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Luck

밤11시가 넘어0씨의 전화가 왔다.

나도 평소 같으면 다음날 출근을 하기위해 이미 잠을자고 있을시간 이었지만 며칠전 내전화에 메세지를 남겨놓은 0씨의 술에 취한듯한 이야기에 계속 신경이 쓰여서 0씨 전화에다 메세지를 남겨놓았었다.

“무슨일인지 모르지만 궁금해서 그러니 밤이 늦어도 전화를 해줄래요?”

0씨는 “선생님 주무시는데 미안해요. 그런데 저! 정말 견딜수가 없어요. 이세상 사는것이 왜 이렇게 어려워요. 선생님 저하고 조금만 얘기를 해요. 저, 지금 너무 괴로워서 죽을것만 같아요…..”

가만히 0씨의 전화 목소리를 들어보니 술에 취한듯한 목소리이다.

그래서 지금 술을 마신듯하니 술깬 다음에 맑은 정신으로 전화 하면 그때 다시 얘기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으려는데 “선생님, 그럼 저 내일 쉬는날 이예요. 내일 만나주실래요?”

쇼어라인 커뮤니티쎈터에서 노숙자들을 카운셀링하는 카운셀러들을 상대로 워크샵이 있어서 참석을 하고 약속장소인 000레스토랑으로 가려는데 차가 한없이 밀려서 0씨와 약속한시간내로 갈수가 있을지 염려가 되었다.

차가 막혀서 꿈짝을 않하는것을 보니 아마도 어떤 사고가 난듯하다. 조금있으려니 메디칼차가 급하게 달려나간다.

곧 이어서 폴리스차도 달려간후 한참을 기다리니 이미 약속시간은 지나버렸다. 미리 전화를 하여서 상황 설명을 하길 잘했다 싶다.

약속시간보다 40여분이나 지나서 약속된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0씨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는다.

0씨의 얼굴을 보니 까맣게 타들어간 모습에다 얼굴이 수척해보인다.

얼마나 상심을하고 힘이들게 지내왔는지 말을안해도 알수있을것 같다.

0 씨는 몇년전 재혼을 하여 미국엘 왔다.

0씨는 한국에서 이것저것 안해본일이 없었다. 파출부도 해보고 남의집 옷가게에서 점원일도해보고 김밥집에서 김밥도 말아보고 남대문시장 신발가게에서 신발도 팔아보았지만 혼자번 돈으로는 두아이들 하고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을 나온사람인데 집안에서 살림만 살던 0씨가 남편이 신용불량자가 된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후 혼자서 할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은 어느곳에 있다고 소문만 들릴뿐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 어듸에도 남편은 없었다. 남편을 찾아다니는것도 지쳐버렸고 또 그럴시간도 없었다.

아들아이 둘이서 엄마만 바라보고 있기때문에0씨는 무엇이라도 해야했다.

이것 저것 안해본일 없었다. 큰아이가 9살이 되면서부터 두살 어린동생을 큰아이가 방과후 챙기고 보살펴주어야 했고 염려는되었지만 어쩔도리가 없었다. 큰아이가 차분하고 심성이 고와서 0씨는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밤늦도록 남의집 가게에서 일하는것이 힘들기는했어도 아이들을 먹일수 있는것이 감사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나서 직장으로 출근을하면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것은 밤이 으슥해서였다.

김밥집에서 김밥을 싸는일을 열심히 하던 어느날 시장안에서 달라를 바꾸는 장사를 하던 할머니 한분이 0씨에게 미국000에 자기 조카가 살고 있는데 부인이 죽고 혼자 산지가 꽤오래 되었는데 나이는 들었지만 그래도 젊어보이니 결혼해서 살면서 영주권 받은후에 아이들 초청을 하면 아이들도 미국에서 교육받을수 있으니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달라장사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 0씨는 고민을 하였다. 아이들 아빠는 벌써 몇년째 소식이 없어서 실종신고를 한 후였다.

0씨는 9살인 큰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엄마가 미국에 사는 재미 교포아저씨하고 재혼을하려는데 그리고 엄마가 너희들을 데려가서 미국에서 공부를 시키려는데 어찌 생각하느냐고…

신중한 성격의 큰아들은 아무말없이 0씨를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흘리며 말없이 있었단다.

달라장사 아주머니가 말을 꺼낸지 4달째 되던 어느날 0씨는 결심을하고 군산에있는 부모님께 두아들을 맡기고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재미교포 0씨를 찾아 장시간의 비행기를타고000에 도착을 하였다.

시00에 도착해서 그동안 자주 전화와 사진으로 연락을 했던 새 남편을 보니 실물은 사진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보였다.공항에 나온다고 깨끗한 옷으로 입고 단장을 한모습이었지만 언뜻 얼굴과 손을 보니 고생을 많이 한듯한 모습이다.

달라 할머니의 말로는0씨 보다는15년이 위라고 했는데 실물은 이십년도 더 넘게 보였다.

0씨는 새로 만난 남편과 함께 차를타고 남편이 살고 있는집에 도착해보니 남편집은 아래위층으로 되어진 집이었다.

남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서니 남편은 0씨를 데리고 일층이 아닌 반지하인 아래층으로 0씨를 데리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남편의 말로는 집세를 많이 받으려고 혼자서 살고 있는 자기가 반지하를 쓰고 일층은 세를 주었단다.

