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냉면

죽일0 감기몸살 아니 여름 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는데…..

감기몸살이 벌써 며칠째 내몸이 뭐가 좋다고 안떠나는지?

마치 아이밴 여자처럼 속이 메쓱거리고 (꿈도 야무지지! 나잇살 먹어가지고 이런표현을 감히 나자신에게 쓰다니…..)

아무튼 기분 제로다.

그냥 몸이 끌려다니는 듯한 상태라고나 할까!

좀비같다. 비척 비척 대면서 허우적거리며 걸음을 떼는 좀비, 안그러고 싶은데 내몸이 절대말을 안듣는다. 아니, 안듣기로 작당들을 한것 같다.

항상 많이 쓰는 손목이 시큰거리고(컴퓨터좀 쓴다고 아끼는데 지난주에는 그리 넓지도 않은 앞마당 뒷마당 화단에 잡초를 제거하느라고 손을 너무 많이 사용했더니 내팔다리가 내몸통에 겨우 붙어서 댕강거리며 주인님! 살려주십죠! 애원을 한다.)

그래서 맘먹고 일주일동안 밥안해 먹기로 했다..

어차피 감기몸살로 입맛이 없는중에 잘되었다. 생각하고 아프면 나만 손해, 아프면 결국 여러모로 불편하니 아픈손 쉬게하자구 결론을 내리고, 저녁메뉴는 라면, 아침엔 시리얼, 점심은 그동안 현미 떡해서 얼려놓은것 한덩어리에 사과 하나 도마도하나,며칠을 먹었더니 이제는 입에서도 데모를한다 .

제대로된 음식을 달라구

식은땀이 온몸을 적셔서 목욕을 안해도 될만치 온몸이 흠뻑 젖었다.

찬스만되면 아무데서나 자릴잡고 누웠다. 아니 두다리를 쭈욱뻗고 아무대고 등을 기대고서는 잠시라도 눈을 감고 쉬었다.

잠이라는 놈이 왜이렇게 끈질기게 붙잡는지 잠귀신이라도 붙은것 같다.

사흘 밤을 잠을 잤다.

꿈속에서 어느 마을에 갔었다. 꿈속에 사람들이 아시안들인것을 보니 아마도 아시안나라 어디인것 같은데….

나와 동행하던 친구들은 이곳에 도착하자 위험하다며 다른곳으로 가자면서 나를 달래었는데 웬일인지 친구들의 권유를 무시하고는 이낮선곳으로 한발자욱씩 접근을 하다가 얼마 못가서 작은아이들 열댓명에게 둘러쌓여 버리게 되었다.

잠시 나를 에워싼 무리들은 나의 팔다리를 하나씩 붙잡더니 마치 공중부양이라도 할모양 나를 걸쳐메더니 어디론가 끌고갔다.

이아이들이 내몸을 소유하도록 이들이 이끄는대로 그냥 놔두었다.

아이들은 나를 굉장한 전리품이라도 되는양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기들말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축쳐진 몸속에 별안간 생기가 돌며 기운을 차려서 소리를지르며 고함을 치기 시작을 했다.

내버려줘, 해야할 일이 아주 많은데 너희들이 날이렇게 하면 안되지, 내버려 …..

나를 포박한 아이들은 자기들이 나를 포박할때도 별저항없이 놔두다가 별안간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내가 이상한지 모두들 놀란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그중에 눈빛이 맑은아이 하나가 자기들의 무리에게 뭐라고 얘기를 한후에 나의 포박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나를 내가 왔던 자리로 안전하게 다시 되돌려주었다.

휴우! 꿈이였다.

