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도 학교에 가야지!”

아이들이 어릴때 매년 가족단위로 모이는 동문회 수련회가 있었다. 매년 모일때마다 적게는 70명 정도 많게는 200명까지 모여서 사박 오일간의 시간동안에 강사를 모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도 듣기도 하고 재미있는 게임도 하면서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는 그래서 재충전을 받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산과 들이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단체로 함께 지내는 그야말로 행복한 교제의 시간이었다. 아침일찌기 일어나 향내나는 솔밭길을 걷기도하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물가를 따라서 걷다보면 상쾌한 나무와 풀내음에 취하면서 산책을 하다가 저만치서 뛰노는 사슴을 여유롭게 바라보기도 하고 자연에 감사하는 그런 시간들이다. 몇년전에는 요세미티에 갔다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산불을 보며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일인지도 느끼기도 하였다.

우리아이들은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면 “ 엄마 우리 언제 수련회 가요?” 라고 물으며 수련회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하였다. 수련회에 가게 되면 각주에서 모여든 자기또래의 친구들이 아주 많은데다가 아주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만들어놓아서 아이들은 밤이 새는줄 모르고 매일 매일재미있게 보내었다. 수련회 를 마칠즈음이면 우리모두는 건강하고 신선하게 까매지고 건강한 마음과 몸이 되었다. 모든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하는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헤어짐이 아쉬워서 발걸음을 쉽게 떼놓지 않았다. 남편들은 남편들끼리 아내는 아내끼리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동안 속상하고 마음아팠던 일들이 저만치 날라가버리었다. 그리고는 새롭고 신선한 마음이 되었다. 매년 이모임에 한번도 빠지지 않으시고 참석하시며 우리 모인이들에게 재미있는 얘기와 삶에 필요한 상식들을 가르쳐주시는분 선배님들이 계셨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한 분이계셨다. 이분에게는 그누구도 갖지 않은 재주 가 있었는데 이분이 말씀하시면 웃지않고는 못견디는 상황 이었다.

이 날도 모인이들이 저녁을 맛있게 먹고 다음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분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시더니 “ 불초 소생이감히 훌륭하신 선배후배님들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한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라고 하셨다. 이분이 말씀을 시작하시면 사람들은 웃기 부터 시작한다. 그리고는 옆에 계시던 친구분이신 ㅇㅇ 를 지목하시면서, 지금 ㅇㅇ 씨는 좋은옷을 입고 있고 좋은집에 살면서 좋은차를 운전하고 다니지만 은 이ㅇㅇ가 어릴때는 그야말로 ㅇㅇㅇ 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함께 하는 우리 친구들은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옆에서 이 얘기를 듣고 계시던 친구분인 ㅇㅇ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두눈을 지긋이 감고 팔짱을 끼신 자세로 그래! 오늘도 나냐 얼마든지해봐라! 라는 초연한 모습으로 앉아계셨다.

자! 이야기는 지금으로 부터 50년 아니 6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ㅇㅇ 가 국민학교 때의 일입니다. 그때에는 전쟁직후라 모든것이 부족하여서 모두가 가난하던때입니다. ㅇㅇ 집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옷도 구호물자로 주는 옷을 받아서 그것도 형제들끼리 물려받아서 입던 때입니다. 어쩌다가 국이나 김치찌개에 비계가붙은 돼지고기 가 들어갈때면 가족들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김치찌개를 노려보고있다가 식사시간을 알리는 아버지의 자! 밥먹자 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모든 형제들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서 적군을 무찌르는 군사들처럼 모든 숟가락이 한꺼번에 김치찌개 안에 있는 돼지고기 한점을 건지려고 사생결단하며 덤빌때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이야기이지만 그시절에는 고깃간에 고기를 사러가면 고기 사는만큼 기름 덩어리도 덤으로 주곤 했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되어서 ㅇㅇ 집이 너무나 가난하여서 형제가 많은 이 가족들은 한사람에게 빤즈가 하나밖에 없어서 하루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때면 잠옷으로 갈아입기전 하루종일 입었던 빤즈를 빨아서 넓은 무쇠 솥뚜껑위로 올려놓으면 아침에 뽀송 뽀송하게 말라서 기분좋게 학교에 입고 갈수가 있었 답니다.

