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베어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뒤척거리며 움직이다가 결국은 잠을 한숨도 못잤다.

이날저녁 우리가족은 함께 저녁식사를하면서 사람이 얼마나 잔인할수있는가?

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이번 한국을 방문하면서 둘러본 모란시장안에 있는 개장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전통시장인 모란시장은 갖가지 농산물들과 해산물들, 그리고 집에서 길러온 닭들이나 오리등을 모아놓고 5일 마다 장이 서는 곳 이였다.

장 한구석에는 커다란 케이지안에 개들이 십여마리가 갇혀있었는데 함께 간 친구들 이야기로는 이개들은 식용으로 길러서 파는것 이라는데 나는이곳을 지나면서 발걸음을 뗄수가 없었다.

우리집은 지금도 강아지 두마리를 기르고 있지만 내가 어릴때 우리집에는 말잘듣는 봉순이라는 커다란개(독일산 쉐퍼드와 똥개의 잡종 )가 있었는데 어찌나 머리가 영리한지 우리 엄마가 장에 가시려면 장바구니를 입에 물고 서서는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는것이다. 엄마가 문을 나서면 자기가 앞장서서 시장으로 가는길을 가곤 했다. 시장에서 엄마가 구입한 가벼운 물건들을 장바구니안에 넣으면 입에다 바구니를 물고, 장사하는 분들이 장바구니를 빼앗으려는시늉을 보이면 혹시라도 빼앗길까봐 입에 문 장바구니를 더욱 세게 물고는 으르렁대며 상인들을 노려보고는 했다.

봉순이와 아버지는 산책을 나가는것을 참으로 좋아했다. 아버지가 운동화를 신는것을 눈치채면 벌써부터 밖에 나가는것을 알고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나도 우리 메어리를 옆에다 데리고 다니면 든든했었다. 메어리는 절대로 내옆을 떠나는일이 없었다. 가끔씩은 줄을 매지 않아도 메어리는 내옆에 꼬옥 붙어서 나하고 함께 다녔었다.

언젠가는 우리집에 도둑이 들려고 했다가 메어리가 도둑의 바짓 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도둑이 바지가 찟긴채로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가버렸다.

오빠가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술에 취해서 장독대에서 쓰러져 잠을 자자 메어리는 오빠가 추운데 얼어죽을까봐 오빠의 목언저리 옷자락을 물고 집안으로 끌고 들어와서는 우리에게 컹컹 짖으며 알려주었다.

메어리는 쥐도 잘 잡았다. 그때 당시에는 동네에 쥐가 많아서 동회에서 쥐를 잡아서 꼬리를 잘라오면 돈을 주었는데 메어리는 용케도 쥐를 잡아다가 죽여서 우리들 발아래에 떨어뜨려 놓고는 했다. 물론 우리집에는 쥐들이 얼씬도 못했다. 메어리때문에 우리들 쥐꼬리 수입도 꽤나 괜찮았었다. 우린 쥐꼬리 갖다주고 벌은돈으로 달고나 도 사먹고 꽈배기도 사서 친구들에게 돌리기도했다.

나는 그때 우리집 개이름이 봉순이란 것이 너무나 마음에 안들어 식구들 하고는 관계 없이 봉순이를 “메어리”라고 불렀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생각해보니 미국에 사는 메어리라는이름의 소유자들에게 얼마나 속상한 이야기인가?

나는 절대로 우리아이들에게 메어리라는 이름은 안할것이라 결심을 했다. 하여간 나는 봉순이대신 메어리라고 불렀다.

메어리는 우리집의 문지기 였다. 오빠들하고 언니,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소리를 메어리는 저만치에서도 알고 우리를 반기면서 뛰어나오곤 하였다.

어느 한여름날 평소와 같이 뛰어나와 나를 반겨야할 우리집 문지기 메어리가 나오질 않아서 단숨에 뛰어가서 집으로 들어가보니 메어리가 앉아 있어야 할자리에 없는것 이었다.