남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잠을 청해보았지만0씨는 무엇인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0씨가 시000에 도착한지 한달쯤 되면서0씨는 어느정도 집주위에 익숙해지면서0씨는 마음이 더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남편인 0씨는 0씨가 생각 했던 나이가 많아서 좀더 이해심이 많고 여유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는 전혀 아니었다. 또한 남편은 자신의 아이들과는 만나지도 않을려고 하고 담을 쌓고 지내며 돈이라면 벌벌떠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젊어서는 집수리를하면서 돈을 벌었다는데 지금은 나이도 많고 힘이 들어서 간단한 페인트일들을 하면서 돈을 벌고 그것도 시00 날씨가 겨울엔 아예 일거리가 없어서 일년의 반은 그런대로 일을해서 수입이 있지만 반은 아예 집안에만 있으면서 한국 드라마만 보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었다. 0씨가 기대했던 재미교포 이미지(?)의 남편이 전혀 아니었다.

남편은 미국에서의 생활을 30여년을 했다는데 영어가 되지 않았다. 0씨가 온지 얼마안되어 임시영주권을 신청하러 갈때에도 남편은 불편하다며 가기싫다는 남편의 둘째아들에게 강제로 부탁하여서 0씨와 함께 동행을 하게 했다.

남편의 아들은 생각보다도 0씨에게 호의적이고 오히려 측은히 바라보며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잘살기를 바란다며 일이 마치고 떠나면서 0씨를 바라보며 영어로good luck!이라면서 떠났다. 0씨는 그래도 의붓엄마인 자기를 도와주고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떠나는 남편의 둘째아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6번째 결혼을 한 아빠에게 아들은 아예 기대를 하고 있지도 않으며 순해보이는0씨를 보면서 자기아빠가 이번엔 제대로 살아갈지? 라는 얼굴로 0씨를 보면서 GOOD LUCK!이라고 했던것이다.

남편은 겨우내내 집안에만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방송되는 연속극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생활비는 아예 줄생각도 않하고 남편이 사다놓은 음식안에서 해결하라고 했지만 음식은 턱없이 모자라고 돈을 쓸수없는 불편함에 0씨와 남편은 자주 싸움을 했다. 0씨가 000에온지 11개월이 다될 즈음 0씨는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남편이 000에서는 유명한 다결혼소유자 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0씨하고 결혼하기전에 이미 6번의 결혼을 하였던 것이었다. 이사실을 알고 남편에게 따졌더니 남편은 텔리비젼드라마에서 눈을 떼지못하고 “ 네가 나에게 결혼 몇번했냐고 물어보았냐?” 고 오히려 되물으며 내가 너하고 지금 사는것이 중요하지 내가 결혼을 몇번을 했든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 면서 오히려 0씨를 이상한 여자취급을 하는것이란다.

0씨는 남편의 행동과 살아가는모습을 보면서 “그래, 영주권 나올때만 기다리자!

영주권을 받고 그후에 아이들을 불러와서 어떤 결정을 해야지!” 라고생각을 하였단다.

0씨는 드라마만 파는 남편이 하도 지겨워서 함께 무엇이라도 해보자고 하다가 남편이 아예 들은체도 안하자 혼자서 일자리를 찾아 다니다가 한인음식점에서 웨이츄레스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주일이면 6일을 매일 아침 10시에 나가서 밤10시까지 일을 하면 레스토랑에서 주는기본급 과 팁을 합치면 $3000.00 가량되었다. 0씨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님께 매달 $1000,00 을 보내고는 반찬값을 제외한 돈을 모두 저금 하였다.

일년이 지나고 삼년째 되는 어느날 마침내 아이들을 데리고 올수있는길이 생겨서 아이들은 여행비자로 0씨가 있는000로 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처음에 약속한 말과는달리 (처음에는 내자식들이 다컸으니 네자식들이 오면 내자식처럼 잘키워보자구 약속했었다) 0씨아이들은 새아버지의 눈총에 기를 펴지못하고 집안에 있으려고 하지않으며 방황을 하게되고 그착한 큰아들은 학교를 빠지며 밖에서만 맴돌고 둘째아들은 주눅이 들어 늘 상심하고 눈치만 보는아이가 되었단다. 그래도0씨는 아이들을 잘키워보려면 돈이 있어야한다고 생각이들었고 남편은 아예 0씨에게 생활을 맡기고 본인은 집안에서 드라마팬이 되어 아예 문밖출입조차 하지않고 매일 샤워도 하지않고 친구교제도 없는 외톨이였다. 남편은 몇번에 걸친 이혼의 상처로 0씨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믿지를 않으면서 언젠가는너도 내곁을 떠날꺼라며 항상 못믿어했다.

0씨가 술에 잔뜩취해서 나에게 밤늦게 전화를 건 그날은 0씨의 큰아들이 갱멤버들과 함께 싸움에 가담되어 중형을 받고 감옥으로 가게된 날이었다.

잘살아보려고, 잘길러 보려고 데리고 왔던 두아들은 이곳 000에서도 유명한 동양 갱멤버가되어서 일을 저지르고 감옥엘 가게된것이다. 나를 마주한 0씨는 눈물부터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혼자서 믿고살아오는 재미교포 남편(?)에게 실망이되고 또 어렵게 데리고 온아이들이 엉망이 되어가는상황을 어떻게 잡아볼수가 없어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지쳐가는것이었다.

0씨는 식당 주위사람들의 힐긋힐긋 쳐다보는 것과 상관없이 엉엉 우는것이었다.

나는 눈물을 펑펑흘리는 0씨를 그냥 바라보며 내가슴도 에이는 아픔을 느끼며 눈물이 나오는것을 겨우 겨우 참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