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

사무실일로 시애틀근교 출장을 가게 되었다. 도착해보니 미팅시간보다는 조금 이른시간이라 이곳 동네주위를 조금 걸어보자 생각하고는 늘 차에 싣고 다니는 운동화로 바꾸어 신고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주위가 깨끗하고 아주 예뻐서 걷는 마음도 상쾌하였다.

조금더 걸어 내려가니 동네에 자그마한 공원이 보이는 데 공원입구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열려있는 하얀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가까이에 가서 보니 아카시아 꽃이었다. 미국에서 산지가 오랜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카시아꽃이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마침 꽃이 주렁주렁 매달려서는 손이 닿을 곳에 많이 매달려 있어서 아카시아꽃을 한개를 따서 냄새를 맡아보고자 코로 가져가니 내가 어릴적 한국에서 맡았던 향내는 없었지만 희미하게도 아카시아향내가 나기는 했다.

우리 형제들이 어릴 때 엄마는 우리집에 많은 걸인 아저씨들이나 사람들이 병신이라고 놀려대던 사람들을 우리집으로 데리고와 따뜻한 물로 씻기고 헌옷가지 빨은 것으로 갈아입히고 따끈한 밥을 해서 먹이셨다. 그리고는 또 무엇을 이 사람들에게 먹일까? 생각하시다가 지금은 하늘나라에간 오빠와 나를 불러서는 집뒤에 있는 아카시아 꽃을 따오라며 커다란 광주리를 내어주셨다.

오빠와 나는 집뒤에 지천으로 나있는 아카시아 나무에서 늘어지게 피어있는 아카시아 꽃을 따서는 광주리 가득 채웠다. 가끔씩은 아카시아 꽃 가시에 찔리기도 하면서 때로는 아카시아 꽃잎을 따먹기도 하면서……

오빠는 축늘어진 꽃을 다 따고 나면 나무위로 쏜살같이 올라가서는 꽃을 따서 아래로 던졌다. 그러면 나는 오빠가 따서 던진 꽃들 을 주워서 광주리에 넣고는 했다. 오빠는 얼마나 빠른지 선수였다.

엄마는 오빠와 내가 따 가지고온 아카시아꽃을 물로 설렁 설렁 씻어서는 물기를 빼시느라 채반에 아카시아 꽃을 널려놓고는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지면 쌀가루인지 밀가루인지 잘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얀가루와 아카시아꽃을 섞어서는 이리저리 버무린 다음 당원?인지 뉴수가?인지를 넣고 커다란 무쇠솥에 대나무 채반을 넣은 다음 누런 삼베천을 깔고서는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은 다음 아카시아 떡을 찌기 시작하셨다. 내가 아카시아 꽃떡이 빨리 익으라고 나무를 많이 집어 넣으면 엄마는 무조건 나무를 많이 넣으면 떡이 타버린다며 골고루 익히려면 나무를 조금씩 조절해 넣은 다음 나무를 골고루 펴놓아야 한다며 보여 주셨다.

오빠와 나는 아카시아 꽃이 익어가기를 기다리면서 함께 따가지고온 아카시아 나뭇잎 게임 을 하였다. 가위 바위보를 해서 이긴사람이 진사람의 이마빡을 손가락을 튕겨서 때리는 게임이었다. 나는 오빠와 게임을 하면 10번중에 한 두번이외에는 항상 오빠가 이겨서 게임이 끝날때쯤이면 내이마에는 빨갛게 멍이 들기도 했다. 내가 지는게임인줄 뻔히 아시는 엄마는 오빠에게 눈치를 주면서 오빠에게 얘! 네가 져주라고 하시면서 내편을 들어주셨지만 오빠는 대답은 항상 네! 하면서도 져주지를 않았다.

어느 정도 불을 때운 후 아카시아 꽃향기가 솔솔나면은 엄마는 장작의 불을 줄이시면서 떡이 다익었노라고 말씀을 하시며 오빠와 나를 저만큼 불옆에서 멀어지게 하셨다. 혹시라도 뜨거운 김에 손이나 얼굴이 델까봐….
엄마는 다익은 아카시아 떡을 커다란 채반에다 쏟으시면서 떡에서 뜨거운 김이 다나가기도 전에 떡을 큰덩어리로 떼어서 마당에 있는 나무 의자( 여름 밤에는 침대로 사용할 수 있는)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거지 용식이 아저씨, 무릎 밑으로는 다리가 절단되어있던 상구청년(엄마는 상구청년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였지만 나는 두 다리가 없고 지저분한 상구청년을 한번도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내가 상구청년을 오빠라고 부르면 우리 오빠를 배신하는 것만 같아서). 나는 엄마처럼 항상 상구청년! 상구청년! 이라고 불렀다. 상구청년은 시장바닥을 무릎으로 기어다니면서 카셋트를 팔면서 살았었다.

이렇게 떡을 찌면 앞집에 사는 계숙이 엄마가 입양보낼 아기들을 위탁받아서 돌보고 있다가 아기들을 안고 우리집으로 오셨다. 그리고 아래집에사시는 민호 엄마도 냄새가 좋아서 왔어요! 하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엄마는 실컷먹고 배가 불러있는 용식이 아저씨, 그리고 상구청년, 약간 정신이 나가서 헤죽거리며 웃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도나스집 딸 용미언니 에게 남은 아카시아 떡을 신문지에 싸주시며 배고플 때 먹으라고 주셨다. 그리고는 용미언니에게 아무나 따라가면 안된다고 당부를 하셨다. 용미언니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 지 항상 입을 헤벌리고 웃고 다녔다.

이곳에서 아카시아 꽃을 보게 되니 어릴 때 마당에 모여 앉아 아카시아 꽃으로 떡을 만들어 온동네 사람들과 함께 잔치하던 생각이 난다.

아카시아 꽃은 우리 형제들에게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나눔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합창대회가 있었다. 나는 합창대회에 나가서 “과수원길”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예선에 통과하고 본선에서는 “보름달”을 불렀었다. 아쉽게도 상을 못받았지만 지금도 그때에 불렀던 노래가 생각이나서 미팅장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번 불러본다.

<과수원 길>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 하얀꽃 잎파리 눈송이 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솔바람다고 솔솔
둘이는 말이 없네 얼굴마주보며 쌩끗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옛날에 과수원길”

<보름달>
“보름달 둥근달 동산위로 떠올라 어둡던 마을이 대낯처럼 환해요.
초가집 지붕에 새하얀 박꽃이 활짝들 피어서 달구경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