그날도 ㅇㅇ 는 아침에 일어나 엄마에게 지난저녁에 빨아널은 따끈한 반쯔를 기대하고 있는데 아뿔사! 이게 웬일 ! 지난저녁에 빨아넣은 빤즈 중에서 ㅇㅇ 것이 부뚜막으로 떨어져서는 그냥 젖은 채로 있는것이 아닌가요. 1월의 추운계절이라 젖은빤즈를 입을 수가 없게된 ㅇㅇ 가 난감해하니까 ㅇㅇ 엄마가 애야! 걱정하지마라 오늘 누나가 학교엘 가지않으니까 누나 빤즈를 입고 가면 되겠구나 해서 엄마가 건네주는 빤쯔를 보니 핑크빛 바탕에 노란 꽃무늬의 알록 달록한 빤즈여서 망설였지만 그래도 이 추운 겨울에 빤즈를 안입고 바지만 입으면 더 추울껏 같아서 누나의 빤쯔를 입고 보무도 당당하고 씩씩 하게 학교엘 갔습니다. 그시절에는 모든학생들이 위생적으로 관리가 안되어서 가끔씩 불시에 신체검사를 하고는 하여서 머리나 몸에 이가 있나 검사도 하고 (그래서 이 lice가 발견되기라도 하면 온 전체 학생의 몸에 하얀 가루같은것으로 도배를 하듯이 뿌리어 졌던 기억이 납니다.) 가슴둘레와 허리둘레를 재기도 해서 성장과정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날따라 학교에서 신체검사가 있다고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필이면 오늘 신체 검사를 합니까?ㅇㅇ 는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얼굴이 사색이 다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줄을 서서 옷을 벗으라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자꾸만 친구들 뒤로 물러 섰습니다. 아이들은 옷을 벗고 빤즈만을 입고서 줄자로 재는 선생님에게 몸을 맡기기도 하고 또 체중기에 올라서서 몸무게를 재기도 하면서 점점 아이들이 얼추 다 검사를 맡은후에야 자꾸만 뒤로 물러서는 ㅇㅇ 가 이상했는지 담임선생님은 ㅇㅇ를 세우더니 ㅇㅇ 야! 너는 어쩌자고 자꾸 뒤로만 가는것이냐고 나무라며 자 ! 이리와봐 하고는 ㅇㅇ 의 바지를 훌러덩 내려 버렸습니다.. ㅇㅇ 는 너무나 놀래서 기절을 할 상황이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하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 아이들은 이리저리 딩굴며 웃느라고 온교실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요? 남자아이가 핑크색 과 노란색의 꽃무늬가 알록 달록한 여자 팬티를 입고 있었으니…… ㅇㅇ는 잠시 잃었던 정신을 차리고 바지를 올려 입은후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한참을 달려 나갔습니다. 이날저녁 ㅇㅇ 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속상하고 창피해서 어디로인가로 숨어들고 싶었습니다.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아들아이를 기다리며 ㅇㅇ의 엄마는 아들아이를 찾는 광고 전단을 전봇대기둥에다 붙였습니다. ㅇㅇ 야! 돌아 와라 아빠 빤즈 줄여 줄께! 전단지를 붙여놓아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아이가 걱정이된 엄마는 또 붙였습니다. ㅇㅇ 야! 돌아와라 엄마 빤즈도 구멍내줄게… 그래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아들아이가 걱정이된 엄마는 신문사에서 무료로 내어주는 미아 실종란에 이렇게 광고를 내었습니다. ㅇㅇ 야! 돌아와라 니 빤즈 다말랐다. 그리고 누나도 학교엘 가야지!

이런 얘기를 하시는 선배님께서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시면서 옆에 계신 ㅇㅇ 친구분의 어깨에 손을 대고는 (재미있는 일은 이분에게 이야기소재로 쓰임을 많이 받은 친구분의 표정이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아무 얘기도 않으시며 지긋이 눈을 감고 이분이 얘기를 하실 때 마다 고개를 그떡거려주시며 이야기에 힘을 싫어 주셨거든요) 측은해 하는 모습으로 바라보시면서 말씀을 하시는지 이야기를 듣던 분들은 웃음이 터져서 웃느라고 이리저리 쓰러지기도 하시고 어떤이는 옆사람을 두드리면서 웃기도 하였고 제대로 이해가 안되는 이들은 “참으로 가난했구먼!” 하시면서 혀를 차기도해서 사람들은 더 기가 막혀서 이리구르고 저리구르고 웃느라고 정말 배꼽이 도망을 갈 수 있다면 멀리 도망을 갔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들의 수련회에는 매년 이분이 새로운 메뉴로 우리들을 한바탕 정신줄놓게 웃게 만들어주셨고 우리들은 수련회도 너무 좋치만 입분의 입담이 그리워서 매년 수련회를 그리워했습니다.수련회 기간동안 한참 웃다가 보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버렸습니다. (어떤 때에는 이 분이 웃는 우리들 앞으로 모자를 들고 다니며 웃음값을 걷으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항상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우리들의 힘이되어주었던 여름수련회가 또다시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