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떡해

커다란 짐 가방에다가 짐을 하나씩 하나씩 챙기기 시작을 하는데 웬지 형부의 표정이 편해 보이지가 않는다.

그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보고싶었던 한국책들을 사서 읽고, 더러는 그동안 방문했었던 복지쎈타에 기부하고, 내가 일하는데 필요한 책들은 이곳으로 가져오려고 짐을 넣으려니 책무게가 여간이 아니다. 한국에 오면 맛있는 고추가루( 맛있는고춧가루가 있는지? 잘모르겠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한국고춧가룻가 그다지 맵지도 않고 향기가 있다는데?) 도 사고 우리 아들아이가 좋아하는 아주 잔멸치를 좀 사가지고 싶었는데 시간도 별로 없고…( 우리 아들아이는 멸치를 기름에 볶아서 진간장을 살짝 둘러준다음 엿기름으로 달달하게 해주면 너무 좋아했다. 언젠가는 조그만 멸치가 없어서 보기에 큼직한 멸치를 기름에 볶아서 해놓으니까는 엄마! 저 멸치눈들이 나를 째려보는것 같아서 못먹겠어! 라며 큼직한 멸치는 젓가락도 대지 않는것이다.) 아들아이가 좋아하는 아주 작은 멸치를 사오고 싶었는데…

형부는 짐을 싸는 내게로 와” 처제 지금 가면 아주 가는건가?” 하고 묻는다. 나는 형부를 쳐다볼 생각도 하지못하고 짐싸는데 열중이며 건성으로 “아니, 또 와야지요!”

형부는 나의 대답에 좀 더 밝아진 목소리로 “그래! 그럼 언제 또오는데?”

“빠른시간 안에 올께요.”

형부는 짐싸느라고 정신없이 바쁜 내가 눈길도 한번 제대로 못주는데도 내옆에서 계속 말을 건다. 겨우 얼굴을 들고 형부 를 쳐다보니 형부의 눈에 있어야할 안경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형부! 안경 어디있어요?” 하고 물으니 형부는 아무렇치도 않게 “몰라!”

“형부 , 안경 을 어디다 두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형부는 어릴때부터 안경을 썼었다. 안경이 없으면 그나마 불편해져서 더 힘이 들텐데…

나는 짐싸는것을 포기한후 형부의 안경을 찾기 시작했다.

형부는 안경이 없는 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텐데 테리비젼에 나오는 인간 만세 프로그램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형부, 안경 어디다 두었는지 생각좀 해보세요.”

형부는 내가 묻는말에는 관심이없다. 그리고 건성으로 대답을 한다. “몰라!”

“형부, 지난밤에 침대에서 자면서 안경 벗어서 어디에다 두셨지요?”

“응! 머리맡에!”

“머리맡에는 없는데요?”

“응, 그래 몰라!”

“형부, 안경이 없으면 불편해서 안돼요.”

형부는 “괜찮아 !” 라면서 텔리비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화장실에 들어간 형부가 문을 다열어놓고 볼일을 본다. 나는 “형부! 문닫으세요!” 라고 말하니 형부는 “그래!” 라면서 문을 반쯤만 닫는다.

화장실 불도 켜지 않아서 나는 화장실 불을 켜준다. 형부는 볼일을 다보았는지 엉거주춤 밖으로 나온다. “형부, 깨끗이 씻으셨지요?” 나의 질문에 “그럼!”

또 형부에게 안경에 대해서 물어본다.

나와 집에서 도움을 주는 도우미 아주머니는 온집안 구석구석을 다뒤지고 있다. 하다못해 옷장안에 이불속까지도 옷장안에 걸려있는 형부의 옷 안주머니까지 하나씩 하나씩 뒤져보아도, 혹시나 부엌 어디에다 놓아두었나 싶어 키친 서랍들을 다열어보고 하여도 형부의 안경은 어디로 숨었는지!

얼마동안 함께 안경을 찾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싫은 소리를 한다.

“아니! 저양반이 저러니까 사모님이 암이걸렸지. 저렇게 정신이 없는사람 수발하는것이 좀 힘들겠어!” 나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아주머니를 쳐다보면서 혹시라도 형부가 들었을까봐 형부에게 화제를 돌려버렸다. “형부! 안경 못찾으면 저랑 같이 안경점 가서 새로 하나 맞추죠. 뭐!”

형부는 “그래, 그러지뭐!”

형부는 내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떡하니 내 선글라스를 끼고 나온다.

“처제, 여기 안경 찾았어!”

“아니!” 나는 형부의 어이없는 행동에 웃음이 나와서 한바탕 웃었다. 형부도 나의 웃는모습을 보고 따라 웃는다. 도우미 아주머니도 내 썬글라스를 쓰고 나온 형부의 모습을 보며 한바탕 웃어제낀다.

