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잔치

청소년 잔치

지난 11월 말일이 가까이 오면서 나는지독한 몸살에 시달렸다. 앞으로 어떻게 내인생을 설계할
인가? 에 대해서 고민을하며.얼마전 씨애틀 돔에서 “Get motivation”이라는제목을 가지고 세미나가 있었는데 세미나에는 미국대통령 이었던 죠지부쉬 부인 로라부쉬, 콜린파워 장군, 코메디언 빌코스비……등 유명한 인사들이 강사로 와서 자기의 인생 경험담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애기를 해주었다. 그 세미나에 참석을 하여 많은 이들의 도전애기를 들으면서 나도 삶에 도전을 받은 것이다.

나는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먹고사는것이 해결된다고 그냥 이대로살아가야 하는가? 나는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 생각과 고민이 나의 머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2010년 4월부터 상담소에서 일주일에 3일 하루에 두 시간 정도를 봉사하게 되었다. 직장을 마치
고 부리나케 상담소에 와서 미리 약속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분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봉사하면서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한인들이 비영리단체에서 받을 수 있는도움을 모른다는 것이고 많은 가정들이, 또한 자녀들이 어려운 문제가 터졌을 때는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도움이 필요하면 어떤 과정을 통해야 하는지 방법 등을 모르고 있었다. 그분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내 직장일을 마치기가 바쁘게 거의 매일 상담소에 출근을 하였다. 어떤 때에는 밤이 늦도록까지 상담소를 찾는 분들하고 오랜시간 애기를 나누다 보면 저녁식사시간을 넘긴 때가 꽤나 되었었다. 나의 직장에서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나를 찾아오게 된다. 특별히 내가 일하는 프로그램은 약물중독에 있던 사람들의 베네핏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병원비가 부족해서 찾아오는 이, 아파트렌트비가 밀렸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모르는 이, 아기를 낳아야하는 미혼모가 불법체류자이기에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남편의 학대를 받고 사는데 참고 살아가다가 이미 참을 한계가 넘어서 찾아온 이, 자녀가 마약에 중독되었는데 어떤방법으로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지 답답하다며 찾아온 어머니… 소셜월커로 그리고 가정상담사로 일한 지가 20여년이 넘었다. 그동안 미국직장에서 참으로 다양하게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었다.

20여년전 노인복지를 시작으로 장애인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 자녀들을 위한 청소년 문제 스페샬리스트, 약물중독 카운셀러, 워싱톤 가정상담사, 노숙자들 프로그램, 미혼모 프로그램, 20여년동안 참으로 다양하게 여러사회복지에 필요한 일들을 경험하게 하고 많은 사회단체와 정보단체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을 위해서 준비시켜주신 것 같았다.

여러 사회복지분야에서 다양하게 경험하는나의 모습때문에 나의 직장동료들은 “씨애틀의 해결사 “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나는일을 시작하면 마칠때 가지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무척이나 피곤하다. 궁금한 것이 참 많은 나는 때로는 피곤하다. 일이 제대로 해결되어지지 않으면 밤에 잠을 자면서까지 꿈을 꾼다. 그리고 새벽에라도 일어나 메모를 하고 다시 잠을 자기도한다.

상담소에서 카운셀로로 몇달째 봉사를하다가 소장으로서 봉사를 해달라는부탁을 받고 한동안 머리를 싸매고 생각을하며 고민을 했다. 과연 내가 full time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담소일을 잘 할수있을까? 하고…

매일 상담소를 출근하면서 그상담소에 찾아와 눈물 짓는이들을 도우면서 마음에 결심을하게 되었었다. 그래! 이일은 내가 해야되는거야! 라고 마침 내가 다니는직장은 경제불황으로 인하여 오
래다니는우리의 연봉에서 5% 를 제하기로 합의를 하였다 그래야 아무도 실직하지 않으니까…

아무튼 매일 직장일을 마치고 출근해서 돕는 상담소일은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일들이 생겼다. 몸이 피곤해도 그래도 해야할 일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잠을 자다가도 해결되어지지 않는이들의 얼굴들이 생각이났다. 어쩌면 나의 성격이기도하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마쳐야만 편안히 쉴 수있는… 아무튼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우리 어머니의 가르침은 항상 내 머릿속에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최선을 다하고 나면 잘안되었어도 그만큼 나아진 것이라고…

오래 다니던 직장에다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겠다고 애기한 후 얼마 후부터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하여 12시까지 일을 part time으로 하면서 1시부터 저녁까지는 상담소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을 하였다. 수술비를 못내서 걱정하는 이의 수술비를 일부를 찾아주고, 가게를 하다가 강도의 총에 맞아 죽은 동생때문에 우울증이 와서 괴로운이와 함께 가슴 아파하며 위로해주고 그 사람에게 좋은 그룹과 연결시켜주고, 딸아이의 가출에 애를 태우는부모님들에게 타지역에 가있는 딸아이를 찹아서 집으로 연결해주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부모님하고는 아무런 대화도 안된다면서 학교를 중퇴하고 나를 찿아와 하소연하는청년의 눈빛을 보면서, 억울하게 남편에게 학대를 받다가 홧김에 남편을 협박한일 때문에 감옥에 갇혀있는 약한 여인을 방문하면서 이 여인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내가 아는 법률자문을 다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해 형량을 줄이면서 가슴조이던일… 이런 일들을 하면서 나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누군가 해야할일인데… 마침 이일 저일 미국
에서 쇼셜월커로 또는 상담사로 일했던 내가 해야할일이라고……

이런일들이 돈이 생기는일은 분명히 아니다. 지금까지의나의 경험과 이력은 내가 원한다면 충분히 더 돈을 많이 버는직장엘 갈수가 있다. 그런데 내가 상담소에서 만나는이들의 아픈사연, 그들의 고통을 대하면서 나는 앞으로 내가 해야 할일을 분명히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와 오랜시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선후배들을 만나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의견을 나누었다. 이들은 나의 의견에 100% 동의를 하며 한인사회에 필요한 일들을 하자는데 마음과 뜻을 모았다. 이렇게해서 벨뷰지역에 생긴 상담소가 워싱톤가정상담소이다. 앞으로 워싱톤가정상담소는 한인사회 또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일을 할 것이다.

이번에 우리 청소년들에게 들을 수있는기회 ,즐길 수기회를 주고자 “청소년 워크샵”을 준비했다. 네 분의 강사들이 최선으로 살아온 경험과 또는 랩그룹 의 유익한 랩내용과 ( 이그룹은 아틀란타 죠지아에서 옵니다.세계 평화봉사단소속) 그리고 캐나다의 한국 청소년 그룹인 난타그룹, 한인회의 후원으로 맛있는 음식도 마련되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청소년 한마당 잔치”이다. 우리청소년들이 즐기며 배우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될것이다. 워싱톤가정상담소와 시애틀 한인회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그리고 워싱톤 가정상담소에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역 사회와 교민사회의복지를 위해서 일을 할 것이다.

워싱톤 교민 여러분, 지켜봐 주시고 함께해주시고 후원해 주시며 격려 해주시길 바랍니다. 워싱톤한인가정상담소는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와 함께 우리 교민들에게 필요한 많은 일들을 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