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안만난대요

아는 분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레지나 씨, 저 시간좀 내 줄래요? 꼭 좀 전화부탁합니다.” 전화기에는 멧세지가 몇번이나 저장 되어 있었다.
시간을 보니 밤 10시가 되어간다. 그래서 잠시 망설였다. 지금 전화해도 될까?
그런데 몇번씩 녹음을 해둔것을 보니 늦어도 전화를 해주는것이 좋을듯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마침 00분이 전화를 받는다. 씨애틀 다운타운에 젊은 청년몇이 그룹으로 모여있는데 자기가 봉사하는 단체에서
밥을 대접해주러 갔다가 한국 청년을 만났단다. 전화를 거신 분이 집안 일로 다른주로 가야하는데
얼마전 그곳를 방문을 하면서 청년하고 긴얘기는 하질 못했지만 꼭 한국사람들이 도움을 주어야 할것 같다며
내게 자기가 만났던 청년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청년은 다른주에서 이곳 씨애틀에 온지는 며칠되지 않았는데
지금 잠잘곳이 없어서 다운타운 임시숙소에 머무르고 있단다. 그 청년을 그곳에 두고와서 집으로 돌아왔던
전화하신 분이 마음이 불편하시단다.
그래! 맞다, 임시숙소들이 좋은 환경은 분명히 아니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추위는 피할수 있지만 거의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갈곳이 없어서 머무르는 장소이기 때문에 여러문제를 가진 청소년들이 다모여있다.
어쩌면 좋지않은 일로 바깥 세상에서 헤메이는 젊은 청년들이 모이기도 했을것이고 부모하고의
불화로 뛰쳐나온 청소년들도 있을것이고 마약이나 약물중독에 중독되어서 헤메이고 있는 청소년들이 함께 있기도 한다. 하여간 00분이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레지나씨 꼭 만나주세요? 부탁을 하고 씨애틀을 떠나셨다.
00부부는 참으로 착한 분들이다. 남편은 미국분이신데 한국적인 것을 참으로 좋아하고
한국사람의 활동에는 직접 참여하기도하고 또한 여러 방법으로 후원도 해주시는 분이다.
아내가 이쁘면 처가의 말뚝에도 절을 한다더니 이분의 남편은 정말 그런것같다. 아내를 사랑하는모습이 그냥 보인다.
이 부부의 간곡한 부탁에 적어준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시간을 만들어 전화를 돌렸다.
벨이 울린지 한참만에 영어로 말하는 청년이 대답을 한다. 그래서 일단 내 소개를 하고서는 내가 아는 부부가
청년의 전화번호를 주어서 전화를 거는 것이라 설명을 하면서 내사무실의 위치를 가르쳐 주고는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부탁을 하니 지금 주머니에 차비가 없어서 올수가 없단다. 그러면 함께 있는 친구들의 차가 있다 하니
그 친구한테 내사무실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하라고 얘기를 해보라하니 함께 씨애틀에 온 친구들이 지금 발라드에
있는 부둣가에서 하루 일당을 받으며 웰딩을 하러갔기에 차가 없단다.
그러면 너는 어디에 머무르냐고 질문을 하니 청년의 숙소는 다운타운의 임시 숙소인데 저녁 8시에 들어가서
아침 5시면 나가라 하니까, 아침엔 아직 오픈하지 않은 남의집 가게 처마 밑에서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린 다음
날이 밝으면, 그리고 관공서가 문을 열 시간 아침 9시에 다운타운의 도서관에 들어가서 일자리를 찾을때까지 있는단다. 마침 도서관에서는 컴퓨터도 할수있고 쉴수가 있어서 지내는 것은 별로 힘이들지 않는단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식사는 어디에서 해결을 하고 있느냐고? 식사는9가와 체리에 있는 무료 급식소에 가면
식사를 주기 때문에 별 염려가 되지 않는단다. 그러면서 자기를 아빠가 안만난대요
상담을 통해 보는 사람 사는 이야기 만나러 와 줄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난 청년에게 내시간 스케쥴을 살펴보고 다시 연락을 하마! 라고 한후 일이 바빠서 며칠 동안을 전화도 걸지
못했고 찾아가 볼수도 없었다. 그주엔 일이 있어서 오레곤주에 갔다와야만 했기에….
오레곤을 다녀오고 난 다음날에 그청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청년의 대답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듯 했다.
아무래도 내가 며칠동안 연락을 못한것 때문에 실망을 한 듯하다.
그래서 일을 마치자마자 청년이 있는곳으로 찾아갔다. 그리고는 내가 출장을 갔다와서 그랬다고 설명을 하니
청년이 못미더워 하는 눈치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청년을 바라보니
마음이 애처롭다. 아무래도 먹는것과 자는것이 불편해서인지 몸이 지쳐보인다.
