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와 앨리스

카산드라와 앨리스

사무실 로비에는 세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노느라 부산스러울텐데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나는 사무실 서류방에 갔다 오느라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앞을 지나 내 사무실을 돌아오면서 아이들을 보고 참으로 기특한 아이들이라 생각을 하였었다. 아이들이 두 명만 모여 있어도 시끌벅적한데 어떻게 세 아이들이나 있는데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는지? 얼마 후 인테이크를 걸쳐서 케이스가 배정된 것을 보니 내가 맡아야 할 케이스이다.

세 아이들과 카산드라 그리고 피코는 내 사무실로 들어와 앉아있다.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멕시칸 쪽의 정감 있는 얼굴보다는 더 스페인 쪽에 가까워보인다. 하얀색의 피부에 기품이 있어 보인다. 아이들의 옷은 말끔하게 차려 입었고, 세 아이들의 엄마인 카산드라는 머리를 당겨서 포니테일로 묶고 있었으며 아빠인 피코는 훤칠한 키에 커다랗고 맑은 눈을 가진 청년이었다. 아이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수줍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데 그 웃음이 얼마나 해맑은 웃음인지 그냥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파코는 26살이고 아내인 카산드라는 24살이다. 큰 아이 이름도 엄마와 같은 카산드라이다. 카산드라가 6살 앨리스가 4살 반이고 막내인 쟈시는 이제 한살반이다. 파코와 카산드라는 미국에 밀입국한 부부들이다.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본인들이 애기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음식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신분에 대해서 물어볼 수는 있지만 이 사람들은 대답을 안 해도 되는 것이다.

세 아이들 중 막내인 쟈시만이 미국 태생인 것을 보니 위에 큰 아이 두 명은 멕시코에서 넘어올 때 함께 온 것 같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파코는 멕시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카산드라는 멕시코에서 중학교만을 나왔단다. 파코는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9살때부터 길거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멕시코에서 특산물을 팔면서 동생 둘을 돌보면서 지냈던 소년가장이었다. 그래도 학교는 고등학교까지 마쳤단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아도 웬만한 영어는 구사를 하였다.

엄마인 카산드라는 작은 키에 예쁜 동그란 눈에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다. 엄마와 아빠가 나와 상담하는 동안 세 아이들은 너무나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내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아이들은?”하고 물어보자 세 아이들 중 막내인 아들만 괜찮고 두 아이는 귀머거리에 벙어리란다.

이 부부가 우리 프로그램에 오게된 것은 우리 프로그램에서 운영하는 2년 동안 살 수 있는 housing이 비게 되자 각 에이전시에게 공문을 띄워서 필요한 사람들 신청하게 했더니 다운타운 시애틀에 있는 히스패닉 에이전시에서 영주권이 없는 사람들도 신청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왔었다.

우리는 영주권이 있는 사람이 우선순위지만 가족 중 한사람이라도 영주권이 있으면 우리 프로그램에 신청할 수가 있다는 대답에 파코와 카산드라가 우리에게 오게 된 것이다.
파코의 가족은 우리가 운영하는 2년동안 살 수 있는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파코는 벨뷰에서 construction를 운영하는 중국계 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Hello, MR Chen. Do you have a job opening? I have a great young man in my program he has been looking for job. ‘

나의 소개로 파코는 다음날부터 마침 큰 건물공사를 맡아서 하고 있는 첸의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파코가 해야 하는 일은 콘크리트를 철근에다 쏟아붓는 일이란다.

나는 파코가 첸의 회사에 다니면서 가끔씩 파코의 일하는 것을 보려고 파코의 직장에 가보고는 했다. 첸의 말에 의하면 파코는 참으로 정직하고 성실한 청년이란다.

6개월이 지난 얼마 후 첸에게서 전화가 왔다 .

‘Dear Regina, I just want to say thank you to you how much I appreciated you! Paco is a wonderful man, I am so happy to having him with me.’

첸의 이야기는 파코가 성실해서 자기는 함께 일하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며 가능하면 자기가 영주권 스폰서가 되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파코는 이 회사에서 직원으로 영주권을 신청하게 해주었다. Isn’t it wonderful?