허약해지면 꾸는 ?( 내몸을 가지고 허약한 꿈이라고 한다면 동네사람 웃겠다. 튼튼한 팔다리에 씩씩하게 뛰어다니는내가 허약하다니? 말도 안돼지! )

어릴적 우리 언니는 엄마의 가랑가랑한 몸매와 좁은 어깨, 그리고 작은 발을 몽땅 가졌다. 아버지의 투박한 손과 팔다리 그리고 어깨까지도 넓어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오빠는 나에게 막내는 군대가야지? 라면서 놀리곤했다. 그때엔 군대에가는 여자가 거의 없을때인데

오빠는 군대안가면 그튼튼한 몸으로 농사지어도 좋고 라면서 나를 놀리곤 했는데 자라면서 점점 몸도 얼굴도 여성스러워져가며(?) 오빠의 이야기는 옛날이야기가 되곤했다. 여성스러워져가면서 기가 막힌것은 겨울이면 감기나 기관지염을 달고살고 여름이면 앨러지로 온몸이 가려워 긁기 시작하여 경기까지 날정도였으니 그리고도 모자라 먹으면 체하고 토하고..

어릴때에는 장군감!( 여자에게 장군감이라고하면 그건 욕이였다)

이라던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요기조기 아프고 턱하면 양호실로실려가고툭하면 조퇴하고 집에와 누워있고 그랬다. 집에와서는특별히 할일이 없어 책이라는책은 읽어버렸다.

워낙에 책을 좋아하는데다가 책읽는 속도가 빨라 항상 책이 모자라서 옆집 종애삼촌이 읽다가 숨겨둔 선데이 서울까지도 몰래 뽑아 후딱 읽어버리고는 살짝 갖다놓기도 했었다.

요즈음도 내가 이렇게 아플까?

생각을 해보면서 병원에 가봐야한다는 가족들의 의견을 아예 무시를 해버리고는 내가 왕의사가 되었다.

내가 진단하고 내린결론은 헤어짐의 아픔병

얼마전 오랜시간동안 친하게 지내던 분들 가족중 남편되시는분이 돌아가셨다.

평소에 아주 친하게 지내던 가족들 인데 남편은 하버뷰 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오랜시간을 근무를 했었다. 이년전 이분이 기관지가 굳어져버리는 병이 걸렸었다.

보통사람들같으면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치고 애통해했을텐데 이분은 냉정할정도로 담담하게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평소와같이 함께 밥먹고 농담하고 워킹도하고 토론도하고 지내길 얼마후 이분은 숨이 차서 밖으로 나올수없는 상태가 되자 모든 활동을 끊고 방안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면서 병상에 누워있기를 1년하고 6개월 이지난 몇주전( 이분은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며 오직 가족들하고만 지냈었다 ) 이분은 자기들 가족하고 가까운분들 서너명을 초청하여 마지막가는 환송 파티를열었다.

이날 이분이 나를 초대한것을 알고 속으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걱정을 하면서 머리카락을 돌돌 손가락으로 말기도하고 애꿏은 손톱을 나도 모르게 물어뜯기도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바를 몰랐다.

드디어 그날이 된날 모두들 아침 9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새벽5시에 깨었다.

직장은 반나절은 못가겠다고 얘기를 이미 터였다.

아침 다섯시에 공연히 냉동고에 고히모셔져있는 조기를 꺼내어 비닐을 칼로 벗기어내고 조기를 굽고 냉장고에서 전날저녁에 삶아논 시금치를 꺼내어 마늘넣고 소금넣고 매실액까지 넣고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쳐놓고 얼마전 풋배추살때에 사다가 삶아놓은 우거지를 꺼내어 된장에 무쳐서는 된장 시래기국도 끓여놓고 지난번 한국여행때 선물로 받아온 마른김을 꺼내어 참기름을 하나하나 발라가며 소금을 뿌려서 구워놓고 무엇을 해야하지? 라면서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시계를보니 모이기로 한시간이 가까워져 샤워를 해야할 시간이라 샤워를 20분이나 하고 평소에는길어야 5분인데….

20분동안 샴푸하고 린스하고 비누칠하고 비누칠하고 또헹구고 헹구고 어떻하든 시간을 벌어보려고( 거기에 가기 싫어서…)

그분이 이땅을 떠나는길에 내가 가냐구?

스스로 물어보면서 안가면 안되나? 혼자서 물어보고 다시 대답을 하고 그래도 가야지!

하여간 그곳이 가는것이 두렵기도하고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 슬퍼서…)

하여간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붙잡으며 안가려고 버텼지만 그곳엘 가야했다. 평소엔 집에서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장소엘 40분을 걸려서 도착했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