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이 물건으로 이어진……

2주간의 예정으로 한국에 와서 매일 매일 수원으로, 전주로, 대구로, 부산으로… 다니다 보니 너무 바빠서 정말 시내를 구경해 볼 시간 조차 없었다. 모임을 마치고 난후, 미국에서의 학생들의 생활과 부모와의 관계와 한국 학생들과의 부모와의 관계등에 대해서 작은 토론회까지 끝나면 밤이 이슥해서야 숙소에 들어오게되곤 하였다.

우리가 사는 씨애틀은 다운타운 지역을 제외하고는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거의가 다 집으로 들어가고 길가에는 웬만한 비지니스외에는 문을 닫거나 하여서 거리가 한산한데, 이곳 한국의 도시의 밤 거리는 불빛이 찬란하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이들의 행렬이 밤새  이어졌다. 어디를 잠깐가려고 생각하다가도 내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밀려다니는것이 불편해서, 그리고 잠깐 잠깐 시간을 내는것도 쉽지않은 일이어서 아예 모임외의 외출은 자제를하고 모임을 마치고는 숙소로 돌아와 그 다음날 강의에 필요한 준비를 하느라 한국의 도시 구경을 할 틈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것은 이번 방문길에는 씨애틀 한인회의 모국방문단에 등록을해서 그동안 돌아보지 못한 대한민국의 산천을 둘러볼수 있었다. 한인회의 모국방문단 일정은6박7일간의 일정이 었는데 처음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국내선을타고 제주로 향하였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여서 너무나 즐겁게 이야기 하면서, 그리고 마침 한 후배가 준비해온 맛사지 팩 덕분에 우리 세명은 비행기 안에서의 건조함 때문에 얼굴이 드라이 되는것을 조금이나마 막을수가 있었다. 후배는 아주 고운 얼굴과 좋은 피부를 가졌는데 비행기 여행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하는 준비성에 우리는 감탄을 하였다. 그것도 자기 것만 아니라 우리들 것까지도….. 덕분에 우리셋은 촉촉한 얼굴을 우아하게 유지할수 있었다. 씨애틀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서울에 도착하니 저녁 6시경 이었다. 우리는 우리 일행 말고도 함께 조인 할 분들의 일행이 한국으로 오는중이어서 다른 볼일 때문에 미리 와있던 우리 일행은 그분들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데 공항에서 만난 키가 훌쩍 크고 민첩해 보이는 가이드인 00씨가 하는 말이 다음편으로 오는 분들의 도착이 늦어지니 우리7명이 먼저 제주로 가야 한다며 제주행 비행기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잠깐 졸다가 잠을 깨고보니 금새 제주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빌린버스에  탑승하기 전 함께 동행해야 할 사람들을 기다리느라고 제주공항에서 늦은저녁으로 설렁탕을 시켜서 먹고서는(맛이 없었다!) 잠시 씨애틀 공항에서 파는 우동 생각이 났다. 나는 그래도 여행의 기회가 많은 편이라 공항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느라고 씨애틀 공항 안에서 우동집을 이용해 우동을 시켜먹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음식을하면서 씨애틀공항에서 장사를 할수있을까? 라고 놀라움 반 걱정 반 했었다. 다 풀어진 마른국수 삶아놓은것을 대충 만들어놓은 간장국물에 넣고서는 거의 $10.00여불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음식이 가치가 있다면 비싸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우동은 음식의 가치가 전혀 없었었다. 국수는 너무 불어버려서 젓가락으로 집으려면 끊어져버려 집을수도 없었고 국물은 맹물에 간장을 넣고 만들었는지 우동국물의 시원한 맛 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난 우동을 시켜먹으면서 “이건 아니지!”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상했었다. 내가 돈을 내고 산 음식에 대한 배신감도 싫었지만 솔직히 이런 음식을 공항 안에서 자신있게 상호를 걸고 팔수있는 주인장의 미래가 염려스러웠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했다. “어때, 이 이야기를 해? 말아?” 결국 나는 비행기 스케쥴 때문에 그냥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는 두번째 이집 우동의 맛을 보게 된것은 캘리포니아 웍샵에 가면서 비행기 시간이 좀 남아있는데 햄버거를 먹기엔 속이 부담스러워 그 짜증나는 우동집을 다시 들렀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아닐꺼야! 아마도 지난번 내가 우동을 사먹은 날은 국수가 너무 오래되었었겠지!” 라며 스스로 생각을 하고 발걸음에 기대를 안고 줄을 서서( 참, 우동맛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아니면 사람들이 선택의 초이스가 없었던지!)하여간 난 지난번 사기 당한것 같은 마음을 스스로 안정시키며, 다시한번 츄라이 해보기로 했다.

긴줄을 기다려 서비스 하는 분이 내 순서가 되어 우동국수를 그릇에 넣기위해 집게로 집는데 우동 국수자락이 집어지지도 않는것이 웬지 불안했지만 그래도 지난번 하고는 다르겠지! 라는 마음을 가지며 자리를 잡고 우동을 맛 본 순간 난 분명한 배신감에 우동을 입에 대지도 않고 우동 사발을 들고 다시 ㅎ우동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또 다시 긴줄을 기다려(저 사람들은 정말 이 가짜 우동맛을 알고 먹으려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그냥 츄라이 해보려는 사람들일까?) 궁금했지만 시계를 보니 내가 이것저것 신경쓰고 참견할 시간이 아닌 듯 해서 내 할일만 하기로 하고 줄을 기다려 내 순서가 되자마자 우동그릇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빠른말로 설명을 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Hello, I love to eat 우동all the time. I ate  your 우동 last time, I was very disappointed. It was awful, but I left without telling you, bz I had go in hurry, but this time I need to talk to your manager or owner about your food.”