나는 별안간 가슴이 철렁내려 앉으며 울상이되어 메어리를찿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메어리…”

“ 메어리…”

“봉순아…. 봉순아…”

언니와 오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아버지도 집으로 돌아오셔서는 옷도 못갈아입으시고 사라진 봉순이를 찾아 온가족이 동네 곳곳으로 헤메이는데 저만치 뒷산이 있는 인왕산에서 연기가 올라오는것이 보이자 아버지는 오빠와 함께 그곳으로 방향을 돌리시더니 산으로 달려가시는것 이었다. 언니와 나도 아버지와 오빠뒤를쫒아 산기슭 연기나는곳에 도착해보니 우리집 문지기 봉순이는 나무에 꿰어서 매달린채 이빨을 보이면서 이미 불에 그슬려 있고 옆에는 커다란 양은 솥단지에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동네 건달 대여섯명이 술을 한잔 걸쳤는지 얼굴들이 벌겋게 되어서 담배를 물고 있다가는 우리아버지 의 고함소리에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물이 끓는 솥단지를 발로 걷어차버리며 “야! 이눔의 새끼들아!” 라며 분노가 섞인 고함을 지르고 계셨다.

우리 아버지는 발로 걷어찬 솥에서 쏟아지는 뜨거운물이 아버지발에 쏟아지는것도 느끼지 못한 채 옆에있는 장작더미를 집어서는 옆에 도망못간 건달아저씨 등짝을 후려치고 있었다. 건달들은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다들 도망가 버렸다.

우리가족들은 그날밤 다들 눈시울이 벌겋게 될때까지 울었다.

나는 우리 봉순이가 떠난뒤로 몸이 시름시름 아팠다. 봉순이가 우리집에서 산지가 7년이 되어서 가족과도 같기에 우리 모든 식구들은 봉순이의 죽음때문에 모두들 힘이들어 했다.

우리 아버지는 이날 이후로 절대로 개를 안키운다고 하셨다.

함께 식탁에 앉은 딸들은 얼마전 자기들이 읽은 월드뉴스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물론 우리 가족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다.

엄마곰이 자기 아기곰을 꼭껴안아 질식시켜서 죽이고 자기도 머리를 시멘트벽에 부딪쳐 자살한 이야기이다.

중국의 어느도시에 곰을 사육하는곳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곰을 사육하면서 곰의 쓸개를 쇠파이프로 연결하여 곰의 쓸개즙을 정기적으로 뽑아내는것인데 이쓸개즙은 사람의 건강을 위하여 사용된다고한다.(어떤건강?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곰의 쓸개 가까이에 구멍을 뚫어놓고 그구멍을 중심으로 쇠조끼를 곰에게 입히어 쓸개즙을 빼내는 쇠파이프 관을 곰에게 직접 연결시켜 놓았기에 곰의 통증은 말로 할수없이 아파서 쓸개즙을 빼낼때마다 곰들은 woo….. woo….Ze la Ze la라면서 울부짖는단다.

마취도 하지 않고……

이곰이 새끼를 낳았는데 새끼가 어느정도 자라서 사육사가 곰새끼의 쓸개에 구멍을 내고 쓸개를 빼내려는 과정에 새끼곰의 뼈아픈 비명소리를 들은 어미곰이 새끼곰을 사육사 손에서 탈취하여 자기가슴에 꼬옥 껴안더니 숨을 못쉬게 해서 죽이고 어미곰도 시멘트벽에 머리를 찧어내려서 죽어버렸단다.

A teary Mother Bear killed her Baby and Committed suicide Heart breaking story

(위에있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들어가면 이뉴스를 직접 읽어볼수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곰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족은 모두 눈물을 흘리었다. 엄마 곰이 아기곰의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자기가 살아오면서 당하는 고통과 위험이 아기곰에게 닥치는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는 아기곰의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자기가 갇혀있던 우리를 박차고 나가서 아기곰이 있는 우리로 뛰어들어가 사육사가 아기곰에게 시술하는 쓸개즙 뽑아내는 몹쓸 현장에서 아기곰을 빼앗아 자기 품안에서 질식사시키고 자기도 벽에다 머리를 부딪쳐서 죽어버린것이다.

이번에 모란시장에 케이지안에 갇혀있는 개들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내머리에서 사라지질 않고있다.

케이지 안의 개들은 닥쳐올 죽음의 냄새를 미리 알고들 있어서인지 개들은 아무런 표정이없는 이미 죽은 모습이었다. 보통 집안의 개들은 어느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을 하면서 짖거나 달려들거나 하는데 이안에 갇힌 개들은 전혀 미동을 하지않은채 얼굴에는아무런 표정이 없는것이었다.

개들을 바라보는 내마음에서 눈물이 나왔다. “어떻게하지!”

“제내들을 어떻게 해야하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들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떤사람은 꽃보다 아름답고 또 어떤사람은 아닌가?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