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4월이 되면
 

 4월이 되면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다. 그저께는 홈 디포에 가서 꽃을 잔뜩 사왔다. 그리고 화단에 자리를 잡아 놓았다 이제 시간을 만들어서 심어야지! 오빠는 꽃을 참으로 좋아했다. 아프리칸 모리골드, 버버나, 롹호일, 팬지…. 토요일 오후 앞마당에다가 며칠전 사온 꽃들을 색깔대로 배열해서 자리를 잡은 후 심기 시작했다. 하루 온종일 꽃을 심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어릴적 생각들을…….

 지금으로부터 4년전 나의 사랑하는 오빠 두 분이 3일 간격으로 4월의 하늘로 떠나가버렸다. 큰오빠는 나하고 나이차이가 아주 많았다. 큰오빠는 나에게 어려웠으나 항상 조용조용한 말씨로 한참이나 어린 막내여동생인 나에게 인생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곤 했던 선생님이었다. 가끔씩 막내여동생인 나를 불러내어 좋아하는 간식거리도 사주며 학교생활을 잘해야 미래가 보인다며 잘하는것은 격려도 해주고 내가 부족한점은 코치도 해주었다. 오빠는 그시절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서울대학교 공대를 나와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막내오빠는 잘생긴 외모에 재미있는 유머 감각과 음악에 재능이 많아서 항상 비틀즈의 노래에 심취해서 기타를 치곤하였다. 오빠와 나는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불리워서 많은 사람들앞에서 함께 찬양을 하던 기억도 새롭다.

 “주날개밑 내가 편안히 쉬니……”

 막내오빠는 아주 재미있는 성격으로 형제들 중에서 어리숙하고 계산에 어두운 나는 늘 오빠를 졸졸따라 다니며 오빠의 장난에 매번 넘어가 골탕을 먹기도 하였다.

 그때에는 설탕이 그리 흔하지 않을 때라서 설탕을 깊히 두었던 생각이 난다. 설탕이 비싸서라기 보다 우리 엄마는 이가 썩는것을 무척이나 조심하던 분으로 우리에게 사탕이나 단음식은 거의 못먹게 하셨다. 특별히 우리 엄마는지금도 94세이신데 아직도본인의 치아를 갖고 계신다. 아무튼 설탕을 구입하신 엄마는 부엌에 다 설탕을 두지않고 “광( 지금의 거라지)깊숙히 숨겨 놓아서 , 아무도 설탕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다. 광에는 이것 저것 많이 쌓여 있어서 아무리 우리가 찾아보려고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우리 형제들을 아예 단것하고는 거리가 멀게 하였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우리 형제들은 단음식을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 어린 나는 사탕이 먹고 싶어서 아버지가 용돈을 주면 조르르 집근처에 있는 슈퍼에 가서 지금도 생각하면 불량식품이 뻔한 형형색색의 사탕을사서는 집에서 멀찍이 떨어져 가서담벼락에 몸을 기대고는 입에다 사탕을 물고서 사탕의 단맛을 음미하곤 했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 멀찌기 떨어져 갔다고 해도 항상 막내오빠의 레이다에 걸려 들었다. 오빠는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꿰뚷고 있었다. 오빠가 나를 찾아내면 나는 주머니에 남아있는 사탕 몇개를오빠에게 주곤했다. 오빠는 사탕을 절대로 강제로 뺏지 않았었다.

 항상 협상을 하였는데 어느날 내가 갖고 있는 사탕을 주면 다음에 내가 준사탕보다 더 많이 준다고 하여서 단것에 눈이먼 나는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다 내어주곤하였다. 오빠는 함께 다니는 조라기 친구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던져주며 선심을 쓰고는 했다. 그때에 오빠는 골목대장을 하였던 기억이난다. 사탕을 다 빼앗긴 나는 오빠의 두배로 사탕을준다는 공약을 믿고서 며칠을 지내보지만 빼앗긴 사탕의 소식은 더이상 없었다.