내가 가끔씩 파코가족이 사는 집을 방문해보면 보통 homeless family 하고는 눈에 뜨게 다르게 깔끔하고 정돈이 되어있으며 음식도 캔 음식이 아닌 꼭 신선한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는 것이다. 어느 날은 나에게 멕시칸소스를 할라피뇨와 토마토를 가지고 만드는 법과 타코랩을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를 섞어서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기도 했다.

카산드라에게는 학교를 들어갈 수 있도록 알아보았다. 귀가 안 들려서 벨뷰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카산드라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deaf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 에드몬즈에 있는 초등학교로 스쿨버스가 매일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었다.

파코의 가족이 우리 프로그램에 온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파코의 가정을 방문하는 중이었다. 아이들은 이제는 나하고 친해져서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도(이 자전거들은 우리 프로그램과 시스터 프로그램에 있는 에이전시에서 아이들에게 선물로 해준 것) 나를 보면 달려온다. 둘째 아이인 앨리스는 나의 방문이 있을 때마다 내 바지자락을 붙잡고 나에게 매달리며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이날도 무엇인가 중얼거리는 앨리스를 붙잡고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앨리스의 키에 맞추어 앉아서 앨리스와 눈을 마주치며 “자! 앨리스, 무슨 얘기를 한거지?” 하면서 천천히 물어보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웅얼거리는 것이었다. 앨리스를 앉혀놓고 “앨리스, 나 따라해봐? Regina, Regina, Regina……….” 앨리스는 나의 입을 보면서 내 입모습을 보면서 아주 자그마한 소리로 “re……gina re…..gina……” 나는 옆에 있는 그림책을 집어 들고 “이것은 apple, apple, apple…….. Banana, Banana…” 앨리스는 파코와 카산드라,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모여 보여주는 그림책을 보면서 내 입술을 보며 따라서 말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앨리스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것 같다. 항상 큰아이 카산드라하고 수화로만 이야기하던 앨리스가 입을 열게 되자 나는 파코와 카산드라에게 혹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간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처음에 낳아서는 아기 울음소리를 내고 울었는데 그 울음소리도 아주 작은 소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전문가에게는 아직 한 번도 가볼 기회가 없었단다. (미국에서 쫓겨나가게 될까봐) 나는 너무 놀라워 UW에 children hospital에 children specialist로 일하고 있는 예전에 우리 프로그램에 와서 무료진료 해주던 Dr, Duck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을 하니 자기가 한번 앨리스를 보아주겠단다.

약속된 날짜에 앨리스를 데리고 카산드라와 나는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정밀검사를 하고 또 며칠 후 또 다른 청력에 대하여 검사 결과 앨리스는 아주 희미한 소리이지만 들을 수가 있는 아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앨리스는 귀머거리도 벙어리도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청력이 아주 약해서 수술을 해주면 앨리스는 들을 수가 있단다. 첫째 아이인 카산드라는 수술을 해도 말을 할 수가 없는 아이였으나 앨리스는 수술로 도와줄 수가 있단다. 의사선생님의 말로는 아이가 잘 안 들리니까 그리고 언니가 말을 못하고 수화로 이야기하니까 본인이 말을 안하는 것을 선택한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파코와 카산드라도 둘째아이도 첫째아이와 같은 줄 알고 앨리스를 그냥 놔 두었던 것 같다. 이 소식을 들은 파코 카산드라 그리고 나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왔다.

그로부터 한달 후 앨리스는 귀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헤드폰 같은 것을 귀에 끼고 있다. (귀를 보호하기위해) 아마도 좀 불편한지 얼굴을 찡그린다. 찡그리는 얼굴도 너무 예쁘다. 그래도 내가 가면 내 바지자락을 붙잡고 입을 움직이며 가냘프게 “regi….na” 라고 부르며 나에게 얼굴을 기대어온다. 나는 앨리스를 붙잡고 “자, 앨리스. 내 입을 따라해봐?” 하면서 말을 한다 “Alice, I love you………” 앨리스는 수줍게 웃으며 “I…..lo……ve….. yo……u!”라고 말한다.