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자두 세 알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 같다. 지난해 겨울은 유독히도 긴시간 이었다. 아마도 내겐 너무나 바쁜 일들이 많아서 인지 모르겠다. 바쁘면 시간이 빨리간다는 느낌이 든다는데, 나는 너무 바쁜데도 왜 시간이 더디가는 느낌이었을까? 그건 일은 많고 몸과 마음은 바쁘니 조급한 마음이 들었나보다. 지난 겨울엔 춥고 날씨도 궂은날이 많아서 이대로 봄이 오려나? 하는 고민도 해보았다. 어쩌면 직업상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의 만남이 많다보니 가끔은 나에게도 쉼이 필요 했었나보다.

오늘은 봄맞이를 준비하려고 토요일 마다 만나던 분들의 스케줄을 주중의 저녁 시간으로 바꾼후 금요일 밤늦도록 책도 보고 좋아하는 음악도 실컷 들었다. 요즈음 한국의 음악 프로에서 입상해서 가수가된 유학생 출신의 한동근씨가 출현했던 대회 과정을 유튜브를 통하여 하나씩 하나씩 찿아가며 듣고 또 듣고 하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어쩌면 저리 목소리가 좋을까? 이제 20살 이라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좋아질까? 한동근씨는 간질이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찿아오는 간질로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 했다고 했다. 그래도 행복할 수 있는것은 너무도 좋아하는 노래, 음악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에게 고통이 있어서인지 그의 노래에는 스토리가 있다. 아픔이 느껴지고, 가슴 저린 슬픔이 있고, 재미가 있고 따스한 웃음이 느껴진다. 그의 노래를 틀어놓고 나는 다시 듣고, 또 눈을 감고 듣고 하면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감 ! 이렇게 행복 할수가……

5월에 한국에 갈때는 그의 음반이 나오면 전부 사가지고 와야지! 이 친구가 부른 이글즈에 데스페라도를 듣다 보면 숨을 쉴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이친구의 노래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을 가진다. 이친구가 나에게 준 큰 선물 ,이렇게 훌륭한 목소리가 있다니, 이 친구가 성실하고 훌륭한 가수로써 오래동안 활동 할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 해본다.

매주 토요일 마다 그룹미팅, 가족미팅 등으로 너무 바쁜 시간이었는데 오늘은 아예 작정을 하고 쉬고자 하니 만나던 분들이 나름대로 주중의 시간으로 오겠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다. 금요일 밤늦도록 시간을 편히 보내고 아침 느긋이 일어나서도 침대에 누워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다보며 게으름을 피우고 한적한 시간을 즐기며 이불속에 푹파묻혀 행복해 했다. 앞뜰로 나가보니 튜울립도 키가 쑤욱 자라서 예쁜 공주 같은 몽우리로, 자 이제 내가 보여줄까? 라고 말하는 듯하며 지난해 심은 히야신스 그리고 데포데일에서도 꽃봉오리가 아물어지고 있었다.

뒤쪽 창가에 우리 아들 아이 키보다도 불쑥 커버린 동백나무에서는 분홍색의 꽃들이 이미 활짝 피어서 예쁜 꽃들의 잔치를 이루고 있다. 동백꽃 한쪽에서는 매년 우리집 창가에 찿아와 창문을 부리로 쪼아대는 짱구 로빈(새종류)이 앉아서 역시 우리 식탁 쪽의 창문을 여전히 부리로 쪼아대며 있었고 짱구 로빈이 앉았던 자리에는 하얀색의 분비물이 쌓여서 동백꽃 잎사귀가 시름시름 앓은 것 같다. 짱구 로빈은 작년부터 3월이 되면 찿아와 키친의 창문을 부리로 쪼아대며 창문에 비치는 자기의 그림자와의 전쟁 중이었고, 부엌 창문에 내가 안듣는 CD를 고무줄로 매달아놓으니 ( 혹시나 이것을 보고 도망갈 줄알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여기가 아니다 싶은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복도의 창문에 와서도 또 콕콕 쪼아대며 적에게 (자기 모습 인줄 모르고) 시비 중이었다. 그래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창문 안쪽으로 투명한 물컵을 한잔 갖다 놓으니 이 짱구가 여기서도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뭔일인가? 싶은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뚱 거리더니 며칠동안 잠수를 해버렸다. 나는 앓던이가 빠진 기분이었다. 매번 창문을 쪼아대니 콕콕콕 찧는 소리가 반복 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어 신경이 예민해졌다.

