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이쁜 종간나새끼!


가끔씩 뵐때마다 유익한 말씀으로 인생의 교훈을 주시는 어르신이 얼마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국의 남편들은 너무 바쁜 생활을 하고 먹는 문화가 많이 바뀌다보니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한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것이 꽤나 드문일이 되었단다.

아내들은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의 입에 맞는 음식들을 장만해서 먹고, 남편들은 일을 마치고 술자리를 자주 대 하다보니 귀가가 늦어지면서 술자리에서 대충 저녁을 때우고 집에는 늦게 들어가게 되니까, 이미 잠들어버린 아이들하고 또는 가족들하고 함께 식사하는일이 많지 않단다.

또 술에 취한상태로 밤늦게 들어가서 잠을 자게되니, 아침엔 밥맛이 없어 눈뜨기가 바쁘게 직장으로 달려가다보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아빠가 낯설어 어쩌다 휴일날 아빠를 보게되면 “아저씨는 누구세요?”라고( 물론 이야기이겠지만) 묻는단다.

한국사회가 그만큼 바쁜것인지? 아니면 삶의 모습이 바뀌어가는것인지?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아빠는 일하는사람 그리고 엄마는 자기들을 돌보아주는 사람으로 기억하는것은 아닐까? 염려 되기도한다.

잘 아는 친지의 사위가 대기업에 다니는데 너무 바쁘고, 출장으로 여기저기 다니다보니까 아내가 아기를 낳았는데도 제대로 아기 얼굴도 못보고, 아이하고 사귈시간이 없었단다. 어쩌다가 아이하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이가 입을 삐죽대며 자지러지게 울어댄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어릴때 우리집에는 할머님이 함께 계셨다.

우리집은 식사때면 할머님하고 아버지하고 함께 상을 받으셔서 식사를 하시고 엄마, 언니,오빠 그리고 나는 따로 상을 받아서 식사를했다. 물론 할머님의 밥상에는 우리상에는 조금 밖에 없는 굴비구이랑 할머님이 좋아하시는 계란찜등이 넉넉하게 있어서 우리형제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우린 할머님 앞에서는 절대로 불만을 얘기할수 없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할머님은 막내손녀인 나를 가끔씩 할머니 상으로 불러 앉으라고 하신후 가시를발라낸 굴비를 밥 위에다 얹어 주기도하고 보라빛 나는 가지무침도 숫가락으로 끊으셔서 내 밥위에 올려주셨었다. 나는 할머님의 보호아래 이밥상 저밥상으로 옮겨 다니며 맛있는 반찬을 골라먹는재미로 신이났었다.

난 가끔씩 나의 얄미운 행동에 심통난 오빠에게 골탕을 먹곤했다. 오빠는 곤소금 한숟가락을 설탕 한숟가락이라고 속여서 내 입을 쩌억 벌리게 해서 목젖까지 곤소금 한숟가락을 집어넣어서 나는 목이 막혀서 컥컥대며 눈물을 쏘옥빼면서 눈물 콧물을 흘렸었다.

오빠는 나에게 곤소금 한숟가락 투여하고는 저멀리로 도망을 가곤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100살을 한달 앞두시고 돌아가신 후론 우리 아버지는 얼마동안 혼자서 상을 받으셔서 식사를 하시더니 얼마후 우리와 함께 한상에 둘러앉아 식사를하셨다.

우리가족은 식사때면 전날 있었던 일들이나 학교에서 생긴일들을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지금은 천국에 있는우리 막내오빠가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릴 웃겨서 밥먹는 상은 항상유쾌했었다.

함께 식사를하시던 아버지가 식사도중에 방귀라도 뀌시면 우리 막내오빠는 아버지의 방귀를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다들 밥먹는데 열심인데 아버지의 방귀소리가 나면 막내오빠는 얼른 “아버지 시원하시지요?”라고 질문을한다 .