그 청년을 가까운 음식점으로 데리고가서 먹고싶은것을 시키라고 하니 배가 고프지 않단다.
무조건 괜찮단다. 그래서 네가 먹지않으면 나도 식사를 할수없다고 하니 청년은 그럼 자기가 식사를 함께 해준다면서
주문을 한다. (자존심이 참 세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청년은 배고프지 않다는 얘기완 달리 정신없이 식사를하고 있었다.
난 음식이 부족하다며 중얼거리다가 한가지 음식을 더시킨후 청년쪽으로 밀어주니 청년은 며칠을 굶었는지
허겁지겁 음식을 다 먹고서는 아직도 나를 살펴보면서 경계태세를 늧추지 않고 나의 눈을 가만히 쳐다본다.
청년의 눈은 이여자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는 중인것 같다. 난 청년에게 무엇이라도 도와 주고 싶은데
어떻게 도와줄까? 물으니 청년은 한참을 아무말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자기는 000주에서 이곳으로 새로
살아보려고 왔고 어릴때 미국인 아버지께 입양이 되었었는데 한국에 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아버지를
찾으려면 자기가 살던 그곳보다는 씨애틀이 더 큰도시라 아버지 찾는것이 더 쉬울것 같아서 씨애틀에 온것인데
갖고있던 돈은 변호사에게 다주고 기다린지가 세달째인데 그 변호사는지금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고
수중에는 돈도 하나도 없단다. 그래서 그럼 돈은 일전도 필요없고 내가 도와줄테니 우선 아버지 찾는일보다
먼저 숙소를 찾는것이 더 필요한듯 같으니 내가 소개해 주는 곳으로 숙소를 정하겠느냐고 물어보니
청년은 잠시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생각을 해보더니 자기 친구들을 두고 혼자만 좋은곳으로 찾아갈수가 없단다.
청년하고 몇번의 만남을 가진후 청년은 자기 양부모님에게서 받은 한국에 살고계신 아버지의 집주소를 주었다.
청년의 아버지는 000에 살고 있는 분으로 그곳에서 수퍼마켓을 하셨고 자기의 기억으로는 집 뒷쪽으로는
철로가 있었단다. 청년의 아버지의 주소를 받아들고 한국에 도와주는 단체 몇군데에다 연락을 하고는
또한 이곳 영사관에도 부탁을 한후 얼마후 드디어 청년의 아버지의 거주지를 찿아 내었다.
난 너무 기뻐서 청년에게 알려줄려고 하다가 우선 청년의 아버지가 청년을 만나려고 하는지 먼저 물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밤 늦은 시각 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에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벨이 몇번 울리고 나서 굵직한 목소리의 남자분이 전화를받는다.
난 전화를 받는 분의 성함을 확인한 후 청년이 아버지를 찿는다는 얘기를 하니 청년의 아버지는 청년에 대해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묻는다. 난 청년이 대답을 해야할것 같기에 청년의 아버지에게 내일 전화를 다시 드리겠다고 하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침 일찌기 출근하기 전 청년이 머무는 곳으로 찾아가 청년을 우리 사무실로 데리고와
아버지와 연결시켜 주면서 통역을 해주었다. 그런데 17년만의 아들과 아버지의 통화는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를 도와주어서 학교도 가고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수 있으며 미래에도 함께 살고싶은 계획인데 아버지는 그동안 사업에 많은 실패를 한 후여서 지금 현재는 아들을 만나보고 싶지않다는 입장이셨다. 잠시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아들은 기대에 찬 얼굴이었는데… 난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사실대로 아들에게 아버지의 입장을 설명을 해주고 지금은 아버지가 청년을 만날수 없다고하니
청년의 얼굴표정이 절망스런 얼굴이 되어갔다.
아! 어떻게 해야하지? 아버지를 찾아서 너무 기뻤는데 이건 어떻게 해야하지? 아버지 입장은 새로운 가족들도 있고
또 경제적인 입장도 곤란하니 현재는 않보았으면 한단다. 그래서 아들의 얘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부탁을 해보았다.
돈하고 관계없이 이청년을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라고 저편 한국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잠시 생각을 해보시더니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하시면서 내일다시 통화 하자신다.
난 청년에게 아버지가 하루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청년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다.
다음날 청년과 아버지의 통화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내 가슴은 오히려 청년보다도 더 설레이면서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내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했다.
00님 도와주세요? 청년과 아버지와의 통화를 도우면서 난 너무 가슴이 아파서 다시는 이런 상황에 관여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만나고 싶고 만날수가 있다면 통역을 도와주는 나도 기쁠텐데,
아버지 입장에서 아들을 않보기로 결정을했다는 얘기를 기대하는 아들에게 전해야 하는 나는 너무 불편하고 슬펐다.
아들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간다. 그리고는 한참을 아무말없이 있다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쓰며 얘기를 한다.
That’s OK, I never had a father.
괜찮아!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는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