 어느날이었다. 오빠는 나를 불러 ‘막내야! 오빠가 엄마가 숨겨논 설탕이 있는곳을 알았으니까 우리함께 엄마몰래 덜어서 “달고나”해먹자’고 나를꼬드겼다. (달고나는 국자에 설탕을 넣고 끓여서 나중에 소다를 넣으면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간식거리이다)신이난 나는 오빠의 말을 믿고 광속에 따라들어가니 오빠는 커다란 숫가락 한숫갈( 밥숫가락보다 조금더 큰)에 설탕을 듬뿍 퍼서는 막내야 자! 입벌려? 아—- 하고—– 나는 오빠가 시키는대로 입을 아주 크게 벌리고 고개까지 뒤로 젖혀가면서 ( 설탕의 단맛을 기대하며) … 잠시 후 오빠가 내입속 깊숙히 넣어준 숫가락에 있던 설탕은 설탕이 아니라 곤소금이었다. 광속은 조금 어두워서 곤소금 과 설탕을 구별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곤소금을 큰숫가락으로 가득히 입안으로, 목젖까지 절여진 나는 목이 메어 컥컥대고 눈물이 범벅된 나의 컥컥대는소리에 광속으로 오신 엄마는 우리 둘을 발견하고 광속으로 들어와 이유를 알자마자 나를 데리고 수돗가로 데리고 나가 목속을 찬물로 몇번씩 씻긴후에 오빠를 팰 요량으로 대나무를 찾아서 ‘어디, 이자식 어디있어?’ 하고 쫒아나갔지만 오빠는 이미 줄행랑을 놓았다. 그날 저녁 오빠는엄마의 체벌이 두려워 밤이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오빠가 걱정이 된 난 ㅡ엄마를 붙잡고 오빠가 안들어온다고 눈물콧물흘리며 오빠를 찾아야한다고 사정을 하였다. 엄마와 나는 오빠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다녔으나 오빠는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 가 없어 집으로 들어오니 오빠는 언제 들어왔는지 이미 저녁까지 뚝딱 해치우고 이불속에 들어가 꿈나라를 여행중이었다.

 오빠는 잘생긴 얼굴에 공부를 잘하여서 여학생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는데 나에게 가끔씩 언니들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막내오빠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많다. 어느 겨울 중학교때 학교가는 내가 발이 시려울까봐 내 신발을 불옆에다 갖다놓고 잊어버리는바람에 불의 온도에 녹아버린밑창을 엄마가 알면 오빠가 혼날까봐 몰래 신고 다니던 기억, 여름엔 인왕산에 데리고가 산딸기며 머루들을 따서 내손에 가득 담아주던 오빠, 그랬던 오빠가 지금으로부터 4년전 암수술을 받다가 하늘나라로 갔던 4월은 나에게는 너무나 아프다. 마지막 하늘나라로 떠나기전 힘없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밝는 모습으로 ‘야! 막내 ,쇼셜월커가 이렇게 힘든사람 하나 못고치냐 너는 못하는것없잖아 하나님께 더불로 기도해봐? 내가 지금떠나면 이세상 손해야 !손해!……’

 오빠는 장시간의 간암수술을받고 성공적이라고 하였으나 함께 발견한 위암이 온몸에 퍼져서 이세상을 떠났다. 며칠후 함께 암수술을 받던 큰오빠 마저 하늘나라로갔다. 4월은 불편하다. 나에게 아픈기억을 주기에.오빠는 노래를 참 잘했다. 특별히 에릭 크립톤의” Tears of heave “이라는 노래를 키타를 치면서 부를때 면 함께 듣는 이들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나도 이노래를 좋아한다. 그래서 4월이 되면 이노래를 많이 불러보게 된다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tears
and heaven.

이 노래를 부르다보면 오빠가 나와 함께 있는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