그리고는 곧 이어서 “아니, 저양반은 먹는것 밖에 모르고 저양반이 저러니 어찌 사모님이 암이 안 걸리겠누!” 라며 혀를 찬다. 나는 너무나 맘이 아팠다 . 그래서 아주머니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가능한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주머님, 우리집안의 내력이 암이 쉽게 걸릴수있는 가계입니다. 우리 아버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우리 두오빠들도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어요. 언니가 암인것은 형부탓이 아니예요.” 그리고 내친김에 할말을 다하였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여기로 와서 일하시는것 힘드시지요? 그런데 아주머니 수고해주시는것은 정말로 고마운데 아주머니 지금부터 형부한테 말함부로 하지 마세요. 형부가 치매이긴 해도 말하는투나 뜻은 다 알거든요. 그리고 형부를 비난하거나 꾸중하는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마세요. 부탁입니다.”

“형부가 치매가 오기전에는 건축학교수 였거든요. 이분이 얼마나 훌륭하고 맘씨가 고운 분인줄 아세요? 그리고 형부가 먹는것만 아신다고 비난하시는데 그럼 먹는것도 모르고 식사까지 먹여들여만 한다면 얼마나 더힘드시겠어요. 혼자서 식사라도 하실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이예요? 물론 아주머니 힘드시고 성가신것 압니다. 그래서 아주머니께 제가 용돈 더 드리잖아요. 좀 더 잘 해주시라고요.”

며칠전 일하는아주머니 용돈을 더드렸다. 형부좀 잘 보살펴 드리고 언니가 퇴원하면 잘 돌보아 달라고! 한국에서는 미국병원과 다르게 수술한 환자 옆에 보호자가 함께 있게 되었다. 일하는 아주머니를 언니하고 함께 있게 하려고 했으나 그럼 내가 꼼짝을 할수가 없다. 나도 여러가지 볼일도 있고 한데…..

그래서 언니병실에서는 내가 밤을 함께 지냈다 . 그리고 아침이면 집으로와 형부와 함께 아침 산책도 가고 박물관에도 가고 도서관도가고 연극도 함께 보러 다녔다. 형부의 손목과 내손목에는 아이들 잃어버릴까봐 매고 다니는줄로 서로를 매며,(이많은 사람들중에 형부를 잃어 버릴까봐 염려가 되어서)형부는 광화문거리를 걸으며 신이나 있었다. 한손은 나에게 묶였는데도 뭐가 그리 신이 나신지 얼굴에는 기쁜모습이다. 그러다 줄을 길게해서 내가 저만치 앞서가면 언제인지 모르게 두르고 나왔던 세수수건을 머리에다 둘러쓴채 “처제! 나좀봐?” 지나가던 사람들은 형부와 나와의 이상한모습에 힐끗 힐끗쳐다보지만 나는 별상관이 없이(So What!) 형부와 함께 줄을 매단채로 지하철도타고 박물관도가고 근사한 레스토랑가서 파스타도 먹으며 와인 한잔도 시켜먹었다.

형부는 즐거워했다. 형부가 말한다. “처제! 난 정말 행복해!”

“ 왜요?”

“내가 지금 처제하고 데이트하고 있잖아. 처제가 맛잇는것도 사주고 하니까.”

“그래요, 저도 기뻐요.”

밤이면 언니의 병실로가 언니와 함께 있다가 아침이면 형부와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형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짐을 싸고 있는 내등 뒤에서 형부가 불안한 얼굴로 묻는다. “처제 지금 가면 언제 또와?”

아무 말없이 짐을싸는 내게 형부가 또 묻는다. “처제, 언니 지금 어디있지?”

나는 형부에게 숙제를 내준다 “형부! 잘 생각해봐요? 언니 지금 어디있지요?”

“몰라!” “형부, 생각해봐요!” 형부는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해 보려고 애쓴다. 그리고는 대답을 찾았는지 “ 처제, 언니 지금 병원에 있나?” “그래요, 맞아요! 지금 병원에서 치료중이예요.” “그래, 얼마나 기다려야 돼?”

“응! 며칠후면 집에 올꺼예요.형부 언니 보고싶어요?” “응! 보고싶어.” 40여년을 살아온 부부인데 치매가 걸렸어도 왜 안보고 싶겠는가?

“처제 지금 가면 언제와?” “또 올께요.” 형부는 불안한 모습으로 왔다갔다 하더니 또 묻는다.

“처제 지금 가면 언제또 와?”

“형부, 저하고 다니는것 좋았어요?” 라고 물으니 “응! 좋아!”

얼추 짐을 다정리하고 가방을 닫으려는데 형부가 주저주저 하더니 내게 말한다.

“처제 가면 나 어떡해?”

“처제, 그가방 안에 나 집어넣고 데리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