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씨애틀 날씨가 그야말로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짱이다. 10 월인데도 날씨가 화창하며 낮에는 따사로운 햇빛까지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한 날들이다.
매해 10월 이맘때쯤이면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로 밖에 나가는것이 쉽지 않으니까 직장과 집을 오가며 일하기 바빴던 기억인데 금년에 우리 시애틀에는 따사로운 햇빛과 상큼한 공기까지 덤으로 갖게 되어서 행복하다.
아침이면 공기가 쌀쌀하여서 옷깃을 여미게 하다가도 11시경이 되면 따사로운 햇살에 마음까지도 활짝 열리게 하는 날들이다.
이렇게 화창한 날씨가 지속되니까 가을 꽃밭에 할일이 많아진다. 우선 겨우 내내 볼 수 있는 꽃들로 화단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Cabbage flower, pansy, prom rose…..
지난 번 노인회 모임에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예전에 나의 사무실에 자주 오시던 분들께 노인회 가면 뵙겠다고 미리 연락을 드리니 어느 할머님이 만드셨다고 노란색 바탕에 형형 색색의 무늬가 있는 옷감으로 몸빼바지를 만들었다며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몸빼바지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색깔과 무늬는 전혀 아니지만 집에서 입기엔 적격이었다.
항상 추워하는 나의 체질때문에 그래서 바지를 즐겨 입는 편인데 바지를 입고도 춥다춥다 하는 나를 보신 이어르신은 몇 년 전에도 나에게 몸빼바지 두툼한 것을 만들어 주셨었다. 추우면 바지에 끼워입는 토시를 덧입는데 이분은 내가 추워하는 것을 아시고서 종아리부분을 토시가지 덧입으라고 만들어주셨다.
할머님이 만들어주신 몸빼바지를 입고 집앞마당에 주저 앉아서 화단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집이 크지 않아서 내가 혼자서 꽃들을 심고 다듬고 정리할 수 있으니 기쁘다. 앉아서 화단에 있는 꽃들을 정리하다보면 머릿속도 맑아지고 마음엔 풍요로움이 생긴다. 아마도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이 이러할 것 같다. 꽃들을 다듬으며 꽃들과 이야기를한다 우리 앞집에 사는 여자는 언젠가 나에게 Are you ok? 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문의를 해왔다, 아마도 화단에 주저 앉아서 혼잣말을 하는 내가 이상해 보였든가 싶다.
지난해 봄에 사다 심었던 팬지 가족들이 민트 가족들의 방해로 거의 땅바닥에서 주저 앉아버렸다. 겨울이면 잠시 잠을 자는 민트가족들을 꺽어서 커다란 대나무 소반에 널어놓았다. 어느 정도 마르면 가루로 만들어 차를 만들어야지!
그리고는 거의 전멸된 것 같은 패전병들같은 팬지 가족들을 일으켜세우며 주변의 잡초들을 뽑아내기 시작하였다. 잡초 뽑아내는 작업이 재미가 있다. 특별이 잡초를 제거하는 것중에는 지난해 Woodinville 에 있는 Moll back store 에서 산 민들레 제거기는 정말로 마음에 든다. 이 기구는 내 허리조금 못 미친 길이인데 밑에는 날카로운 바람개비 같은 쇠붙이가 좌로 우로 돌릴수 있어서 목표물을 정하고 발로 핸들하는것을 누르면 기구가 돌아가면서 질기다못해 아주 짜증스러운 민들레가 뿌리까지지 쏘옥 뽑아져 나온다.
마음이 답답할때에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일때에 나는 이 기구를 잡고 한참이나 재미있게 일을 할 수가 있다. 가끔씩 너무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을때에 민들레 한 곳에 목표를 정하고 그민들레를 좌우로 흔들어주며 ( 물론 그 미운 사람이 이리저리 흔들린다고 생각하며) 뿌리채 뽑아내다 보면 기분이 꽤나 시원하다.
뽑다보면 강약을 조절해야한다. 무조건 잡아 당기면 민들레 뿌리가 잘려져 나오면 그다음엔 그 뿌리 뽑기가 더 어려워진다. 하나씩 뽑아져 나오는 민들레를 보면 왠지 모를 승리감에 빠져들기도한다.
그래! 내가 이긴거야 라며……
이렇게 민들레 초토화에 정신을 빼버리는 나를 보며 우리 가족들은 “아이구 또 시작이네…..” 라며 창문 안쪽에서 나를 바라다보기도 하지만 나의 전투에 합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빼 놓은 민들레는 건강식품을 하는 그리이스 친구의 조언대로 깨끗이 씻은 후에 물에 담가서 우려낸다음 그물을 끓여서 냉동시켜 놓았다. 그리고는 겨우 내내 차로 마시었다.