“여보세요. 나는 지난번 여행때에 당신가게에서 우동을 시켜먹으며 우동의 맛과 질에 무척이나 실망을 하여서 화가 났지만 바쁜스케쥴이라 그냥 떠났는데 오늘 내가 다시 우동을 시켜 본것은 다시한번 아니 지난번은 실수였겠지 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는데 오늘은 너에게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 다시 우동 그릇을 들고 왔노라.” 라고 얘기를 진심으로 하는데 종업원인 듯한 두 여인은 그냥 알았다며 자기네는 주인이 갔다주는대로 판것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단다. 그리고 우동값도 돌려줄수 없는것은 이미 계산이 들어갔기 때문이란다. 난 이렇게 맛과 질이 떨어지는 음식을 씨애틀 공항안에서 자신있게 팔고있는 이집이 안타까워서 뒤로 물러나서는 내가 갖고있던 편지지 한장에 장문의 글을 우동집 주인장에게 남겨 놓았다.

“난 당신이 어느나라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동의 맛은 압니다. 우동의 국수는 이런 국수가 분명히 아닙니다. 우동의 맛이 어느 정도만 되었어도 나도 바쁜 사람인데 이런글을 남겨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당시의 가게에서 파는 우동은 절대로 아니라서 꼭주인장께서 씨애틀의 괜찮은 우동집 (내가 명단도 적어주었다.) 여기 우동집을 가보시고 음식을 하신다면 당신은 모든 여행객들에게 기억에 남는 우동집이 될것이며 당신은 멀지않은 시간에 부자가 될 것입니다.

, 부탁입니다. 실행해 주십시요? 라고… 그리고는 그 편지를 주인장에게 주라고 전해주고는 그자리를 떠났었다.

물론, 그다음 기회는 없었다. 이번에 돌아가면서 다시한번 맛을 보아야지!

! 나도 어지간하게 피곤하게 산다고 내친구들이 말한다. 별걸 신경 다 쓴다고…….  

하여간  그래도 제주공항의 설렁탕은 먹을만은 했다. 제주에서의 아침은 환상이었다. 우리 일행이 머문 호텔은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별 다섯개의 수준인 호텔로 아침식사는 우리 일행 모두를 행복의 장으로 이끄는 시작이었다 6박7일의 한인회의 모국방문단의 여행은 재미있고 즐겁고 유쾌한 여행이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는 가벼운 차림으로 호텔에서 가까운 시장으로 향했다. 며칠전부터 지켜보던, 한자리에 있던 노점상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위해서 였다. 이날도 할머니는 자리를 펴고 양은 그릇에 서너개의 당근, 감자,  두릅, 그리고 아직 익지않아서 시퍼런 토마토를 올려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내 발걸음 인기척에 번쩍 눈을 뜨시더니 “아이구, 샥시 무엇을 살렬구??” 라며 물으셨다.

 

난 할머니에게 “마지막 그릇에 담아있는 당근, 두릅, 담자, 시금치등을 다 주세요!” 라고 말하니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왜, 이건 다 사냐?” 라고 물으시면서도 할머님의 표정은 아주 신이나셨다. 할머님은 그릇에 있던 것들을 다 담으시더니 뒷쪽을 부시럭 거리시면서 당신이 잡수시려고 남겨 두셨다던 조금은 시들한 감자들을 모두다 내가 산 봉투에 넣어주시더니 한 말씀하셨다. 할머님은 물건을 다 파신것이 신이나셨는지 내가 묻지도않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자기는 손자하고 함께 사시는데 손자를7살부터 키우셔서 지금손자가 23살인데 군대를 다녀온후 요리대학에 다니는데 나중엔 일본 음식점을 하려고 한다며 할머님은 손자가 졸업을 할때 쯤이면 손자에게 조그마한 가게라도 하나 해주고 싶은데 그것이 될른지 모르겠다면서 물건을 다팔고 일찍집으로(밤9시인데) 가게된 것을 너무 기뻐하셨다.

난 짐을 정리하는 할머니하고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할머니에게 “할머님, 제가 국수 한그릇 대접하고 싶은데 될까요?” 하고 여쭈어 보았더니, 할머님은 나를 한번 쳐다보시더니 나를 따라 일어서셨다. 할머니와 난 멸치국수로 맛을 내는 국수집에서 호박과 계란으로 고명을 얹은 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먹으면서 할머니 말씀을 들을수 있었다. 할머님은 아들 하나를 두셨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해서 아들 하나를 두고는 손자00가 5살이 되던 해에 이혼을 하고 아들은 얼마후 간암으로죽고 며느리는 말없이 떠나버린후 지금까지 소식이 없어서 손자를 혼자서 키우시며 사시는데 손자가 착하고 이쁜 짓만 해서 너무 좋으시단다.

할머님은 한참동안 할머님의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고 난 할머님의 속상하고 가슴 아프고 힘든 인생이시지만 그래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시는 인생을 배울수가 있었다.

할머님이 이곳 노점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이곳저곳으로 쫒겨다니면서 장사하시던 이야기, 손자가 12살때 학교 친구들에게 고아라고 놀림받고 힘들어 했던 일들, 등등 을 말씀을 해주시면서 주머니의 지갑에서 손자의 사진을 꺼내어 보여주셨다.

 

나는 할머님과 함께 허름한 시장통의 밥집이지만 맛있는 멸치국수를 함께 나누면서 또 다른 인생에 대해서 배울수 있었다.

오늘의 떨이물건이 이어진 인연으로….

 

그런데, 난 지금 여행 중인데 오늘 할머님에게 산 당근, 감자, 두릎, 명이나물등을 다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