아버지가 아무 말씀안하시고 “야 00야 그냥 밥먹어라” 라고 하시면 막내오빠는또다시 “ 아버지 시원하시지요?” 오빠의 집요한 재촉에 아버지는

“허참 별놈 다보네” 하시면서 “그래 시원하다 됐냐?” 라고 말씀하시면 오빠는 얼른 “그런데 아버지 엊저녁에 무슨음식을 드셨는지 궁금하옵니다?” 라고 또다시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때쯤 되면 우리 오빠와 언니들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밥먹는데 신경을 집중시키기가 쉽지않다.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않으시고 식사에 열중이시지만 오빠의 장난기 많은 질문을 피해가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시고는 “야, 그놈 참 질기네 그래, 내가 엊저녁에 친구들하고이것저것해서 한잔했다” 라며 대답을 해주신다. 장난기 많은 막내오빠는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그런데 아버님( 평소에는 아버지라고 부르다가) 저는 우리가족의 행복한생활을 위해서 지금 아버님께 문의를드리는겁니다.”

이때쯤이면 우리 형제들은 입안에 있던 밥알이 튀면서 웃음보가 터진다.

우리 형제들의 웃음보에 힘을 얻은 우리 막내오빠는 “ 아버님 앞으로는 미리 선전포고를 해주시고 방귀를 뀌시면 저희들의 삶에 도움이 되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을 한다.

아버지는 “ 아니 이놈은 뭐가 될려고 이렇게 웃기냐?” 라면서 함께 웃음을 터트리셨다.

아버지의 생리적현상 때문에 우리집 밥상은 한바탕 웃음보따리가 터지곤하면서 금새 배가 고파졌다.

요즈음 아버지들이, 남편들이 집에서 식사를잘안하니까는 생긴 유행어가

하루 한끼도 안 먹으면 “ 영식님”

하루 한끼 먹게되면 “한식씨”

하루 집에서 두끼 먹으면 “두식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으면 “삼식이놈”

그리고 세끼 외에 간식까지 챙겨먹으면 “에이! 종간나 새끼”라는 재미있는이야기가 생겼단다.

우리아들이 대학 4년을 마치고 ( 전공을 마치게 되어서 아직 몇과목이 더 남았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할수 있기에 집으로 아주 왔다)

아들은 다른 도시에서 대학교에 다니기때문에 나는 매번 아들이 올 때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해서 일인용백에 넣어 냉동고에 차곡차곡 얼려서 정리해 쿨러에 넣어주면 아들은 다음에 올때까지 한두달 정도 맛있게 식사를 할수 있었다. 사골을 며칠동안 푹 고아서 뽀얀국물이 나오면 양념을 해서 지플락 백에 넣어서 얼려놓고 비빔밥도 갖가지 나물을 양념해서 골고루 일인분씩 지플락 백에 넣어서 얼려두고 좋아하는 장조림도 일인분씩 담아서 얼려두었다가 아들이 학교로 돌아가는 차에는 푸짐하게 담긴 음식을 가지고 떠나게 되면 난 너무 행복했다. 아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에 너무 즐거웠다. 가끔씩 지플락 백 안에다 “ 아들 사랑해요” 라는글도 써서 넣어서 ……

아들이 집에왔기에 그 동안 먹고싶었던 음식을 많이 해주고 싶었다. 아들은 진한 청국장을 아주 좋아한다. 아들은 여기서 낳고 자랐는데 어디서 이 맛을 배운걸까?

아들가 좋아하는 매운깐뿡기(아들은 음식점보다 엄마가 만든것이 훨씬 맛이 있단다. 나는 아들이 맛있다면 “그래 엄마는 음식을 만드는것이 아니라 예술을 만드니까 그렇게 맛있는거야” 라고 말을 하면서 키가6피트가 넘는 아들에게 매달려 꼭 안아본다.

아들이 좋아하는 해물 스파게티, 북유럽 사람들이 잘먹는 소꼬리 치킨 부야, 독일 사람들이 잘먹는 포테토 팬케잌등등….

우리가족은 한국사람들이 전혀없는 지역에서 오랜시간을 살았었다.

주위에는 유럽피안들이 모여사는 전형적인 미국이였다. 나는 이곳에 살면서 독일 친구에게는 소세지 만드는 법을 스웨덴 친구에게는 과자만드는법을 이탈리안 계통의 친구들에게는 해물스파게티나 맛있는 피자 만든법을 배웠었다. 물론 나도 이들에게 잡채, 만두등을 만들어 대접을 하며…….

이때 배워놓은 음식만드는법으로 나는 우리 가족에게 또는이웃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함께 할수 있었다.

아들은 또 나에게 묻는다 .”엄마 내일은 또 뭘해주실꺼지요?”

집에와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아들을 쳐다보며 나는

“에고! 이쁜 종간나새끼” 라고 중얼거리면서 행복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