그러더니 며칠 후 짱구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뒤쪽에 문바닥을 왔다갔다 하며 부리로 역시 유리문을 쪼아대고 있었다. 이 짱구가 남긴 흔적들은 그대로 내가 청소를 해야하는 몫이었다. 김치를 담그고 너무 많이 익을까 봐 냉장고로 들어가기전 잠깐 밖으로 김치통을 내놓았는데 이친구가 아예 평평한 김치 통에 발판을 삼고 앉아서 쉴새없이 볼일을 보아 버려서 물론 김치 통안은 관계가 없겠지만 기분이 꺼림칙해서 그냥 김치를 쏟아 버렸다. 내머릿속은 어떻게 이 짱구를 퇴치해버릴지 고민을 하다가 아들이 어릴 때 만들었던 팝시클 막대기와 고무줄로 엮어서 만든 새총이 생각이나 서 좋아하지도 않는 설탕물 얼려 놓은듯한 팝시클 한봉투를 사다가 원 없이 먹고도 모자라 팝시클로 얼어붙은 입안을 녹여가며 팝시클을 씽크대에 그냥 놔두며 녹기를 기다리며 다녹은 후 나무막대기들을 고무줄로 단단하게 엮어서 새총을 만들었다.

이 짱구 오기만 해봐라?

나는 집안에서 새총을 아예 갖고 다니면서 적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준비를 하고 짱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중 어느날, 짱구는 와서 창문을 쪼아대는데 그 짱구를 조심스럽게 바라다보다가 정신이 바짝 드는 것이다.

내가 이 짱구 없애버리면 짱구가족은?

이 짱구에게도 가족이 있을 텐데?

만일 새끼들이 어리다면?

나는 집안에 창문을 통해 짱구를 바라보며, 짱구는 창가에 앉아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서로 마주보며 바라보다가 나는 먹고 싶지 않은 팝시클 한박스를 억지로 먹어가며 만들었던 새총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그래 3월 4월만 참자. 내가 보기 싫다고 죽일수는없어 짱구가 죽고 나면 난 더 힘들 거야……

우리 집 앞마당에 지금으로 부터 7년 전 우리집 근처에 사는 한국 할머님이 자기 집 자두나무가 너무 퍼져서 집안 조경을 헤친다며 나무 한쪽을 분가해주셨다. 나는 나무를 앞마당 햇살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양지에다 자두나무를 정성껏 심고 돌보았다. 그런데 그해 그리고 그 다음해에 자두나 무는 온몸에 진땀을 흘리며 살아보려 애를 쓰고 있었다.

내 손목 정도 굵기의 자두나무에서는 송골송골 진땀이 맺혀있었고 물론 거의 4년 정도 꽃이 피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난해 자두나무에 매달아논 새먹이통에 먹이를 넣어주려고 하다가 자두나무에 아주 빨간색자두하나가 댕글 매달려있었다.

자두는 너무나 예뻐서 바라보며 너무 예뻐했는데 며칠 후 또하나의 자두가 열리더니 모두 세알의 자두가 열리었다. 그 큰나무 전체에서, 나는 진땀을 흘리면서 비실비실하던 자두가 이제는 내손 목의 두배로 자란것도 신기한데, 자두 세알이 열린것이 너무나 기뻐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두세알은 따사로운 햇살에 아주 빨갛고 탐스럽게 익었으며 나는 예쁜 아기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자두를 매일 살펴보았다. 어느 날 나는 떨리는 심정으로(자두 세알을 어떻게 조심스럽게 타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리었다) 세알의 자두를 따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집 자두가 너무 맛있게 익었는데 집에와?

친구들은 그날 저녁 잘익은 자두를 따서 갈 요량으로 자루를 한 개씩 가져 왔었다가 식탁위에 초록빛 접시에 놓여있는 자두 세알을 바라보며 아니 이건 뭐야?

나의 설명을 다들은 친구들과 함께 우리는 25전짜리 합친것 두 개만한 사이즈의 자두 두개를 여섯등분을 내어 신나는 파티를 했었다. 한개는 우리 가족들 몫으로 남기고 그런 자두나무에 이번엔 하얗게 꽃이 덮혔다. 너무도 눈부시게 환해서 와우!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번엔 자두가 얼마나 열리려나?

금년엔 누굴 부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