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울어

모세가 씨애틀에 왔다.

모세는 15, 한국의 보육원에서 자라는 소년이다.

어릴적, 아니 낳자마자 물가에 버려져있는 아이를 사람들이 구해서는 그때부터 보육원에서 살고있는 아이이다. 모세의 이름은 기독교보육원에서 지어준 것이다.

내가 모세를 만난것은 몇년전 한국에 있는 서너군데의 고아원들을 방문하면서 대전 근처에 있는 고아원에서 하루밤을 묵으며 아이들과 함께 지냈었을 때였다.

아니, 어쩌다 한국에 가서는 고아원에서 잠을 자느냐고?

내가 어릴적 우리 어머니는 불쌍하고 어려운이들을 많이 돌보셨다.

그리고 항상 우리들에게 너희도 능력만되면 남을 도와라.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이다. 그때 엄마의 말씀을 들으며 엄마, 또시작! 이라며 생각을 했었다.

물론 엄마의 말씀을 듣기는 했어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해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내가 살아가는길이 우연찮게도 엄마가 하시던 일들을 그대로 하고있는 것이었다.

아니, 계획도 없었는데 나는 엄마가 하시던 일과 비슷한 일을 택했고, 그일을 아주 기쁘고 즐겁게 하는것이었다.

나는 나이가 50 넘으면 주머니로 들어가는것을 줄이고 내가 할수있는 일들을 찾아하기로 마음먹고 박봉의 월급을 쪼개고 쪼개어 고아원을 방문할 계획으로 그아이들에게 줄선물들을 준비하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는 예전에 아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고아원과 연락을 하면서 방문한지도 몇년째 되었다.( 고아원을 찾아가는날 하루저녁식사를 내가 대접한다.) 한곳의 고아원은 46명의 아이들, 한곳은 51, 또한곳은 12명의 아이들이 있다. 나는 이곳으로 갈때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See’s candy 잔뜩 사가지고 간다.

내가 한국갈 시간이되면 내가 하는일을 도와주고픈 친구들이 연락이 온다.

See’s candy 사놓았어요. 이번에도 한국방문에 캔디를 사준 친구들, 후배들, 써포터들의 도움으로 100여명의 아이들에게 캔디를 선물해주고 하루 저녁 이들에게 불고기 파티로 아이들을 배불리 실컷 고기를 먹게 해주었다.

고아원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내가 시간이 되면 고기아줌마 오실때가 됐는데라고 기다린단다.

아이들을 위해 가뜩이나 빈약한 내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고기 파티를 해주면서 아이들과 얘기도 하고, 책도 읽어주고, 앞으로의 인생길에 대해서 얘기도 해주고, 코를 질질흘리는 아이코도 딲아주고, 숙제가 어렵다는아이머리맡에 앉아서 제대로 실력 발휘해보며 아이들을 도와주기도하고, 그러다보면 아이들과 정이들게 된다.

하룻밤씩 지내지만 매년 가게되니까 아이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는 연례행사가 되는것이다.

씨애틀아줌마의 고기파티가…..

인생을 살면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눔을 삶을 실천해 볼수있다..

그런데 보육원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심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재미가 있다. 보람이 있다.

이렇게 해서 대전근처의 보육원에서 살고있는 모세가 우리 곁으로 와서15일간의 시간을 지내게 된것이다,

그많은 아이들중에 모세를 선택한것은 모세의 외모때문에 먼저 마음이 아렸다.

우선 모세의 어느 한쪽 부모님이 한국사람은 아니었던것 같다. 아프리칸 어메리칸처럼 검은피부에 얼굴도 입이 천장까지 찢어진 모습으로 ( 물론 정형수술을해서 말하는 기능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아직도 외모로는 자신이 없어보인다. 특별히 요즘같이 성형으로 잘나게 만드는 세상에서 날때부터 기형인 아이는 마음이 그다지 편치가 않다.)

한국사회에 다민족 문회에 대해서 이제 많이 편해졌다고 하여도 내가 가서 느낀 한국은 아직 다민족이 똑같은 권리를 누리고 살기엔 시간이 더많이 지나야 싶다.

모세는 여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엔 편치않은 조건이다.

그런데다 고아이다.

그래서 모세에게 행복한 가정의 느낌을 느껴보게하고 싶었다.

그래서 몇몇친구들의 도움으로 아이가 이곳에 와서 각가정을 돌면서 숙식을 하며 여기저기 좋은곳을 구경하고 즐겨볼수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 것이다. 모세를 기다리며 커다란 종이에 매직 팬으로 금모세를 환영합니다.( 모세는아시아나 비행기를타고 왔다.) 라고 피켓을 들고 공항에서 기다린지 얼마후 모세가 자그마한 슈트케이스를 들고 나왔다. 장시간의 비행기여행에 지칠법도한데 모세는 피곤하지? 라고 묻는데 별로요? 배고프지? 라고 묻는데 글쎄요?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것이라 마음이 불안해한다는 보육원 선생님의 말과는 달리 아이는 무덤덤했다.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모세는 첫번째 숙소인 000님댁에서 이분들이 베풀어주는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하며 잘지내는것 같은데 아이의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분들은 할수있는 최대한의 배려로 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보내주시고 계셨다. 아무리 잘해주어도 웬지 아이의 표정은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새로운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일까?

옷을 너무나 얇은 옷만 가지고 와서 백화점에 가서 청바지 두개, 따뜻한 잠바, 그리고 티셔츠 두개를 사주며 좋아해줄꺼라고 생각했는데 표정이 없다. (000님이 사주셨다)

훌륭한, 맛잇는 음식으로 아이의 마음에 행복감을 주려고 평소엔 잘가지 않는 비싼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 이곳은 아주 비싼곳이고 음식도 아주 맛이있단다. 라고 말을 해주며 어때, 너도 좋치?

라고 물었는데 아이는 글쎄요라며 말을 얼버무린다.

좋은건지, 아닌지! 헷갈린다. 아니, 이건 뭐야? 얘가 이러지?

음식이 맛있니?
, 그렇죠뭐?

날씨가 더워서 어렵지?

글쎄요

잠이 모자라서 피곤하겠구나?

별로요,

아이는 무슨 질문을 하여도 단답형으로 감정이 없는사람처럼 얘기를 하면서 아예 인생에 초관한것처럼 대답을해서 아이가 무척이나 방어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고 대답하는 것이 내가 원한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선택한 것이라는 확실한 금을 그어놓고 있었다.

아이는 상처를 많이 받았거나 거절을 당한 경험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법을 모르는것이다.

아이를 껴안아주려고 해도 아이는 몸을 뒤로 빼며 어색해한다. 아참! 아이가 한국에서 왔지?

한국에는 허그를 안하지! 더구나 아이는 보육원에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수 없었기에 더우기 어색해할수밖에 없는데 너무 강요하지 말자. 그냥 지켜보자. 그리고 아이를 즐겁게해주자. 라고 생각을 하며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아이를데리고 우드랜드 파크 동물원을 갔다. 아이에게 저건 뭐지 ? 저건 히포라구 . 라며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이를 말하게 하려고 애를 써보지만 아이는 웃는것인지 아닌지 모르는 미소를 아주 살짝 보이고는 아무소리도 없이 따라만 다닌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사람하고 다니는것은 재미가 없다. 아이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아이가 듣던지 말던지 얘기도 해주며 솜사탕도 사서 함께 뜯어먹으며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붙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