그 다음엔 horse tail 이다. 홀스테일은 뿌리가 깊게 심겨져 있어서 위를 잘라내도 또 자라고 또 자라서 제거하는 것이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홀스테일을 잡고서 살살 흔든다음 뽑아내면 싱겁게 뽑혀져 나온다. 그런데 홀스테일을 뽑을때엔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맨손으로 만지면 앨러지로 손이나 팔에 발갛게 두드러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장갑을 꼭끼고 살살 흔들어준 다음 마치 세수하다가 배수관으로 빠져버린 결혼반지를 집게로 건져내듯이 살살 들어올리면 홀스테일이 부끄러운 모습으로 뽑혀져 나온다. 그런데 홀스테일은 뽑아내도 뽑아내어도 여기저기 쉽게 번식이 된다. 아예약을 뿌려 버릴까? 생각도 해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약을 뿌리면 안될것 같다.다른 꽃들도 다칠가봐……
그 다음 잡초는 와일드 캐롯이다. 와일드 캐롯은 보라색의 예쁜 꽃들을 피우며 무진장 퍼져 나간다. 아무리 예쁜 꽃들도 와일드 캐롯이 옆에 있게되면 곧 생명을 잃게 된다. 와일드 캐롯은 번식력과 생명력이 아주 강해서 자기의 줄기가 조금이라도 땅에 닿으면 자기의 영토를 확장해나간다. 그 옆에 있는 데이지, 수선화, 방울꽃, 카네이션도 속수 무책 점령을 당해서 자기들의 몸을 웅크리며 꽃을 피우기가 어렵다. 모두들 예쁜 꽃들인데 와일드 캐롯의 횡포에 그저 당하고만 있는 것이다.
와일드 캐롯을 뽑다보면 마치 세상에서 일을 하면서 자기 만이 잘하고 자기만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사람과도 같다. 옆의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좋은점, 귀한점을 무시해버리고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것도 관계치 않고 내가 해야하고 내주장이 관철되야하고 나만이 아니면 안될것 같은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내주장만 애기하는 사람.
와일드 캐롯은 생각 보다도 걷어내기가 쉽다. 뿌리가 깊지 않은데다가 줄기도 깊게 내리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쭉 걷어내다 보면 여기저기 덮고 있는 줄기가 딸려 올라온다. 물론 여기저기 뻗어 있어서 다른 꽃들을 상하지 않게 살살 걷어내야 하는데 옆에 있는 이들을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내의견을 애기하며 남의 입장도 남의 형편도 배려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같이 말이다.
정원에 자리잡은 잡초를 정리하면서 생각해본다. 이렇게 예쁜꽃을 왜 잡초라고 하지?
그래! 나만 이 산다고 나만이 최고라고 내주장만 피면 그것은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이지! 남에게는 잡초가 되겠구나라고……
남의 의견을 듣고 함께 들어주고, 내가 옳아도 남을 배려해줄 수 있는 모습, 그 모습이 예쁜꽃일 거야. 와일드 캐롯은 예쁜꽃을 피우지만 자기 혼자만이 자라야하고 자리를 잡으며 다른 꽃들을 다 덮어버리니까는 그래서 환영받을 수 없는거구나. 그래서 혼자만이 서식하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와일드 꽃이 없어야만이 다른 꽃들이 어우러져 예쁜 화단을 만들어갈수 있겠구나?
다음 뽑아내야 할것은 작은 시더이다. 시더나무는 아무데에서나 잘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시 더 나무 씨를 다람쥐들이 물어다 여기저기 꽃밭에 숨겨놓으면 베이비 시더 나무가 여기저기 자란다. 다자란 시더 나무는 우리에게 재목으로 가구를 만들게 해주고 좋은 향내도 준다. 그러나 이 작은 꽃밭에 시더 나무가 자라면 다른 식물들이 자랄공간이 없어진다. 시더 나무가 자랄수 있는 넓은 지역에 시더 나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더나무가 깊게 뿌리를 내리면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에는 혼자서 작게 손바닥만큼 자라고 있는 시더 나무를 뽑아내려다 뒤로 넘어져 허리가 아파서 고생한 일도 있어서 이번엔 아주 조심스럽다. 그래서 시 더 나무 주위를 살살 흙을 없애가며 뿌리를 잡아당기니 실날같은 뿌리도 함께 따라나온다. 화단을 가꾸는 것은 정성이다. 그리고 사랑이다. 예쁜 꽃들을 보려면 물도 잘 주고 영양제도 주고 정성으로 돌보아야 한다. 꽃들이 다치지 않게 보호해주어야 한다. 잡초로부터, 병충해로부터…….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혼자만이 잘살면 재미는 없다. 혼자서는 외롭고 쓸쓸한 거다. 내가 대장이 되어야 할 필요는없다 상대방이 잘하는 것 있으면 잘한다 칭찬해주고 함께 도와주며 힘을 내줄 필요가 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화단을 정리하며 예쁜 화단을 만들어가고 내마음의 화단도 정돈해본다.
잠시 동안 머무는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