남동생은 이미 30대가 넘어섰는데도 배운것이 없으니 닥치는대로 막일을 해보다가도 툭하면 그만두고 집에 들어박혀있거나 아니면 아무여자나 데리고 들어와 여자 친구라며 방안에서 나올줄을 모랐다. 역시 한집에사는 오빠네 가족들도 이미 세사람이 되어있었다. 딸은 조카가 너무나 예뻤지만 하루종일 고되게 일하고 들어가는집은 온형제들 치닥거리로 쉴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혼적령기를 훨씬넘긴 자기인생을 생각해도 불안해지기 시작을 했다. 이때쯤 어느분의 권면으로 내 사무실로 왔었다. 우선 나는 딸에게 동생과 오빠들을 보조하던 ( 인슈런스, 차값 페이먼트, 등등등…) 본인들이 책임을 질수있도록 일자리를 찾으라고 하며 6주의 시간을 주라고 했다. 그리고 형제들이 돈을 버는대로 독립을 해서 살아가야한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형제들과 어머니를 상담에 합류시키며 그룹테라피를 하는데 미국에 사는동안 여동생과 누나의 지갑만을 바라보는 남동생, 그리고 오빠의 눈치가 만만치가 않았다.( 뭔데 우리가 편하게 사는것을 깨버릴려구하지? 라는 눈빛)

이분들에게 여동생과 누나에게 의지하고 사는것은 건강치 못한 삶이고 자기 몫을 하면서 사는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가르쳐주며 일어서기를 권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